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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윤 Mar 06. 2021

(소설) 자살클럽 2

2. 계획 세우기

2. 계획 세우기

    

 학교는 늘 시끌벅적하다.

 “서희야!”

 내 가장 친한 친구 지연이다.

 “야, 이것 봐.”

 서희는 자신의 눈꺼풀을 살짝 잡은 채 눈을 크게 떠 쌍꺼풀을 만들었다.

 “어때? 나 엄마가 이번 겨울에 쌍수 시켜준대!”

 지연은 행복해 보였다.

 “없어도 충분히 예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이 반응? 하여튼 있는 것들은 없는 것의 마음을 몰라요.”

 지연은 내 눈에 자리 잡힌 자연산 쌍꺼풀을 지긋이 바라보며 장난치듯 말했다. 나한테는 그 쌍꺼풀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만, 지연에게는 중요한 듯했다.

 “근데 쌍꺼풀 있어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너는 쌍수비 굳었다고 생각해. 좋겠다~.”

 지연은 푸념하듯 말했다. 나는 속으로 ‘좋을 것도 많다. 나는 네가 더 부러워.’라고 말했다. 물론 티 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지연네는 우리집과는 정반대로 아빠가 참 자상하고 부부 금실도 좋아보였다.

 “아, 맞다. 서희야. 어제 우리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었잖아. 네 추천대로 무드등 선물드렸는데 감동받으셨어! 고마워.”

 지연이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 엄마아빠도 좋아하셨거든.”

 거짓말이었다. 나는 엄마아빠한테 무드등을 선물한 적이 없고, 더불어 결혼기념일을 챙긴 적도 없다. 단 한 번도 화목한 적 없었지만, 지연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늘어나는 거짓말 때문인지 지연은 내게 부럽다는 말을 종종 했다.

 “너는 엄마아빠한테 안 혼나서 좋겠다.”, “너희 엄마아빠는 금실이 좋으셔서 좋겠다.”, “너는 미래 걱정 없어서 좋겠다.”

 이런 말을 할 때면 나는 그냥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뭘~.”

 어깨를 한 번 으쓱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웩. 내가 생각해도 아주 웃긴다.



 처음부터 지연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에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연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있었다. 여유롭고, 온화하고, 행복하고, 사랑 많이 받고, 편안한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거짓된 시선이 불편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이제는 내가 아닌 내가 진짜 나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끔 우리 엄마아빠 보면 신기하다니까? 두 분이 볼 뽀뽀할 때면 으~ 징그러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거나, “공부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래. 대학 나와 봤자래. 우리 아빠랑 엄마 서울대 cc였잖아. 차라리 배낭여행을 다녀오래.” 이렇게 어디서 들었을 법한 말을 마치 부모님께 들은 것처럼 꾸며 서슴없이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만들어냈고,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는 내가 한 거짓말을 까먹을 정도였다.

 나는 도서희였지만, 동시에 도서희가 아니기도 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했지만, 나는 수업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지긋지긋한 공부는 이제 굿바이다. 왜냐고? 자살할 거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삼차방정식, 근의 공식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설마 저승길 앞에서 수학 문제를 주고 풀어야 죽을 수 있다고 하진 않겠지.

 나는 교과서 귀퉁이에 투신 no! 익사 no! 라고 끄적이다 이내 직직 그어 글자를 감췄다.

 책상 서랍에서 새 공책 하나를 꺼냈다. 원래 오답 노트로 쓰려했던 공책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자살계획 노트가 되어버렸다.

 ‘안쓰러운 나의 노트여.’

 노트 커버를 넘기고 첫 장 맨 위에 이렇게 썼다.     


<자살방법>     


 나는 눈을 좌우로 돌렸다. 혹시 주변 애들이 볼까 봐 순간 소심해졌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다시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자살방법>이라고 쓴 글씨 위에 자주색 필통을 올려놓고 평소보다 글씨를 조금 더 작게 썼다.     


 -손목 긋기? 과다출혈

 -목매달기

 -수면제 과다복용?     


 텔레비전에 흔하게 나오는 자살방법이다.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초등학교 1학년도 아는 자살방법. 아는 대로 적어보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일단 손목 긋기는 상상만 해도 손목이 아리고 시리다. 교과서에 손을 조금만 베여도 빨간약에 후시딘에 대일밴드까지 붙이는 내가 손목을 어떻게 긋겠는가. 자신 없다. 순간 내가 참 모순적이란 생각을 했다. 뭐, 죽고 싶단 거지 아프고 싶단 건 아니니까. 어쨌거나 손목 긋기도 no!      


-손목 긋기? 과다출혈     


 그다음은 목매달기.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신을 상상하니, 간담이 서늘해지며 내장에 한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건 죽은 후에 일이니 알 바 아니다. 목매달기는 고전적이지만, 자살방법 랭킹 1위를 차지했으며 역사가 깊은 녀석이다. 그만큼 확실하고 그나마 덜 고통스럽다는 방증이 아닐까. 목을 매달았을 때 몇 분 내로 죽는지 자료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일단 목매달기 글씨 위에 세모를 그렸다.


 세 번째, 수면제 과다복용. 그런데 수면제를 어떻게 구하지? 그리고 몇 알을 먹어야 하는 거지? 의학 드라마를 보면 죽기 전에 가족에게 발견되어서 위세척을 당하던데. 이 방법 또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것 같다. 수면제 과다복용에도 세모를 쳤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자 지연이 내 자리로 왔다. 나는 지연이 보기 전에 공책을 덮고 수학 교과서와 함께 책상 서랍으로 넣었다. 얘는 또 무슨 얘기로 나를 긁을까?

 “서희야~. 우리 매점 가자. 입이 심심해.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한다!”

 마침, 내 뱃속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쳤다.

 “그래. 난 초코빵 먹어야겠다.”

 나는 대답했다.

 “오늘 아침 안 먹었어? 아침 안 먹으면 엄마아빠한테 죽음이라며! 어떻게 피했어? 아침 밥순이가 아침을 다 안 먹고.”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 내가 아침밥 귀신이라는 그런 거짓말을 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별 의미도 없는 그런 거짓말을.

 “오늘은 늦게 일어나서 못 먹었어.”

 “어머! 웬일이래! 아침형 인간 도서희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지?”

 지연은 장난스레 말했다.

 나는 지연은 보고 슬쩍 미소 지었다.


 내가 죽으면, 이 지긋지긋한 거짓말에서도 벗어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편했다. 더는 지연의 말과 내가 만들어 놓은 거짓말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지연이가 싫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연이가 부러워서, 조금 많이 부러워서, 밉고, 배가 아팠다. 이젠 지연이를 그만 미워해야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모처럼 학교가 편했고, 시간도 빠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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