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갈무리, 2020) 서평
공장과 산업 노동계급의 관계는 가정과 여성의 관계와 같다.1) 이 가정 공장은 산업 공장 못지않게 오래된 공장이다. 집안의 노동자로서 여성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하고 재생산하여 집 밖 공장에 공급해 왔다. 그러나 이 유비가 성립한다 해도 공장과 가정, 그리고 산업 노동자와 여성의 상황은 같지 않다. 공장은 노동자들이 집결하는 곳이며 그들이 ― 착취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 협력과 조직화의 가능성을 키우는 곳이다. 그러나 가정은 고립된 일터다. 이러한 노동 조건은 여성에게 무력감과 우울감, 그리고 끝없는 노동 시간을 부과한다. “여성의 노동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이유는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2) 또한 산업 노동자와 가사노동자의 가장 큰 차이는 임금의 유무다. 임금이 전자에게만 주어짐에 따라 전자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되지만, 후자는 ‘집에서 노는 맘충’이 된다. 달라 코스따가 이 책, 『페미니즘의 투쟁』에 수록된 자신의 유명한 글, 「여성과 공동체 전복」에서 밝힌 것은 바로 이 임금의 비밀이었다. 가사노동자에게 임금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하는 노동의 생산적 성격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임금을 통해 착취를 감추는 신비화가 일어난다면 가정에서도 임금을 통해 신비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임금을 제공함으로써 임금과 노동의 등가교환이라는 신비화가 일어나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 임금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착취를 감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떻게 임금을 주지 않는데도 착취가 아니라고 포장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여성을 겨냥한 자연화의 효과 때문이다. 즉 집안에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여성을 특정한 주체로 만드는 것, 그러니까 집-기계의 부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공격은 결정적이었다. 달라 코스따는 마녀사냥을 그 사례로 든다. 그가 ― 많은 점에서 비슷한 논지를 펴는 ― 페데리치의 연구를 인용하며 말하듯이,
마녀사냥이 정점에 달한 1550년부터 1650년까지 여성 10만여 명이 극악무도한 고문을 받고 산 채로 불태워진다. 희생자는 대부분 지역 내 산파들로, 출산·임신 중절·피임법 관련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게 죄명이었다. … 혼자 사는 여성, 결혼하지 않은 여성, 나이 많은 여성, 그리고 무엇보다 … 도시 봉기와 농민 봉기를 이끌던 여성들이 쉽게 고발당했다. 처녀와 임산부는 원칙적으로 화형대에 세우지 않았다.(267)
어떤 여성이 살아남았는가?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아니 그것만을 할 때 여성은 살아남을 자격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지식과 통제권을 상실함으로써 이제 여성의 몸은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고, 그 통제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공격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달라 코스따가 드는 사례는 19세기 미국의 ‘정식’ 의료계에서 여성을 겨냥하여 이루어진 유사 의학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 ‘의학’은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남편 손에 이끌려 수술을 받으러 왔다. 남편은 아내의 통제되지 않는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는데, 아내들은 수술 이후에 좀 더 “다루기 쉽고, 질서가 잡히고, 부지런하고, 단정해졌다.” … 당시의 수술 환경을 고려할 때, 이 처벌적 치료법은 여성에게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때로는 수술 위협만으로도 여성이 동조하도록 만드는 데 충분했다는 점이다.(272)
여성의 ‘성격 장애’를 고치기 위해 난소를 제거하고, 여성의 성적 흥분을 질병으로 보고 음핵을 제거하는 이 유사 의학은 정말로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신체는 불태워지고, ‘수술’을 겪으며 사랑의 이름으로 대가 없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자연이 되었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운동은 이렇게 자연화된 역할에 대한 거부였다. 여성들은 집안의 노동을, 그리고 “가정이 기존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자신의 운명이 가정의 의무에 예속되는 한 가정 자체를 거부하기로 했다.”(66)3) 이러한 운동은 발생 자체가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운동의 형성 자체가 고립을 타파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임금은 최종 목적이 아니며 ― 무엇보다 임금을 주면 가사노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 공통의 이해관계로서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매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연결이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사회 재생산 부문에 대한 재정 지출 확대를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재생산을 “협상의 영역”(108)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재생산 노동의 거부는 어떤 한계에 도달한다. 노동을 거부하며 기계를 내버려 둘 수 있었던 공장 노동자와 달리 여성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기 때문이다(398). 