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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y 02. 2023

미디어 노출 없는 독박육아 1주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의도하겠다!

오래간만에 남편의 해외출장이 잡혔다. 주말을 낀 딱 1주일간의 해외출장. 아이는 이제 말귀를 제법 알아들어서 아빠가 비행기를 타고 1주일간 해외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쉽게 이해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말을 낀 1주일을 아이와 단둘이 보내야 하는 중차대한 미션을 부여받았다. 독박육아가 처음은 아니었다. 분명 여러 번의 출장과 여러 가지 일들로 독박육아 유경험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독박육아는 두렵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대략 다음과 같다. 6시부터 몇 번을 중간중간 깨며 시계를 봐야 한다. 아이가 화나지 않게 잠을 깨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순서였기에 너무 늦어지지 않는 한 최대한 아이를 자극한다. 아이가 울거나 화내면 그 뒤에 진행할 단계들이 전부 다 지연된다. 아이를 울리지 않고 최대한 기분 좋게 개운하게 깨우는 것. 그것이 내 첫 번째 미션이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옆자리에 없어도 화내고, 내가 있어도 충분히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화낸다.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야 가장 아름다운 시작이 된다.


깨우기 미션이 끝나면 각자의 외출준비에 들어간다. 둘이 있을 때라면 통상적으로 아이를 챙기고 옷을 입히는 내 몫이고, 남편은 어린이집에 갈 물건을 챙기고 간단한 아침거리를 준비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걸 혼자 다하는 것은 역시 피곤한 일이었다. 어린이집의 짐을 챙기고, 출근할 준비를 하고, 옷 갈아입히고, 간단하게라도 뭘 먹고 먹이는 그 모든 순간에 아이는 나의 팔다리에 매달렸다. 안은 체로 출근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씻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아이를 씻기는 건 더욱 힘든 일이었다. 결국 씻기기를 포기하고 화장실 가기와 옷 갈아입기만 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꿔야 했다.


먹는 것도 딱 2번 먹으면 끝이다. 분명 남편이 있을 때와 똑같은 메뉴이건만, 아이는 내가 해준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확연하게 양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아이와의 푸닥거리가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간다. 너무나도 다행인 건 어린이집이 아이와 함께 걸어도 도보 5분 거리이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열심히 뛰면 택시를 타지 않고 출근하는 것이 가능은 하다. 이론적으론. 버스 시간은 매일 제각각이고, 난 수시로 버스시간을 체크하며 아이와 실랑이를 반복해야 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퇴근 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데려와야 하고, 그렇게 데려온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련의 과정 역시 혼자 하는 데 익숙지 않다. 일단 일이 내 맘대로 끝나지 않는다. 6시에 칼퇴를 해도 집에 가는 대중교통수단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5분이라도 미적거리면 그마저도 배차시간이 20~30분 후로 늘어지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럼 나에게 남은 선택은 택시뿐이다. 택시를 타고 급하게 집에 가도 어린이집 끝날시간이 다된다. 먹일 준비는 고사하고 허덕거리며 어린이집에 뛰어가게 마련이다. 가정형 어린이집에 있을 때도 늘 제일 마지막이거나 끝에서 2번째로 집에 가는 어린이였고, 좀 큰 어린이집으로 옮긴 지금도 그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는 혼자 남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연장반 친구들과 더 돈독해지고 있다.


