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여행 중이었다.
깊은 새벽 여자는 목이 말라서 잠이 깼다.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는 반짝거리는 은색 커피 머신이 있었다. 여자는 신선한 에스프레소를 얼음이 가득 든 글라스에 부어 새벽의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녀는 어두움 속에서 나무 계단을 조심히 내려가 주방으로 갔다.
그 공간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젖은 머리칼을 어깨에 드리운 채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공간에 침입한 상대방을 흘끗 바라보는 여자의 머리칼 끝에는 방금 샤워를 마쳤는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커피를 마시러 온 여자는 저도 모르게 말한다. "섹시하시네요." 토스트를 먹던 여자가 고개를 든다. 침입자가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고맙습니다." 하고는 멋쩍게 웃고는 다시 토스트를 먹는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여자가 바로 나다.
나는 섹시하다는 말을 상대방에게 쉽게 던지는 편이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섹시하다는 말이 칭찬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이 감히(?) 남성에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고, 남성이 여성에게 해도 정숙한(?) 여성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언사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섹시하다는 말이 힙해졌다. 최고의 칭찬이 되었다. 대중매체는 여성, 남성 셀럽 가릴 것 없이 섹시하다는 원색적인 찬사를 열렬히 바친다.
영영 사전에서 해당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sexy는 형용사로 '섹슈얼한 욕구나 흥미를 일으키곤 하는(tending to arose sexual desire or interest)'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섹시해 보인다는 것은 당신과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다. 사전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이 꼭 그런 의미로만 이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어쨌건 원뜻은 이러하고 섹시함의 본질은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섹시한 사람일까?
당연히... 당신의 이상과 나의 이상은 다를 것이다. 내가 먼저 말해볼까?
남성의 경우 이목구비 바른 준수한 얼굴에 짱짱하고 짧은 머리칼, 185cm 이상의 키에 태닝 해서 가무잡잡한 건강미 있는 스킨, 배에는 선명한 복근이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블록처럼 자리 잡은 20대~ 30대(자기 관리 잘한 40대도 괜찮을 것 같고). 연수입 억 단위 이상의 경제적 능력에 침대 위에서는 한 마리 짐승이 되는 원초적 능력이 충만한 남자.
여성의 경우 큰 눈,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의 흰 피부를 가진 소녀같이 청순하고 예쁜 얼굴에 가슴은 C컵 이상, 개미허리와 대비되는 탐스러운 큰 골반과 길고 늘씬한 다리, 짧은 머리도 색다르지만 이왕이면 결 좋은 긴 머리칼. 일 잘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직장인 여성, 좀 더 깊게(?) 바라자면 남자의 자극에 금세 젖어들고 침대 위에서 파트너에게 지극한 쾌락을 줄 수 있는 자신감과 기교를 갖춘 여자.
좀 기준이 높은가? 그렇다고 섹시해지기를 포기하지 말자. 섹시함은 그렇게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외모만 보고 '섹시하네, 안 하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깨닫고 보면 안다.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것.
부산 출신 유튜버 오마르가 쓴 책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라는 책에는 '섹시한 사람들은 세계관이 확실하다'는 챕터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는 '주름이 있어도 머리숱이 적어도 섹시할 수 있다'라고 서문을 연다. 오마르가 남성의 관점에서 말하는 바이므로 '주름이 있고 머리숱이 적은 남자라도 섹시할 수 있다'라고 해석하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세계적인 자산가인 도널드 트럼프를 보라. 못생기고 늙었다. 젊었을 때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외모로 섹시한 모델 멜라니아와 결혼하고 섹스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큐피드처럼 멋진 아들을 얻었다. 매력적인 여자 멜라니아가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그냥 돈 때문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가 비록 이상한 말을 해대곤 하지만 그는 분명 섹시하다. 왜냐하면 그의 말과 행동이 자신감에 넘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오마르는 앞에 소개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섹시함은 외모가 핵심이 아니다. 섹시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움이라고 주장한다.
<229쪽_
섹시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뭘까? 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옷, 말투, 표정, 취미 생활, 주변의 친구들 이 모든 것이 붕 떠있거나 어색함 없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
나도 비슷한 기질 한 가지를 더 말하고 싶다. '여유로움'이다. 무엇이 됐든 여유로운 태도이다. 가령 내가 최근에 만난 남자는 키가 나보다 작았는데도 섹시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과 태도가 자연스럽고 또한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허브 코헨의 《협상의 기술》에서 나오는 대목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134~135쪽_
모든 만남과 상황을 게임이라고 생각하라. 조금 뒤로 물러나 그냥 즐겨라. (중략) 모든 협상과 만남이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강하고 즐거운 태도를 기르면 세 가지 이점이 있다.
1. 항상 에너지 넘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된다.
2.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3.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당신의 태도가 힘과 인생에 숙달된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감을 발산하며 당신의 옵션을 보여주게 되고, 사람들은 당신을 따르기 시작한다.>
에너지, 여유로운 태도, 자신감 그 모든 것은 곧 당신을 원하게 만든다. 당신은 섹시해지는 거다.
그러니 이미 주어진 외모, 당신을 세상에 내어놓은 모부가 부여한 외모를 한탄하지 말자.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고 생각해 보자. 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 수많은 승자 중의 한 명이 되기 위해 일하고, 운동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시간을 내서 공략집(책)을 읽고 활용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섹시해진다. 정말이다!
음... 정말일까?
그렇게 되고 나서 다시 말해주겠다;)
덧붙임:
삶을 '게임'으로 책을 '공략집'으로 여긴다는 아이디어는 자청의 《역행자》에서 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