이것이 산업 노동계급과 가사노동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출산을 거부하더라도 여성은 실질적으로 돌봄 노동에서 해방될 수 없었는데 달라 코스따는 “노인 돌봄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그 사례로 든다. “엄마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155) 이렇게 여성은 “항상 집안일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노동 규율에서 훨씬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 결과, 여성은 생산 흐름에 혼란을 초래하여 자본에 더 높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것이 임금 차별의 한 구실이” 된다(27, 강조는 인용자의 것). 이렇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재생산 노동의 특수성, 집 밖에서 ‘진짜’ 노동을 하더라도 항상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두어야만 하는 상황은 여성들의 투쟁이 지닌 한계를 보여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가령 노동 규율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차별의 구실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일자리 따위”보다 다른 것을 ― 이 다른 것이 아직은 그들에게 착취와 억압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 더 우선할 수 있는(혹은 해야 하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다른 주체들의 투쟁을 견인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4)
이 점을 좀 더 논의하기 전에 달라 코스따가 그 ‘한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달라 코스따는 이 책의 3부 3장, 「정원으로 나가는 문」에서 자신의 사상이 새롭게 확장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노동자주의 운동과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즉 “긍정적인 방향으로 저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 강렬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다른 전망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을 “토지 문제”에서 발견했다고 말한다. “땅과 바다를 살리다”라는 부제를 단 책의 4부는 그가 새롭게 찾은 대지의 돌봄이라는 문제를 반복해서 다룬다. 그에 따르면, 구조 조정 정책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재생산의 저발전을 꾀한다. 대표적인 방식이 땅을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기존의 공통장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벌거벗은 노동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팔려간 사람들처럼 기존의 관계에서 뿌리 뽑혀 세계 곳곳 ― 특히 북미와 유럽 지역 ― 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 과정은 무엇보다 그들의 힘을 약화시킨다. 낯선 땅에서 고립된 존재로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의 축적과 생산의 발전은 바로 이 재생산의 저발전에 기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발전의 핵심인 토지 수탈을 극복하는 것이, 대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달라 코스따에게 중요한 문제로 설정된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지와 관계 맺으려는 의지가 삶의 양식 전체를 바꾸려는 의지로 가는 첫걸음이다.”(336) 즉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은 대지와의 다른 관계 맺기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달라 코스따의 문제의식은 가정에서 대지로 확장되는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 「여성과 공동체 전복」을 쓰면서 ― 자본이 집안에서 수행되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무상 흡수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 가정을 투쟁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그의 시각은 ― 신자유주의 자본이 재생산의 저발전에 기대고 있기에 ― 대지라는 의제로 동형적으로 확장된다. 그 시각이 동형적인 것은 가정과 대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모두 재생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만이 아니라 소농이라는 주체도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렇다면 이 두 주체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여기서 “한계”의 문제가 돌봄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하는데 이 한계는 두 주체에게 다소 다르게 다가온다. 우선 소농은 대지와 그 속의 생명이 갖는 한계를 존중해왔다. 이것은 오늘날 산업화된 영농이 동물을 기계화하고 땅을 고갈시키며 생물다양성을 훼손하는 것과 대비된다. 그러나 소농은 비료-산업 복합체 때문에 대지의 한계를 무시하고 자신이 지켜 온 존중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투쟁력이 갖는 한계다. 여성의 노동 거부 역시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계에 부딪힌다.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들의 안녕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 달라 코스따는 이점이 바로 재생산 노동을 둘러싼 투쟁에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한계라고 말한다. 요컨대 대지의 (생명으로서의) 한계를 지키지 못한 것이 소농의 (능력의) 한계라면, 자신에게 의존하는 이들의 (생명으로서의) 한계를 지키기 위해 재생산 노동을 완전히 거부하지 못한 것이 여성의 (능력의) 한계다.
