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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연수 Nov 21. 2021

걷기 in 서울 7

수월관음 (고려불화 그 장엄한 서사)

틈만나면 박물관이나 궁궐, 사찰을 쫓아다니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처음 들어간 직장은 중국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을 하던 업체였는데, 업무관계로 가끔씩 가던 유럽출장길에 들렀던 그곳의 박물관과 성당과 같은 유적지에 받았던 인상의 영향이 크다.  처음 가본 그 곳의 궁전과 성당의 벽과 천정을 가득 장식하고 있던 그 수많은 그림들 속의 이야기들이 내게는 모두 익숙한 것들이어서 내심 놀랐다.  오랫동안 우리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았을 그들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문화 이야기를 내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좌절감을 주었다.  예수의 생애는 그토록 상세히 알고 있는데,  기독교 문명이 이 땅에 찾아오기 전에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종교로 혹은 예술로 표현되었을 불교와 유교 문화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별반 없었다.  

비록 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상의 생활 속에 분명 깊이 관여하고 있을 불교와 유교 문화 그리고 무속신앙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경주 남산이나 서울의 중앙박물관이 아니라 서양문명의 한가운데인 로마 포에니 광장 폐허와 파리의 박물관이 된 궁전 루부르에서 였다.   


수월관음도


분명 몇천년은 족히 한반도 땅에 살아왔을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내었던 것 중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이고 화려한 작품은 아마 고려불화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건축물이나 조각품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시겠지만,  회화가 주는 색감의 영역까지 고려해 본다면 역시 화려함으로는 회화작품들이고 남아 있는 작품들중에는 고려불화가 단연 돋보인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던 일본으로 넘어가서 아직 일본에 있는 게 대부분이지만 일본의 소장가들이 엄청나게 가지고 있을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서 정말 가장 돌려주기 싫은 작품들이 아마 고려불화일 것 같다.   

이런 것은 정말 중국이나 서양의 다른 어떤 나라에도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는 것 같다.


수월관음도는 부처가 되고자 보리심을 낸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만나서 법을 구하는 중에 28번째 남해의 보타낙가산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하고 있던 관세음보살을 만나서 참된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선재동자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내었는데  ‘어떻게 하면 속세에 묶인 자신이 보살이 되어 중생을 구제할 하는 가’ 하는 화두를 가지고 선지식을 찾아 다닌다.    


그림에서 관세음보살은 달이 비치는 물가의 바위에 위에 앉아서 한쪽 발은 물위의 연꽃을 밟고서 반가부좌 자세로 선재동자를 지그시 내려보고 있다.   선재동자는 무릎을 꿇은 채 두손은 합장을 하고 그를 가르침을 구하는 자세로 올려다 보고 있다.  캔버스로 쓰인 비단 뒷면에 짙은 색으로 채색을 해서 앞면에 은은하게 색이 배여나오는 식, 즉 ‘배채법’, 으로  그린 그림이다. 고려불화는 비단 위에 채색을 해서 모시에 주로 그림을 그린 조선의 그림보다 화려하고 섬세한 맛이 있다.  관음보살이 겉옷으로 입고 있는 투명한 적삼을 표현하는 기법은 과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밑의 그림의 색이 투명한 적삼을 통해서 비치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 색깔의 농도를 미묘하게 차이를 두었고, 투명 적삼 부분과 적삼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 즉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아랫부분의 색에 차이를 강하게 두었다고 차차 옅어지는 효과를 넣었다.  마치 르네상스의 서양화에서 처음 나타났다는 스푸마토 기법의 동양식 버전 같다.    


이번에 태평양사옥의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직접 볼기회가 없는 수월관음도를 전시한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보았는데. 선대 회장님이 어렵게 일본에서 사들였다는 태평양이 보관중인 수월관음도는 보관상태도 좋지 않고 생각보다 작았다.  색이 많이 바래버려서 당시의 최고의 실력자가 오랜 세월을 두고 비단 위에 섬세하게 그렸을 최고의 고려불화 수월관음의 느껴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래 관세보살님 그림은 남아있는 고려불화 중 가장 크기가 크다는 일본 가가미(경)신사 에서 보관중인 수월관음도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이다.   


가가미(경)신사 수월관음도


‘강우방’ 이라는 분을 알게 된 것은 경주박물관대학을 다닐때 그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부터였다.   경주박물관대학은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국립경주박물관이 기초반 1년, 연구반 2년 과정의 학교다.

