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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 Feb 27. 2019

1. 흙은 보는 것 이상으로 차갑고 무겁다.

1주차: 석고틀 작업

- 1주차 (18/12/30) : 흙은 보는 것 이상으로 차갑고 무겁다. (석고틀 작업)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느긋하게 낮잠을 자도 모자랄 한겨울 일요일 아침, 아침잠도 많아 매일 59분에 맞춰 출근을 하는 주제에, 취미 한번 가져보겠다고, 기어코 일어나서 도예공방에 갔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알아보고 몇 번이나 구글 지도도 확인했는데. 결국 도예공방 위치를 못 찾겠어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선생님께 카카오톡 메시지를 드렸다. "선생님, 저 길을 잃었나 봐요."


하얀색 벽지, 작은 화분, 통창. 도예 공방의 첫 느낌은 추웠다.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그 시간, 공방의 전기가 다 나갔다고 한다. 다행히 한쪽면의 벽은 통창으로 뚫려있어 낮 12시의 태양이 스멀스멀 들어왔지만, 아직은 한겨울, 아직은 12월. 너무 추웠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처음 보는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은 다짜고짜 흙을 소분해서 나눠주셨다.


약간은 어색하고, 낯선 공간 속에서 낯선 흙에 손을 댔다. 이게 웬걸? 너무 차가웠다. 손이 얼 것만 같았다. 원래 도예란 이렇게 차갑고, 어려운 것? 괜히 도자기 만드시는 장인들이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너무 '어려운' 취미에 도전한 거다. 그냥 집 앞 카페에서 책이나 읽고, 맛집이나 탐방하는 취미나 가질걸. 바로 후회가 되었다. 전기 기사님이 도착하고, 내 앞에 놓인 전기난로가 켜지기 전까지는.


몸이 따뜻해지니 그제야 내가 만지고 있는 흙의 촉감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마냥 부드러울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가장 처음 내게 주어진 도구는 '밀대'. 첫 번째 미션은 흙 양쪽에 기준선인 나무막대를 두고, 나무막대의 두께만큼 흙을 밀대로 미는 것이었다. 잠깐 너무 시시한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미는데, 아무리 밀어도 잘 밀리지가 않았다. 밀고 밀고, 또 밀었다. 손목이 시큰시큰하고, 다 밀었다고 생각될 때쯤 선생님을 잠깐 바라봤는데, 선생님이 내 흙을 보더니 밀대를 잡으시고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하셨다. 저.. 이거 다 민 건데요, 선생님..?


밀대를 잡은 선생님은 흙을 가차 없이 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한건 '꼼지락' 정도 수준에 지나치지 않을 만큼 흙은 사정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흙은 애초에 의자에 앉아서 만만하게 밀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진지하게, 두 손으로, 일어서서 온 몸의 체중을 가득가득 실어서 밀어야 하는구나. 원래 이런 존재였구나.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구나. 그런데 어쩐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흙을 어느 정도 다 밀자, 이번엔 여러 색깔들의 가루 흙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 몇 개를 골라서 색깔 흙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흙에 색을 칠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흙이 마르고 그 위에 도자기용 물감으로 색을 칠하는 방법도 있지만, 애초에 만들 때 색깔 흙을 이용하여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번엔 색깔 흙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흙을 송편처럼 만들고, 그 안에 가루를 넣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다시 흙을 여민다. 그리고 조물조물 반죽을 하면 예쁜 색깔 찰흙이 완성된다. 이때, 적당히 반죽하면 대리석 마블처럼 그 결이 살아있고, 완전히 반죽하면 색깔이 통일된 흙이 만들어진다. 얼마만큼의 흙에 얼마만큼의 가루와 물을 넣고 얼마만큼 반죽하냐에 따라, 구웠을 때 전혀 다른 색이 나온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다음엔, 밀대로 밀어둔 흙 위에 색깔 찰흙들을 적당한 모양을 유지하며 위에 올려두고 밀대로 밀어 하나의 흙으로 합치는 작업이다. 미는 방향에 따라 '원'을 생각하고 놔두었던 흙이 '타원형'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어서 나 같은 초급자한테는 무슨 모양을 만들어야지 하고 의도하기보다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툭툭 올려두고 밀대로 미는 대로 멋대로 퍼지는 흙들이 더 마음에 갔다. 주중에 일하면서 뭐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따라가는데, 일요일 하루만큼은 무계획대로, 손가는대로 만들어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포도알이 좀 찌그러지면 뭐 어때? 그래 봤자 진짜 포도도 아니고 그릇 무늬인데.


여기까지 했으면, 이제 벌써 마무리 단계이다. 원하는 그릇 모양이 석고틀을 두고, 그 위에 흙을 올리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스펀지에 물을 묻혀 흙이 그릇에 잘 붙게 꾹꾹 누르고, 적당히 칼로 끝을 도려낸다. 그 후에 바닥 밑 면에 얇게 굽을 만들고, 말리면 하나의 그릇이 완성된다! (물론 초벌을 하고, 유약도 바르고, 또 추가로 물감도 칠하고, 또 굽고, 이렇게 해서 한 달 후에야 흙이 그릇으로 바뀌지만 말이다.) 한번 하고 나니 두 번째 세 번째는 금방이었다. 뚝딱뚝딱, 3개의 그릇을 만들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처음엔 마냥 차갑고 무거웠던 흙인데 흙을 미는 요령도 조금은 늘은 기분이었다. 다음에 밀면 더 잘 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았다. 글쎄? 기분 탓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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