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서윤 Mar 08. 2021

(소설) 자살클럽 3

3. 유리 파편

3. 유리 파편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앉아서도 오로지 자살 생각뿐이었다. 자살할 사람이 학원에는 왜 가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차피 오늘은 못 죽으니까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평소처럼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당장 오늘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나는 골백번은 더 죽었을 거다.

      

 술 마시고 들어와 눈이 시뻘게져서 나를 깨우는 아빠 때문에 이 세상은 내게 지옥이다. 아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날아오는 유리컵과 밥그릇, 매일매일 입에서 튀어나오는 뱀 같이 소름 끼치는 욕, 옆에 있는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뺑뺑이 돌리는 아빠의 감정 기복으로 나와 엄마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죽고 싶었을 때가 이때뿐이었을까? 엄마가 “아휴, 살 수가 없다. 너희 아빠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서희, 너 때문에 산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 한 좀 풀어줘라. 응? 네가 공부 못하면 아빠가 엄마만 더 괴롭혀.”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안 태어났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원 수업 전, 목매달기에 대해 검색을 했다. 검색창에 겨우 ‘목매’만 쳤을 뿐인데 그 밑 연관검색어에 ‘목매서 죽으면’이 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검색했던 걸까.

 목을 매달아 죽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이내다. 산소공급 중단으로 먼저 기절하고, 그 뒤에 숨이 끊어진다. 기절한 후에는...... 고통이 없다.

 ‘그래, 이거야.’

 내친김에 자살 매듭을 검색해 캡처해놨다. 정말 죽는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고, 알 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인터넷에는 나처럼 자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댓글에는 “죽지 마세요. 죽을힘으로 살아보세요. 세상은 살아볼 만해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아요.”와 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중 딱 하나, 마음에 와 닿았던 댓글이 있었다.

“살기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꾸 죽을힘으로 살라는 말하지 마세요. 님들이 저 사람 인생을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는 거지.”

 맞아. 자기들이 뭘 안다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학원 선생님이 강의실로 들어왔고, 그제야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 다음 지문을 한 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산지 비율은 72%로... 산지 비율 동그라미 치고, 남한의 산은 8,751개이며….”

 학원 선생님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동그라미를 왼손으로 크게 그렸다. 몇몇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킥킥댔다.

 ‘산이 8751개라니. 내가 아는 산은 고작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북한산, 우리 동네에 있는 이름 모를 야산….’

 그때 한 생각이 스쳤다.

 그래! 집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야산에서 목을 매면 되겠다! 왜 산이냐고? 적어도 목 맨 나를 최초로 발견하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었으면 했다. 나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 눈에는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앞에 있는 선생님을 쳐다봤다. 이제 이 학원도 곧 끝이구나. 학원에서의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포기하니 모든 쉽구나, 인생이 이렇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한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곧장 창고로 갔다. 목을 맬 수 있는 긴 로프를 찾아야 했다. 창고에는 김장할 때 쓰는 고무대야, 비닐을 씌워놓은 선풍기, 1+1로 산 두루마기 휴지와 간이 의자가 어수선하게 엉켜있었다. 아무리 봐도 끈은 없었다.

 “엄마, 캠핑이나 등산 로프 같은 거 혹시 있어?”

 “등산이나 캠핑을 간 적이 없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니.”

 한 번에 납득이 되는 말이라 나는 창고 문을 닫았다. 꼭 로프가 아니어도 된다. 끊어지지 않을 끈이면 충분했다. 그런 게 뭐가 있을지 생각에 잠기던 찰나에 엄마가 물었다.

 “왜, 어디에 쓰려고?”

 “그냥 뭣 좀 묶으려고.”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근데 아빠는? 아직 안 오셨어?”

 “응. 오늘 전체 회식이라고…….”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10시 반이 훌쩍 넘었다.  

 “그럼 술 마시고 오는 거야?”

 짜증이 확 밀려왔다.

 “오늘도 많이 취해서 오겠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빠가 늦게 오면 불안하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오면 두렵다.

 ‘이 불안함, 짜증남, 두려움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렇게 담담하게 마음을 먹고 식탁으로 갔다. 뾰족하거나, 꼬챙이처럼 찌를 수 있거나, 깨지는 위험한 것들을 모두 치워 찬장 깊숙이 넣었다. 그다음은 싱크대로 가서 이미 끝이 휘어버린 과도와 식칼을 잘 열지 않는 서랍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있는 부엌칼은 모두 끝이 살짝 휘어있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과도나 식칼은 웬만하면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아빠가 오기 전까지 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어떤 트집을 잡아 엄마와 날 괴롭힐까? 생각만 해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내일 죽을까.'