신라 천년이 남긴 유적으로 넘쳐나는 지역과 그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로 가득한 경주에 어울리는 대학이다.  수업이 매주 토요일이어서 매주 한차례씩 경주박물관을 들러서 이번주는 어떤게 새로 전시가 되었나 하고 찾아보는 여분의 즐거움을 주던 학교다.   


미술사학자라는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은 전공을 가진 학자 강우방 교수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을 걸쳐서 남긴 조각과 그림을 관통하는 현상..  혹은 사조 같은 것을 발견했고 그는 그것을 그만의 언어.. 조형언어라는 것을 통해서 설명을 한다.


내가 조형미술 연구에서 얻은 것은 “깨달음이란 생명의 놀라운 현상과 존귀함을 깨닫는 이라는 절대적 사실이 . 만일 문자언어에서보다 조형언어에서  적절히 생명 생성의 과정을 터득할  있다면  경전에서보다  생생한 진리를 터득할  있으리라. 그러므로 생명을 깨달으면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라는 세가지 독에서 벗어나 기쁨과 희생과 지혜라는  가지 축복 속에서 행복하게   있을 것이다.


조형언어로 이뤄진 완전무결한 예술작품은 위대한 경전과 같다. 예를 들면 삼국시대의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금동사유상, 통일신라의 석굴암과 불국사, 고려청자와 금속공예, 조선시대의 괘불과 사원 건축  위대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한권의 경전이다. “  강우방 수월관음의 탄생 중에서


그는 자기를 소개할때 자기는 미술 전시회에 가면 그림보다도 그림 액자를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그의 눈에는 이 세상 만물이 어떤 힘 (‘기’ 라고도 하고 ‘에너지’ 아님 스타워즈에 나오는 ‘포스’)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림보다 그림의 액자를 장식하는 덩쿨무늬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이 그 저변에 흐르고 있는 기의 흐름을 축복하고 표현하는 있는 것만 같아서 감격스러워 진단다.  ㅎ


우리의 전통 미술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조형예술에서 그가 읽어내는 코드는 기의 생성과 생성된 기가 두번째, 세번째 기로 발현되어 과정이다.  결국 예술이란 행위의 본질은 근본이 되는 생명의 생성과 그 생명이 다시 기의 싹을 터서 두번째, 세번째 생명으로 발현되어 과정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생명현상을 예술로 표현하는 이 하나의 발견, 깨달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행위를 이것 하나로 꿰뚫는 일이관지 (一以貫之)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기의 생성과 진화라는 시선으로 문화재를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천마도 

덩쿨무늬라고도 하고, 보상화 문양, 아칸서스 문양이라고 하는 빈공간을 흔히 채워나가는 문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곳곳에서 나타난다.  모두 어딘가에서 시작해서 이어지고 갈라지고 갈라진 사이에서 새로운게 자라나서 다시 이어지는 덩쿨,  등나무 형상을 하고 있다.   


광화문

경복궁의 수문장인 현무의 입에서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 흘러나와서 태극문양의 구름을 만나서 바다를 상징하는 덩쿨 문양으로 된다.  아니면 반대로도 이야기 할수 있다.  바다에서 태어난 태극 문양의 구름이 생명의 기가 되어서 현무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수도 있다.


전각의 하단 기둥에 덧붙여서 마치 전각을 떠받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각이 마치 땅에서 시작한 기가 위로 솟구쳐서 만개한 커다란 연꽃과 같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없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이 만들어 낸 삼라만상과 상호관계를 형성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흔히들 모든 것이 태어난 근본인 땅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생명이 움틀 수 있도록 날씨의 조화를 부리는 하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다.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나고 다시 다른 생명을 맺고, 결국에는 소멸해 가는 것이 자연현상이다.  자연현상을 우리를 태어나게 했고,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낙엽이 지게 한다.  계절의 영향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자연현상을 어떤이들은 패턴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작품에 표현을 했다.  초기의 자기(도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을 새겨넣고, 집을 지을때면 기둥의 하단과 상단을 꽃이 형상으로 장식을 하고, 벽면과 천정에는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형태로 장식을 한다.   시작과 끝을 잘 알수 없는 이러한 패턴은 우리 삶이랑 비슷하다.  태어나고 낳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낳고 죽고...  자연현상이다.  꽃이 피고지고 열매를 맺고 지고, 다시 피고지고 열매를 맺고, 다시 피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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