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Dec 20. 2023

아무튼 책대로 되었다

집을 팔았고, 우린 월세로 간다

우리 부부는 집을 팔기로 했고, 집을 팔고자 했을 때 나의 예상은 '그래도 전셋집보다는 더 힘들게 팔릴 것이다'였다. 전셋집은 유사한 옵션이 많지만 2년이라는 한시적 거래이기 때문에 매매에 비해 비교의 강도가 낮다. 큰 거래이지만 그 집이 안전한 집인가를 검증하고 각자의 삶의 패턴 안에 얼마나 적절한가, 나의 예산엔 얼마나 잘 맞는가를 검증하는 과정이 끝나면 결정이 가능해진다. 안되면 2년 살아보고 옮긴다는 옵션이 존재한다.


하지만 매매는 다르다. 오늘의 삶과 오늘의 자금 사정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다. 가족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그 시기는 어떨지, 인원의 변동은 없는지, 인원이 늘어난다면 그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도 감안해야 이사 갈 집이 정해진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지는 것은 이 집의 자산가치. 앞으로 자산의 가치가 더 커질 곳인가 아닌가까지 감안하기 시작하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거기에 억대의 자금을 조달하는 조달 계획과 대출 상환계획, 거기에 상환계획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까지 복합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매매였다. 당장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자금의 규모, 대출 가능 금액의 상한선 등 전세에 비해 몇 배는 복잡하다.


자산 형성 못지않게 이사에 큰 동력을 주었던 것은 바로 아이였다. 나는 첫 집인 지금의 집을 고를 때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예상했고, 그 아이의 삶을 고려한 선택을 했었다. 1층에서의 삶은 그래서 매우 유의미했다. 아이는 세상 눈치 안 보고 해맑게 뛰어다닐 수 있었고 그런 시간이 아주 소중했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엄마였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무리가 없어 보였는데, 여고가 너무 멀다. 정확히는 여자 애들이 다닐 학교 자체가 몇 개 없다. 다 해봐야 2개? 이 넓은 강서구에 많아야 2~3개의 학교뿐이었다. 물론 고등학교는 거리가 가깝다고 무조건 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학군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갈 수 있는 모든 학교가 다 멀다. 학군지까지 고민하기에는 우리의 자금 사정이 그리 넉넉지 못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그러기에 적절한 지역으로 선택한 것이 신길이었다. 동네도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학군은 대규모 뉴타운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정은 집이 팔려야 가능하다. 거래가 이렇게 활발하지 않은 시기에 무리하게 매수를 서두르다가 매도에 실패하면 이도저도 안 되는 그지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집을 내놓았고, 그래도 전세이상으로는 힘들거라 예상은 했다. 우리 집보다 1억 이상 비싸게 팔리는 고층을 보면서 우리도 그때 중층 이상은 샀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수없이 들었다. 다른 집은 거래라도 되는데 우리는 거래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아 조급했다.


