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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의연구자 Aug 30. 2020

로지스틱스

로지스틱스(갈무리, 2017) 소개글

데보라 코웬, 『로지스틱스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과 죽음의 삶』,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7.


이 책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머릿속에 세계 지도를 그려 보는 것이다. 거기에 무역의 상(像)을 더하면 여러 선들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뉴스 화면에서 보듯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향하는 화살표 모양의 긴 선 말이다. 그 이미지에서 국가는 무역과 같은 지구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단위로 나타나며 국경은 하나의 기준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전지구적 무역의 객관적인 재현으로 보인다. 국가들이 있고 그 사이를 오가는 상품의 흐름이 있을 뿐,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면 그 이미지는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칸트는 무역의 확대가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무역은 민간의 평화로운 활동이며 전쟁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저자인 데보라 코웬은 무역과 전쟁의 구별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뿌리 깊게 뒤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야기만으로도 이 책이 로지스틱스의 기술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로지스틱스의 두 가지 의미, 즉 병참과 물류의 개선 방안을 논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군사술과 비즈니스술이 뒤얽힌 전지구적 무역의 폭력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앞서 그린 세계 지도를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다시 그린 지도에서 국경은 사라지진 않지만 흐릿해진다. 대신 국경을 가로지르는 흐름의 궤적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공급 사슬로 불리는 이 네트워크 공간은 상품의 흐름에 전념하는 로지스틱스의 전형적인 공간이다. 로지스틱스는 이러한 전지구적인 사회적 공장을 만드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생산의 지구화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관국가적(transnational) 시스템으로의 재조직화를 의미한다. 이제 오늘날의 지구적 경제, 그리고 자본의 이해관계는 이 공간의 안전에 달려 있다. 상품을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순환시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에 따라 이 공간의 보안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과거 국가 영토성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던 법과 폭력의 지리는 관국가적인 공급 사슬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러니까 국경보다는 공급 사슬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권위가 재구성되는 세계 지도가 부상한다. 이 책은 그 지도가 실현해 나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며, 그것의 주된 동력은 공급 사슬 보안의 논리다.


공급 사슬 보안이란 무엇인가? 세계은행에 따르면 그것은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과 그로 인한, 시민과 조직된 사회의 경제적·사회적·물리적 안녕에 대한 위협을 다루기 위해 적용되는 프로그램, 시스템, 절차, 기술 그리고 해결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은 ‘사회의 안녕에 대한 위협’과 같다. 즉 ‘공급 사슬의 안전’은 ‘사회의 안녕’과 같다. 따라서 공급 사슬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악마화되며 이를 막기 위해 정상적인 법을 넘어서는 예외적 조치나 심지어는 군대가 동원된다.


2002년 <국제항운노조>가 전례 없는 숫자의 노동자 사망에 항의하며 안전 절차에 따른 근무에 들어가자 해운 고용주들은 노조가 태업을 교묘하게 조직했다고 주장하며 사업장을 폐쇄했다. 이에 딕 체니 부통령은 노조의 행동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했고, 조지 부시는 <태프트-하틀리 법> ―노조의 단결권 제약을 위한 법으로 노동자들의 직장 복귀를 명령할 수 있다― 을 LA/롱비치의 항구에서 발동했다. 이 사건은 로지스틱스의 대표적 인프라인 항구가 “법이 법을 훼손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예외적인 시공간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공급 사슬 보안의 논리가 집단의 권리와 충돌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소말리아 해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잇는 아덴만에서 벌어지는 해적 행위는 상품과 자본의 순환을 교란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의 중요한 관심사다. 아덴만, 즉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해적 행위가 증가한 주된 요인은 유럽 국가들에 의한 불법 남획과 유독성 폐기물의 불법 투기였다. 이것은 소말리아 어업을 완전히 파괴했고 지역 어부들의 생계 원천을 제거해버렸다. 그 때문에 소위 ‘해적’은 자원한 해안경비대로서 지역 어부와 거의 동일한 사람들이었다. 왜 이들은 ‘해적’으로 호명되는가? 해적 행위라는 “법적 딱지”가 제국이 “폭력의 정치적 사용”을 감출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가 주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지역(바다)을 통치하기 위해 제국적 권력은 “해적이라는 사회악”을 만들어 냈고 소말리아의 주권 해상 공간은 외국 군대가 개입할 수 있는 사실상 예외적인 공간으로 전환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2012년 5월 자신들이 “해적 소굴”로 명명한 소말리아 해안가의 마을을 폭격했다. 이렇게 “해적이라는 범주는 제국적 권력의 형식적(영토적) 관할권을 넘어서 통치하는 수단을 제국적 권력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자나 지역민의 안전은 공급 사슬의 안전에 우선할 수 없으며, 공급 사슬 보안이 보안하는 대상은 인구의 삶이 아니라 상품의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서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품과 그것의 순환 시스템이다.


이처럼 저자는 항구나 해적 구역뿐 아니라 국경, 도시 같은 길목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품을 순환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생산하는 집단적 폭력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어떻게 “로지스틱스와 더불어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이, 새로운 법의 사용이, 새로운 살육 논리가, 새로운 세계 지도가 도래”하는지 보여 준다. 따라서 로지스틱스는 순수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매우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기획이다. 그것이 스마트폰으로 상품을 주문하고 배달받는 우리의 ‘평화로운’ 삶이 기대고 있는 지반이다.


이코노미인사이트에 ‘무역과 전쟁의 뒤얽힘 그 위에 세운 ‘공급 사슬’’이란 제목으로 실린 글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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