 자살은 원래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이 하는 거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죽일 순 없으니, 내가 죽는 거다. 게다가 상대는 부모를 죽인 원수가 아니라 아빠다. 친아빠.

 가끔 뉴스에서 폭력을 행사한 아빠를 죽인 자식 이야기가 나온다. 여론은 그래도 어떻게 아빠를 죽이냐, 패륜이다 떠들지만, 난 그 자식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살고 싶으면 아빠를 죽였을까.

 하지만 난 아빠를 죽일 순 없을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그래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을乙”로서 일하는 아빠의 노동 자유를 위해, 덩달아 엄마의 지옥 탈출을 위해 기꺼이 내 한 몸 던지겠다 이거다.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보았지만 도저히 끈이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옷장 문을 열었다. 아빠의 넥타이를 보자 회사원들이 자살할 때, 넥타이를 이용한다는 게 떠올랐다.

 티 나지 않게 가장 오래되고 허름하며 촌스러운 넥타이 하나를 골랐다. 푸른색에 마름모 모양의 땡땡이가 박힌 것이었다. 양손에 넥타이를 한 바퀴씩 감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넥타이는 탕탕 소리를 내며 자신이 쓸만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넥타이를 돌돌 말아 잠옷 바지 주머니에 넣고 안방을 나섰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 나는 '팅'하는 소리가 문밖에 울려 퍼졌다.

 “엄마! 나 잘게! 엄마도 빨리 들어가서 자는 척해.”

 나는 작은 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 반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새벽에 들어오지. 차라리 집에 들어오지 말지. 차라리…….

 나는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쿵쿵쿵쿵.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비트에 맞춰 아빠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 띠, 띠, 띠. 띠리리링! 아빠는 비밀번호를 틀리게 눌렀다. 다시 띠, 띠, 띠, 띠. 철컥. 문이 열렸다.

 “왔어요?”

 엄마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고, 아빠는 아직 아무 말이 없었다.

 ‘부디, 제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으니 제발, 조용히 넘어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님. 아! 만약 조용히 지나가면 자살하는 걸 한 번 더 생각해볼게요. 날짜를 조금 미룬다거나. 어쨌거나. 제발…….’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외웠다.     

 

 어른들은 잘 모른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표정 한마디에, 모든 걸 안다는 듯한 몸짓에 나 같은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상처 받는다는 사실을. 아니, 그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고? 이미 자신들도 다 겪은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글짓기 시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빠라는 주제로 창작 글짓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날은 술 마시고 들어온 아빠가 유리컵으로 벽에 다트 게임을 하는 바람에 한숨도 자지 못했던 날이었다. 그런 내가 아빠에 대해서 무엇을 쓸 수 있었을까.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서희야. 선생님이 글을 읽어봤는데 말이야. 혹시 소설을 쓴 거니?”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차마 '어젯밤 우리 집 일을 글로 옮긴 건데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이건 좀 너무 한 것 같아. 물론 지금도 폭력 가정이 많다고는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이 정도는 아니야. 유리컵을 집어던지고, 자식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칼 들고 다니고, 칼로 식탁을 찍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드물다는 거야. 내용이 다소 폭력적이고 현실감이 없고 너무 망상적이라 선생님이 불렀어. 이런 아빠는 없어, 서희야. 만약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병원에 보내야지. 혹시 뭐 무슨 심경의 변화 같은 게 생겼니? 왜 이런 글을 쓴 거야?”

 선생님은 그런 아빠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나는 선생님을 물끄러미 봤다. 선생님은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진짜 있는 일이에요. 직접 들었어요, 제 친구한테. 걔네 아빠가 이런대요. 진짜요.”

 나는 거짓말했다.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경멸하는 듯하기도 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도 지었다. 선생님한테 내 얘기라고 안 하길 잘한 듯했다.

 “정말이니? 그 친구가 거짓말로 과장되게 말한 건 아니고?”

 “네. 진짜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말해준 거였어요. 비밀이라고 하면서요.”

 “아휴. 말세다. 도움을 줘야지. 누구야? 선생님이 모르는 척할게. 모르는 척 도와줄게. 응?”

 “우리 학교 학생 아니에요.”

 “그런 부모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해. 어휴,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네.”

 참 이상한 게, 욕을 들어도 마땅한 아빠였지만, 선생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았다. 당연한 건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건가.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 담임의 인성에 돌을 던지고 싶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학교는 쓸데없는 곳이다.