그러나 여성이 재생산 노동을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것은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책임감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성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능력의 표현이 아닐까? 문제는 재생산 노동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 돌봄은 너무나 중요하므로 우리는 이것을 버릴 수 없다 ― 다르게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은 미성숙함과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생명의 존재론적 원리다. 따라서 “자신에게 의존하는 이들”을 돌보는 것은 비록 그 일이 여성에게 본성에 따른 일로 강제될 때조차도 여성이 지닌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집안의 여성을 총체적으로 배제된 주체로 이해하는, 그로 인해 그들을 무력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과거처럼 재생산 노동을 할 수도 없고, 자식(혹은 노인)을 버릴 수도 없을 때 그들은 ‘다른’ 재생산을 추구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본을 지탱하는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뒤집는 형태가 될 것이다. 소농 역시 그들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지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이미 해오고 있다. 우리는 이 운동을 여성들의 책임감이 대지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주체들의 책임감, 즉 대지와 가정, 그 안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 이 세계를 지탱한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돌봄 윤리를 부정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여실히 겪는 중이다. 소농과 여성이 부딪힌 한계는 오히려 그들과 대상의 관계 속 윤리적 차원을, 돌봄의 원리를 드러낸다. 그것은 자연과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책임이 순환하는 관계를 생성하는 것이다.
달라 코스따는 그러한 돌봄의 원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영양분을 얻을 가능성을 더 많이 보장하는 전통 경작법의 구체제적인 체계 속에 이미 내재하고 있다”(401)고 본다. 그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일까? 전통 경작법을 옹호하고 “‘절대로 과거를 그리워하면 안 된다’는 신화”(308)를 비판할 때 그는 분명 그러한 입장을 내비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토지, 물, 씨앗,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오래된 사회적 지식”(394)을 쥔다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과거로 돌아가는 일로 이해할 때 우리는 기술의 진보와 발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중립적인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세력 관계에 의해 선택된다. 하나의 선을 따라 발전하는 기술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오래된 지식’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기보다 다른 길로 들어서는 일이다. 그 길은 전통 경작법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며, 그 길의 경계선은 ‘오래된 지식’과 비료-산업 복합체의 세력 관계에 의해 그어질 것이다.
돌봄은 타인의 신체적·감정적 필요를 직접 보살피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돌봄을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핵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돌봄 콜렉티브>에 따르면 돌봄은 “삶의 안녕과 번영에 필요한 모든 것의 보살핌을 포함하는 사회적 능력과 활동”이다. 비돌봄이 만연한 이 세계에서 “만약 우리가 삶의 한가운데에 돌봄을 두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5) 달라 코스따는 여성과 소농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그들이 지나온 길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1) 네그리와 하트는 “메트로폴리스와 다중의 관계는 공장과 산업노동계급의 관계와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오늘날 생산 활동이 공장의 벽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산되는 상황을 가리킨다(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2014, 350쪽). 달라 코스따라면 이 사회적 공장이 집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2)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이영주·김현지 옮김, 갈무리, 2020, 34쪽. 이하 이 책의 인용문은 본문에 숫자만 표기한다.
3)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들의 노동 거부는 기록적인 저출산, 결혼 기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들을 고립시키는 가정에 대한 거부, 무엇보다 그 안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달라 코스따는 출생률 감소가 “어떤 하나의 요소로 해명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여성이 획득한 힘의 정도를 보여 주는 것”(103)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출산율 개선을 위해 많은 재정을 투입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가정이 젠더 위계를 부과하고 젠더 규범을 강요하며 성분업이 유지되는 제도로 남아 있는 한 여성들이 그곳으로 돌아갈 이유란 없다.
4) 비슷한 맥락에서 달라 코스따가 이탈리아 남부 출신 노동자들이 북부 공장에서 일으킨 투쟁의 원인 중 하나를 남부 여성들에게서 찾는 방식은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임금을 직접 관리하게 된 여성들은 “연장자들이 주로 저축을 하거나 땅에 투자했을 돈을 자식에게 쏟는 쪽을 택했다. 1960년대 피아트에 일하러 간 남부 출신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은 이 새로운 투자 방식에 동화되어 더 높은 생활 수준을 기대했다.”(104)
5) The Care Collective, The Care Manifesto: The Politics of Interdependence, Verso, 202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글.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3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이트는 편집을 대충 하는 것 같다. 각주가 본문에 다 들어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