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바질 크림 케이크.
이름을 듣고는 대부분 "특이한 맛있겠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큰 의미 없을 듯한 케이크 한 조각이 나에겐 소심한 반항심이었다.
요즘 참 심심하다. 친구들은 연애를 하거나, 연애를 한다. 다시 말해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집순이라 온갖 OTT 플랫폼은 다 결제해서 주말에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게 낙이었고, 코로나 상황으로 이 생활을 더 즐겼었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충동이 들어서 한동안 안 만났던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나니, 내 20대가 너무 안쓰러웠다.
20대 초반에는 멋모르고 대학을 다니며 대외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대외활동도 취업 때문에 한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어서 했었다.(그때는 그래도 외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중반은 취업준비를 한다며 공부를 하다가 슝하고 없어져버렸다. (오랜 취준 생활로 내향형 인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29살 제대로 된(?) 취업을 이제 해 회사생활에 적응을 하고 나니. 29살 10월이 되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 29살 끝자락이 되었고 나란 사람에 대해서 돌아보았다.
가던 밥집, 술집, 카페만 가는 어쩌면 다소 지루한 사람.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약간은 소심한 사람.
그날은 날이 화창했고, 연휴였으며 당근마켓에 2개월 전에 올려놓았던 맥북이 드디어 팔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카페에서 나만의 작은 사치를 결심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만 시키지 말고 케이크도 시켜야지 하고.
점원 앞에 서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왠지 모를 반항심이 생겼다. 자꾸 안쓰럽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평소 무난하게 먹던 케이크 종류가 아닌 특이한 케이크를 고르고자 결심했고, '오렌지 바질 케이크'를 시켰다.
사실 엄청 맛있진 않았다.
그래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맛보다는 '쾌감'이 느껴졌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 한 조각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항상 묵묵히, 조용히 루틴 한 일상을 살다 보니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김수영 <사랑하자>가 생각이 났다. 후회보다는 항상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바꾸려 하지 말고 가끔씩 '오렌지 바질 크림 케이크'를 먹는 반항심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