 담임한테 내가 도움을 청하는 일을 세상이 찢어져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어른에게만큼은 절대 내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희는. 자고있쒀?”

 방문 너머로 아빠의 술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더 꼭 감았다.

 “나오라고 해. 어디 아빠가 집에 왔는데. 어? 싸가지없이 말이야. 씨...”

 아빠의 입 안은 뱀, 바퀴벌레로 장전 완료 상태였다. 이제 내게 욕을 쏘기만 하면 됐다. 아, 내가 오늘 죽었어야 했는데.

 “야. 도서희. 당장 거실로 안 나와? 이년이 싸가지없이 말이야.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어?”

 “어후. 내일 얘기해, 내일. 내일 서희 학교에서 시험 있다고 공부하다 방금 누웠어.”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잠잠해질 아빠가 아니었다.

 “야. 도서희 나와. 싸가지 없는 년.”

 아빠는 내 방문을 발로 찼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어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며 인사했다.

 “공부하는 게 유세냐? 너 아빠 물 마시게 한 잔 떠와서 이리로 앉아봐. 지금 너 때문에 아빠가, 어? 이렇게 개 같은 취급을 당하며 돈을 벌고 있어. 내가 너하고 너희 엄마한테 못 해준 게 뭐냐? 돈을 안 벌어다 줬어, 밥을 굶겼어, 추위에 떨게 했어? 그런데 너네는 둘 다 나를 개무시해? 내가 너희한테도 그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냐? 어? 둘 다 싸가지없이 말이야. 애미나 딸이나 똑같이, 어? 아빠가 왔으면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쳐 자고 있어? 이런 개씨... 그래서 너는 공부를 잘하긴 하냐?” 는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플라스틱 컵에 물을 받아 아빠한테 줬다.

 “컵이 이게 뭐냐? 애들 컵도 아니고. 다시 떠와. 이러니까 공부를 못하지. 네 애미 닮아서 공부도 제대로 못 하면서”

 ‘네 애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화가 치솟았다. 엄마를 봤다. 엄마는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부디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렇게 있어 주길 바랐다. 엄마나 나나 말대답을 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유리컵으로 물을 새로 떠 아빠한테 줬다.

 “근데,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어? 하. 대답도 안 하네. 지금 나 개무시하는 거냐? 이 씨...”


 차라리 내 귀가 먹어버렸으면 좋겠다. 귀도 멀고, 눈도 멀고 그렇게... 그렇게... 그때 엄마가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진짜, 누군 욕을 못 해서 안 하나.”

 나는 애원하듯 엄마를 쳐다봤다.

 ‘제발, 엄마. 그냥 넘어가자, 응?’

 심장은 다시 빠른 비트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초점이 없던 아빠의 눈은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컵을 엄마에게 집어던졌다. 마치 투수가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지듯 컵을 던졌다.

 나는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엄마는 날아오는 유리컵을 보고 고개를 돌렸고, 다행히 컵은 엄마를 지나쳐 거실벽에 부딪혔다. 엄청난 속도로 벽에 부딪힌 컵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아빠의 힘찬 투구력 덕분에 컵은 꽤 멀리까지 날아갔고, 다행히 파편이 식탁까지 튀지 않았다.

 ‘그래, 정말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그러니 저렇게 멀리 던졌지.’

 아빠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가 잽싸게 피한 것을 보고도, 나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된 나는, 스스로 덜 불행하도록 생각을 조작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면서도 꼼짝할 수 없었다. 아빠의 입에서 나온 뱀이 내 몸을 칭칭 감아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너도 똑같아. 공부라도 잘하던가, 그게 아니면 아빠한테 잘하던가. 아빠가 말하면 대들거나 씹거나.”

 평상시 같으면 나는 앉은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없던 용기가 치솟았다.


 “그만 좀 해!!”

 나는 울부짖으며 소리 질렀다.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물건 던지지 마. 욕하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이건 분명 죽기 직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아빠는 나의 첫 발광에 조금은 놀랐을까? 아니면 더 화가 났을까?

 앉아있던 아빠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미쳤나, 어디서 아빠한테!”

 아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뺨을 때렸다. 그것도 아주 세게. 대든 건 처음이었지만, 뺨을 맞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세게 맞은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더 이상 아빠가 아니었다. 술이라는 마귀에 씐 악마였다. 아내와 딸을 적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마귀 말이다.

 “서희야!”