사실 집을 내놓자마자 여러 번 거래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수중에 천만 원이 있었다던가? 아무튼 계약금에 중도금은 현금으로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부동산 거래이거늘, 이 정도 거래금액에 대출 가능한 최대치를 뽑는다고 해도 1~2억 사이의 큰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 매매거래다. 설령 후순위 대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 등기 친 후의 상황이니 그 또한 사전에 일정 규모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로 매수하겠다는 사람은 수중에 5천만 원인가가 있다고 했다. 하다못해 계약금도 못 낼 금액이었다. 그 거래는 내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손절되었다. 그건 아무리 대출중개인을 붙여서 진행한다 하더라도 진행이 안된다. 그다음 거래 시도는 집을 너무 마음에 들어 했는데, 자신의 집이 팔리기 전에 가계약금이라도 걸어놓고 싶다는 사람이었다. 아... 우리도 저 마음 너무 이해한다. 마음에 드는 집은 발견했는데, 그 집을 사기 위해 지금 집을 팔아야 하는데 지금 집이 안 팔리는 저 우울함. 너무 안다. 하지만 안된다. 그런 무리수는 모두에게 좋지 않다. 우리 집을 좋게 봐주시는 그 마음은 너무 감사하지만, 순리대로 하자 했더니 이해하셨다. 그리고 다음 시도는 당장 가계약금 넣을 것처럼 그러더니 뜬금없이 대출한도가 안 나온다고 계약을 못하겠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도가 우리 집을 너무 좋게 봐주셨다던 분의 재등장이었다. 여기까지 대략 6개월이 걸렸다. 나는 6개월의 시간 동안 최소 40팀이상은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방문한 팀의 수를 계산하면 60팀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소소한 들쑤심의 순간이 올때마다 우린 이사 갈 예정이었던 지역의 부동산에 연락했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6개월을 보냈다. 우리가 올린 호가가 단지에서 제일 싸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 집을 한번 거쳐는 가지만 그래도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될 거면 차라리 호가를 올려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차였다. 이 집을 사고 싶어서 본인들의 집을 몇천만 원을 싸게 내놨으니 우리 집도 많이 깎아달라는 아주 평범한 조건이 붙는 거래 요청이었다. 그 말은 우리가 이사 들어갈 집도 그만큼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매는 그렇게 쉽지 않다. 내가 보고 잇는 집들은 하나같이 급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6개월쯤 지나니 매도가 급해졌다. 사실 우리도 급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여러 번의 딜과 전화가 오고 갔고, 결국 우리가 올려놓은 호가에 비해 3천만 원은 족히 깎아 거래가 성사되었다. 어쩌겠는가. 마음 급한 내가 깎을 밖에. 그래도 애초에 목표한 최저가는 지켰다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애초에 가장 욕심했던 집은 나름 로열동, 로열층의 타워형의 아파트였다. 살기는 당연히 판상형이 좋지만 그래도 그 집이 컨디션이 여러 가지로 제일 좋았다. 그럼에도 1순위에서 지웠던 것은 자금사정이 급한 집주인이 2년 전세계약을 했던 것이었다. 2년 후의 입주. 생각만 해도 귀찮다. 2순위는 같은 단지의 로열동이지만 약간 중층이었던 판상형. 수리가 좀 필요한 집이라는 인상은 받았지만 그래도 판상형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파트 분양 당시 조합원이셨고, 연세도 많았다. 급할 게 없어 보였다. 1,000만 원이라도 깎아주세요라고 부탁을 해놓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중개인에게는 1천만 원 이상 깎아주시면 저 10%씩 인센티브 현금을 꽂아드릴게요. 빅딜도 걸어놨다. 거래 자체가 빈번하지 않기는 거기도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현금영수증 발급 안 하는 인센티브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우린 자금 상황에 변수가 생겼고, 내가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이 확보된 상태라는 걸 뒤늦게 확인했다. 우린 이미 가계약을 한 상태고 매수할 집을 검토하며 계약체결의 목전에 와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아뿔싸다. 나름 꽤 치밀하게 준비했던 우리였다. 중도금 잔금도 시기나 규모도 미리 확인 했고, 매수와 매도가 꼬이지 않게 날짜별로 계획도 다 세워놨다. 자금상황이 흔들려버리니 멘붕이왔다.


우리는 달라진 자금사정에 맞는 새로운 집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매수의사를 보인 그 판상형 아파트는 다른 부동산에서 개입하여 우리가 본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아주겠다고 거래를 부러트려놓아 다른 집을 봐야 했고, 그렇게 다른 매물을 후보에 두고 자금 상황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했다. 처음에 마음에 둔 그 2곳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앞이 막혀있거나, 집에 수리할게 많아 보이거나, 뭔가 좀 애매하다는 느낌이 든다던가, 엘리베이터 숫자가 처음에 봤던 동들에 비해 적다던가 하는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요소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머리로는 가격이 맞으니 저걸 사는 게 맞는데 정말 이 의사결정이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 문득. 왜 우리는 꼭 지금 무리해서 마음에 안 드는 집을 사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매매를 결정하기 전 우리는 부동산 투자도 하고 중개도 하시는 분께 유료 컨설팅을 받았다. 그때 들은 것 중에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 갈아타기는 하락기에 하는 겁니다.

