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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Jan 14. 2021

신기술 발달과 공유 경제의 슬픈
이면

그리고 누구나 실천 가능한 커뮤니티 리더십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상황을 정말로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 막막함을 뼛속 깊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특히 자신의 월급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식솔이 있는 경우 일자리가 없는 상황은 말도 못할 고통이다.

나는 IMF 외환위기 시절에 졸업했다. 거기에 더해 멀쩡히 다니던 정규직을 박차고 나와 결혼생활 15년 내내 비정규직 예술인으로 살고 있는 남편과 두 아이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물론 남편은 생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고, 아이들 가정교육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는 그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다.

남편은 간헐적으로 일을 따내어 단기 계약에 의한 노동(예술 활동)을 한다. 그래서 수입도 간헐적이다. 어떨 때는 많이 벌고, 어떨 때는 아예 수입이 없다. 많이 벌 땐 행복하고, 적게 벌 땐 불안하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많이 벌 때도 행복하지 않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어떨 때는 바쁘고 어떨 때는 한가하다. 한가한 기간이 길어지면 무료해진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이때 작은 가게, 작은 사업이라도 해볼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작해도 망하는 가게와 사업체가 한두 개가 아닌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시작하면 100% 망한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남편은 IMF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이 쫄딱 망해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런 유혹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 청년들은 자의반 타의반 창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이 안 되니 일단 무엇이라도 하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플랫폼 전성시대의 이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

남편은 자신의 예술 활동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렇게 들쭉날쭉한 상황에서도 멘탈을 지키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멘탈 관리에는 규칙적인 노동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계약과 계약 사이에 생기는 시간을 규칙적인 노동으로 채우기로 했다. 나 또한 노동자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 예술의 깊이가 훨씬 깊어질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남편은 온갖 종류의 노동을 시도해 본 뒤, 쿠팡 플렉스라는 택배 노동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일한만큼의 수입을 챙겼다. 자신의 차로 배달하는 형태라 쿠팡 집하장에 각양각색의 차들이 모여들었다. 예상과는 달리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온 배달원들도 많아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두세 달 지나 쿠팡 플렉스의 지원자가 10만 명이 넘어서자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쿠팡 플렉스의 택배 노동자들이 배달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배달 단가가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하는 지원자들의 원성으로 단톡방은 연일 시끄러웠다. 그리고 쿠팡은 4대 보험 보장은커녕, 사소한 고객의 불만에도 택배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했다.

나는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새로운 일자리는 매우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이 차지할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언저리로 내몰린다. 쿠팡 플렉스는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지금 전 세계는 신기술의 발달로 생긴 공유경제의 분배 문제로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아이쉬(Robert Aish)는 공유경제를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share-the-scraps economy)’라고 부른다. 그만큼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을 가진 사업주에 비해 인간 노동자의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이다. 벌이뿐만이 아니다. 인권, 노동권 등 모든 면에서 부스러기처럼 연약해진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50%, 실업자로 살 지도...>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 세계를 피상적으로만 볼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의 생생한 경험 덕분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남편이 쿠팡 플렉스에서 만난 동료 중에는 아이 둘, 셋 딸린 가장도 많았다. 이들이 4대 보험도 없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속 줄어드는 임금이지만, 이거라도 붙들며 살아가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그는, 그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무작정 등을 떠밀면 안 된다.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든 하라고 재촉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지금 취업이 되었다고 이 문제에 대해 모른 채 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 30년간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 중 50%를 대체할 것이다. 기성세대의 앞으로 30년도 문제지만, 앞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할 지금의 아이들도 문제다. 지금의 아이들 중 50%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한 채 평생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견뎌낼 만큼 멘탈이 충분히 강한가? 물론 이런 상황을 해결할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한 발 한 발 함께 나가는 수밖에.


<배우 남편에게 찾아온 세 가지 변화>

이 글을 쓰며 가진 소망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한 가지라도 커뮤니티 리더십을 실천하는 것.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아직도 커뮤니티 리더십 실천이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앞의 글에서 언급한 남편의 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는 '프리랜서 예술가'라고 했는데 남편의 직업은 배우이다. 이 땅에는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화려한 배우들의 그늘에 가려진 수없이 많은 배우가 존재한다. 이들은 작업이 들어오기 전까지 하염없는 기다림을 참아내며 언제인지 모를 미래의 기회를 위해 묵묵히 혼자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가족이 해결해줄 수 없는 고독이 늘 존재한다.
남편은 마침 내 원고의 첫 부분을 읽었다. 스무페이지 남짓한 원고를 쓰고는 남편에게 어떤지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원고는 의도치 않게 남편의 변화를 이끌었다. 남편은 배우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남편은 그동안 함께 작품을 했던 선배, 후배 중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연기 스터디를 하기로 한 것. 한 작품을 골라 각자 할 수 있는 배역을 정해 실제처럼 준비하여 연기를 하고 핸드폰으로 촬영도 했다. 촬영된 내용을 편집해 꼼꼼히 분석하며 서로의 연기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각자 연기의 장단점을 찾아 나갔다.


남편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첫째, 연기를 하기 위해 언제 올지도 모를 작품을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연기를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인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나 간헐적으로 온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통해 좋아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배우로써 느끼는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이 열렸다. 같은 고민을 커뮤니티 멤버와 공유하며 나만이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심리적으로 훨씬 강인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한 함께 하는 멤버들을 통해 최근 트랜드도 더욱 빨리 접하는 장점도 생겼고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목표가 생기니 예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생활에 규칙이 생기니 활력도 생기고 훨씬 능동적으로 변모했다.
물론 처음 해보는 리더십이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보듬지 못하든가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대화로 풀어나가며 서로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로 이어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연기에 대해 더욱 뜨거운 열정이 생겨났다.


언제든 누구나 실천 가능한 커뮤니티 리더십

커뮤니티 리더십은 그냥 이론이 아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작지만 큰 방향이다. 나는 남편의 살아 있는 생생한 변화가 감사하다. 소프트웨어 업계 뿐 아니라 그 어떤 영역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실제 사례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급격한 기술의 변화 가운데에 서 있다. AI,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기계들이 인간의 능력을 시시각각 시험하고 있다. 아니, 물리적으로는 이미 인간의 능력을 한참 뛰어넘었다. 하지만 스마트한 기계는 아무런 스토리가 없다. 그래서 감동도 없다. 따라서 스마트한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고유한 스토리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어렵고 힘든 무대를 배경으로 할 때 훨씬 감동적이며 더 큰 에너지가 된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책을 통해 더 큰 감동과 인사이트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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