 이제는 엄마까지 일어섰다. 우리 세 가족은 그렇게 어정쩡하게 일어서 있었다. 나는 뒤돌아 내 방으로 들어가 패딩을 집어 들었다. 수전증 있는 사람처럼 손이 덜덜 떨렸다. 내 방에서 안방으로 건너가 엄마 패딩을 꺼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잽싸게 거실로 나왔다.

 “앗!”

 우리는 유리 파편을 밟고 말았다. 하지만 엄마와 나 그 누구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그 자리에 서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한마디 했더니 뽀르르 집을 나가? 잘못했으면 반성을 하고 용서를 빌어야지 집을 나가? 어, 그래. 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밖은 대충 걸치고 온 패딩 하나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에도 집보다 밖에 더 편했다. 아빠를 생각하니 칼바람이 조금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점점 익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삶이란 마치 뜨거운 물에 들어있는 개구리의 시간 같았다. 이곳이 지옥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개구리가 내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발 괜찮아? 유리 조각 박힌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살짝 스쳤어. 지금 안 아파. 엄마는?”

 “응. 엄마도 괜찮아. 일단 찜질방으로 가자. 발도 보고 한숨 자기도 하고. 아빠 잠들면 그때 들어가야지. 내일 학교도 가야 하잖아.”

 엄마와 나는 팔짱을 끼고 찜질방을 향해 걸었다.

“엄마, 난 정말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아빠가 죽으면 안 되잖아. 우린 아빠가 번 돈으로 살고 있으니까…….”

 엄마한텐 괜찮다고 했지만, 발뒤꿈치가 따끔거렸다.

 “엄마도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어. 앞으로 어떻게 더 같이 살아야 할지. 그래도 엄마도 돈 버는 거야.”

 “그래도 아빠가 버는 것보다 적잖아. 그걸로 넉넉하게 살긴 힘들잖아.”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 걸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혹시 핀셋이랑 소독약 있을까요? 유리를 밟아서요.”

 엄마는 계산한 쿠폰을 건네며 말했다. 꾸벅꾸벅 졸던 사장은 우리를 한 번 쓱 보더니 입을 한 번 다시고 일어섰다. 그리고 뒤 서랍을 열고 과산화수소, 핀셋, 연고, 반창고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까까진 따끔거리는 걸 견딜 만했는데, 지금은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까치발로 절뚝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앉아서 발 줘봐. 그리고 여기 폰으로 비춰봐, 안 보이니까.”

 엄마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내게 건넸다.

 “어휴, 진짜. 인간쓰레기다. 식탁 유리도 깨, 컵도 깨, 접시도 깨, 칼끝도 해 먹어.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악마. 서희야, 빨리 커서 날아가라.”

 엄마는 내 발꿈치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럼 나 날아가면 엄마는?”

 “너 날아가면 엄마도 날아갈 거야. 마음 편한 곳이 최고지. 엄만 네 아빠 때문에 정말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어.”

 엄마는 핀셋으로 작은 유리 조각을 뽑아냈다.

 “아악!”

 나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유리 때문에 나오지 못하고 있던 피가 용암이 되어 솟아 흘렀다. 엄마는 내 뒤꿈치를 휴지로 꾹 눌러 지혈시켰다.

 “어때? 이제 눌러도 안 아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뽑은 유리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게 보여줬다. 잘 보이지 않아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유리 파편이 플래시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아주 작고 날카로웠다. 손으로도 잡을 수 없는 이 작은 거 하나가 나를 아프게 하는구나.

 “엄마.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저런 사람인지 연애할 땐 몰랐던 거야?”

 “연애할 땐 안 그랬어.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어휴. 내 더러운 팔자다. 저 인간이 빨리 죽든, 내가 죽든 해야지. 같이는 도저히 못 살겠다. 엄마 일찍 죽어도 서운해하지 마라.”

 엄마는 서슴없이 말을 내뱉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어렴풋이 안다. 엄마도 마음이 아프겠지, 속상하겠지. 엄마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이해하지만 엄마가 저런 말을 할 때면... 엄마도 싫어졌다. 엄마도 아빠도 그냥 다 싫다.


 '내일 꼭 죽을 거야. 내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힘든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찜질방은 따뜻했다. 온몸이 노곤해졌고 잠이 쏟아졌다. 살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절대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으로 뜬눈을 지새웠겠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엄마는 내게 목 베개를 갖다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락카 근처에서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엄마도 울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미안해.’라며 흐느꼈다. 이게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르겠다. 현실이지만 마음이 아파서, 현실이 아니길 바랐던 걸까. 그래서 꿈으로 기억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 기억이 꿈이길 바랐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자살클럽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