- 보통 이사는 서에서 동으로 갑니다.

- 갈아타기를 하는 것이 목표라면 지금 사는 집은 매수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매수에 필요한 마지노선을 정하고 빠른 거래가 성사되는 것을 목표로 하세요.

- 대출 1천만 원 더 내는 걸 무서워하지 마세요. 장기 할부로 나누면 생각보다 영향이 크지 않아요.
- 내가 마음에 드는 집 말고 남들이 좋아할 집을 사세요.

- 향보다는 층이 중요합니다. 저층 남향보다 고층 동향이 먼저 팔려요.


였다. 그랬다. 지금 사는 집은 철저하게 돈에 맞춘 집이었다. 우린 이 집을 살 때 대출이 나올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고 그 상한선에 맞는 집을 구한 것이었다. 갖고싶은 집이 아니라 살수 있는 집을 골랐다. 그러니 사실 1층은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집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가끔 돈에 맞추지 말고 좀 무리할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린 또다시 돈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돈에 맞추는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싸게 사서 싸게 팔면 된다 했지만 아니다. 그 시행착오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떠앉고 있기에 그걸 되풀이 할수는 없었다. 싼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팔때 반드시 문제가 된다. 세끼고 사는 걸 전제로 자금 계획을 다시 세웠다. 전세 기간 동안에 우리의 수입과 지출도 다시 전부 재검토 했다.


지금 바로 입주하면 수리부터 모든 게 꼬인다. 자금상황도 몇천만 원이 빠진 상태라 이 또한 부담이 많이 된다. 대출규모를 키우더라도 한계가 있다. 그럼 마음에 안드는 집을 살수밖에 없다. 그런데 2년을 쉬었다 가면?  사고싶은 집을 사고 오히려 자금사정은 지금보다 나아진다. 전세를 끼고 집으로 사면 2년 동안 우리가 빌라 같은 집에 월세를 살아야 한다. 대출상환으로 인해 나가던 돈이 월세 정도로 줄어든다. 그럼 남은 돈은 저축할 수 있다. 그리고 집이 작아지니 광열비나 전기요금 같은 기초 생활비가 줄어든다. 관리비도 20만 원대에서 소소하게 3~5만 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집은 작아지니 살림은 대대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그 덕에 2년 후에 갈 집에는 좀 더 여유롭게 이사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입주하면 매수자금이 모자라지만 세끼고 사면, 2년간 알뜰히 살면서 모자란 돈을 저축으로 어느 정도 메꿀 수 있다. 그럼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의 압박이 노멀 해진다. 물로 그렇다고 대출이 아예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시드머니가 확 빠진걸 2년 동안 어느 정도 메꿀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치만 봐서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둘째를 기다리고 있고, 지금 당장 둘째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요즘 출산임신 지원금이 많아져서 또 어느 정도 메꿔진다. 나는 이사를 2번 하기 싫다는 남편을 설득했고. 우린 처음에 봤던, 지난여름 집에 들어가며 감탄했던 그 집을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난관은 많았다. 지금 사는 집을 매수하신다는 분이 중도금이 없는데,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엔 중도금 없이 거래한다며 중도금을 안 넣겠다고 했다던가, 잔금 일자를 당장 2달 뒤인 1월 말로 해달라고 한다던가 하는 문제들은 소소했다.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1월 말에 우리가 들어가 살 집을 구하면 된다. 그게 어려운 건 맞지만 또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가끔 나의 책 리뷰를 찾아볼때가 있는데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다. 책의 말미에는 월세로 갈아타고 갭투자를 고민한다는 글이 있었다. 결국 난 갭투자(?)로 집을 이사가게 되었고, 월세 살이가 시작된다.


우린 그렇게 집을 팔았고, 내일 매도계약을 한다.

드. 디. 어. 우리는 이사를 위한 새로운 스텝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6개월간의 노고는 이제 안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파트 1층에 살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