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Nov 07. 2023

둘째를 가질 결심

이러니 출산율이 떨어지지

연초에 회사에 공언했더랬다.나는 올해 둘째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그러니 언제든 업무공백의 이슈가 생길 수 있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둘째를 갖자고 결심하고.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의 나이는 마흔 중반이고, 큰 아이를 돌보고 살피며 둘째를 가질 시도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핑계다. 안다. 핑계가 필요할만큼 절실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튼 오랜만에 (모두 기혼이고, 자녀가 있는) 동갑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하는 와중에, 문득 "난 이 빡빡하고 말도안되는 일정과 자금난속에 둘째를 가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 대책이 없지"라는 말을 했고, 그자리에 있는 여자 둘이 동시에 


잘 생각 했어! 그래 둘째 있어야지! 좋아! 


라고 외치는게 아닌가. 그래. 나만 둘째를 갖고싶은게 아닌거였어. 라는 생각을 하는데, 동석한 동갑의 남자 사람이 매우 놀라며 진짜 둘째를 갖고싶냐고, 왜 냐고 묻는다. 


이유가 어딨어? 그냥 갖는거지
근데 한가지 확실한건 내가 아이를 가지겠다는 생각을 한다는건
나같이 생각 많은 애들한테는 대단히 어려운일이고,
또 엄청난 조건으르 갖추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인건 확실해 


라고 답했다. 


아이에 대해 생각하면 내 삶이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알게 되.
부부합산 소득이 막 억단위를 찍는 부부도 아니고, 나이도 많긴한데
내가 진짜 가진게 많기도 해.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동갑의 남자사람친구는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집안일은 많이 도와"라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돕는다. 


세상에서 그말을 제일 싫어한다. 아마 대부분의 기혼여성들은 알거다. 돕는게 아니라. 그냥 같이 하는 일어야 한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구건 뭐건 치우고 움직이면 남편의 첫마디는 "아니 그걸 왜 혼자 해. 나한테 시키지. 나한테 말하지"이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하냐 적게 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집안일에 파묻힌 하루를 보냈을지라도, 집안일을 위해 움직이는 나를 위해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남자인거냐가 중요한거다.   


회사에 비슷한 또래에 아이를 한명씩 키우고 있는 여자 셋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화두 중 하나가 "둘쨰"였다. 한명은 손이 덜 갈무렵쯤 아이가 아팠고, 또 남편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기간이 길어 보육공백이 컸다고 했다. 또한명은 너무 몸이 힘들어 둘쨰까지는 감당하기 힘들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나는 어떤 스탠스인가. 난 어떻게 둘째를 가질 생각을 하게 된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나는 둘째를 낳을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다.  


나의 아이의 매일은 시끄럽고 요란하지만 피곤하지만, 사실 임신의 과정이 매우 순탄했다. 결혼 2년만에 큰 고생 없이 나이 마흔에 아이가 바로 생겼고. 임신기간이 힘들었지만 이정도면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축에 든다. 감기같은 잔병치레를 제외하고 매우 건강한 편이고 발달에도 이슈가 전혀 없는 아주 순조로운 성장의 과정을 겪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과, 지인 모두가 인정하는 엄청난 남편의 장점은 손에 꼽게 가사 분담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거다. 아이가 나한테 매달리기 때문에 아이에게 밀착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집안일은 남편이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난 그 틈 사이에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요청하고 지시하는 것에 가깝고. 남편은 음식을 전담하고, 아이 이유식 하나도 사먹여 본적 없다. 집안일을 "돕는다"는 그지같은 멘트는 우리 남편 사전에는 없다. 오히려 내가 돕는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가고. 빚이 많건 낡았건 간에 내집에 살고 있다. 대출이자도 이만하면 저렴한 편이고. 그리고 집 이외의 빚은 전혀 없다. 딱 한달치 카드값. 그게 전부다. 

남편은 자영업이지만 나는 정규직이다. 회사가 작긴 하지만 매우 안정적인 구조이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물론 인력구조가 탄력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고용안정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회사에서 집까지 안막히면 20분에도 갈수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직주근접은 구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양가 부모님 역시 특별한 건강상의 이슈가 없고, 또 부양에 대한 부담도 없다. 어떤 식으로건 부모님의 노후는 해결(?)이 되는 상황이다. 물론 어른들의 성향도 우리 가족의 일상에 도움을 주시면 주셨지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구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아직까지는 어른들께 육아에 대한 부분을 의지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남편의 출장이 좀 있기는 하지만 다른 회사에 비해서 저녁이 있는 삶이 어느정도 구현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남편은 자영업이라 시간조율이 나보다 훨씬 쉽고 자유롭다. 


벌써 9가지 조건을 갖추지 않았던가. 내가 나이가 많은 것 말고는 둘째를 고민할 이유가 없는 스펙이다. 여기까지 결론이 나자 더 미루지 말고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둘째를 낳아야 내가 뒷감담을 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든 일들이 있어도 둘째 세째 낳는 경우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까봐 대단히 몸을 사리는 케이스였다. 그런 내가 둘째를 결심했다. 그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장되어야 할 수 있는 결정인가. 


저 수많은 조건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나는 그걸 감당하기 어려운 나약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러니 저렇게까지 다양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민을 하게 마련인데,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고, 안정적인 보수가 보장되지도 않고, 언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 살면서, 독박육아와 독박살림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 그런데 그와중에 극렬며느리 노릇도 해야한다면? 아이는 고사하고 결혼도 고민할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아이를 낳으면 100만원을 준다, 200만원을 준다 말이 많다. 근데 정말 돈 하나면 되는 것인가? 매일 왕복 1시간, 최소 2시간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쓰며 출퇴근 하고 집에 돌아와 집안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사람에게 둘째를 낳으라고 할 수 있는가. 사회생활 연차 20년에 달하는 지금 내 연봉은 이제 막 졸업한 대기업 초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각종 상여금을 합해도 말이다. 수입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가 아스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할 수 있는거다. 


아무튼. 출산과 육아에 최적화된 이 고스펙의 44살의 여자는 오늘도 둘째를 꿈꾼다. 내 인생에 내 배아파 낳은 아이는 이아이 하나면 충분하다는 말은 쏙들어간지 오래다. 나이가 많으니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닌 것도 알겠고. 모든게 다 하늘의 뜻이다. 삼신할미가 이 집안에 내려와 주기를 바랄뿐. 



매거진의 이전글 미디어 노출 없는 독박육아 1주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