헉헉대며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첫 번째 장애물을 만난다. 바로 편의점이다. 아이에게 '작은 마트'로 통용되는 편의점은 만 3세, 한국나이로 이제 5세 된 어린이에게 너무나도 큰 유혹이다. 거기서 고르는 그 어떤 아이템도 식사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늘 저녁 먹고 먹자고 약속하고 사지만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는 간식 소비는 내가 아이와 하원할 때 겪는 첫 번째 트러블이다. 약속은 철석같이 하지만 지키는 법은 없다. 결국 집에 오자마자 쌀을 씻기도 전에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을 만지작거리며 들고만 있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엄마를 꼬신다. 아이의 꼬드김에 넘어간 철없는 엄마는 안될걸 알면서도 우는 걸 감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간식을 허락하고 만다. 그렇게 간식을 먹는 사이 밥을 준비하고, 남편이 미리 만들어둔 반찬과 국을 챙긴다. 아이에게 밥을 차리며 당연하게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나는 식탁에 앉아 아이가 다시 돌아와 밥을 먹기를 기다린다. 엄마 품에 안겨 밥을 먹겠다는 소리라도 하면 그나마 좀 저녁 먹이기가 수월한데 다른 곳에 정신을 팔기 시작하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 소리 질러도 어차피 안 온다. 그럼 난 차라리 내 에너지를 채우는데 기력을 쏟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밥을 먹는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씻기고 재우는 순서가 남는다. 최소한 5권 이상의 책을 들고 품에 안긴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엄마랑 재미있는 거 볼까?라는 말에 책 5권을 뽑아 들고 온 것이 기특하여 신나게 읽어주고 나면 어느새 9시가 다된 시간이 된다.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게 하려면 일찍 재우는 것밖에는 다른 수가 없고, 나는 최대한 빨리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든다. 평소 같으면 아이와 함께 잠이 들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의 식판은 썩어 들어갈 수 있다. 아이가 완전히 잠이 들면 자다 깨서 일어나 설거지를 세팅한다. 이마저도 어린이집이 아니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정이다. 저 중간에 아이가 아프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휴가를 내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병원은 6시 반에 접수를 마감하니 말이다.


남편이 주말이나 연휴를 끼고 출장을 가게 되면 나의 최고의 응원군은 바로 엄마다. 이번에도 금요일 밤에 오셔서 일요일 오후에 가셨다.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두 잘 따르지만 유독 아이를 다루는 스킬이 남다른 엄마의 등장은 내가 조금이라도 육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모든 순간에 너무나도 능숙하다. 왜 내가 하면 안 되는데 엄마가 하면 되는 순간이 그리 많은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의 등장만으로 아이는 나에게서 벗어나 엄마 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는 최소한 집을 치우거나 잠을 자거나 다른 볼일을 보는 일을 할 수 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사라지면 할머니가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할머니랑 오래 있으려면 할아버지를 가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아빠가 아이에게 장난치며 침대 가서 자도 되냐고 하면 이제는 순순히 자신의 침대를 허용한다. 그래야 할머니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그렇게 힘겹게 1주일이 지나고 나서 남편이 왔을 때 깨달았다. 지난 1주일간 아이와 아이패드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이 본인의 얼굴이 나온 영상이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미디어 노출이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힘들고 지쳤을지언정 아이는 1주일간 영상이 없이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느 사실을 말이다. 힘들면 영상을 틀어주고 쉬리라 마음먹은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해 보였을 정도로 아이는 미디어 노출 없이 충분히 잘 시간을 보내 주었다. 이번 독박육아의 최고의 성과는 그런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우린 핑크퐁이나 아기상어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할머니의 집에 가면 볼수는 있다. 그것도 테블릿이 아닌, TV를 통해서다. 추정컨데 아이가 유튜브의 존재는 인지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집 밖에서(할머니 집에서) 볼 수 있을 수는 있어도 최소한 그게 엄마아빠의 폰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패드에서도 애니메이션은 픽사의 단편애니메이션 정도만 틀어주지 유튜브로 아이용 콘텐츠를 틀어주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바다에 아이를 파묻히게 하고싶지 않았다. 물론 이 또한 아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마트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핸드폰과 태블릿을 들고 있고, 엄마아빠는 두 손이 자유로워 보였지만 미디어에 친숙한 아이들은 오히려 미디어가 제거된 상태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다. 차라리 우리 부부가 차에서 자주 듣는 음악의 뮤직비디오나 다른 음악 관련 영상을 틀어주긴 하는데, 그 또한 선정적인 동작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위험요소가 있어서 늘 조심스럽다. 그래도 일정 빈도를 넘어서면 그만 보자고 끊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정도였지 이렇게 아예 긴 시간 태블릿을 보지 않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렇게 1주일을 잘 버텼건만, 아빠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수빙수 언니'를 찾기는 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서 우리가 허용할 수 있고, 또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가 해산물을 손질하고 요리하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인 1주일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육아 동지 남편 역시 인정하는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게 음악이건 뭐건 간에 아이에게 가능하면 미디어 노출은 자제시켜 보자는 합의에 도달했다. 미디어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이기에 학업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유튜브나 다른 미디어의 활용이 필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살면 또 살아진다. 아이와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부딪히게 될지라도 한걸음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힘든 1주일이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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