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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23. 2024

집안일이 많아진 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30평대 아파트에서 15평 남짓 할 빌라로 이사 온 지 이제 2달. 집은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이제 미루고 미뤘던 에어컨 설치까지 마쳤으니 더 이상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상태가 되었다. 생활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집에 빨래 건조대는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식탁의 방향은 가로가 좋은지 세로가 좋은지, 주방용 물품은 어디에 있는지, 행주는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착착 꺼내기 시작했다.  


거의 매주 혹은 최소 2주에 한 번은 가던 코스트코는 거진 한 달 반 만에 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이건 다 가까이 있는 전통시장 덕분이다. 자잘한 식료품은 시장으로, 생활용품은 역시 가까운 다이소(심지어 크다)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거기서 해결되지 않는 물건은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2일 만에 오는데 굳이 코스트코를 가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오래간만에 가서 손님치레를 위한 간고기, 쌀, 어린이집용 우유, 코스트코를 자주 가지 않으니, 냉동실이 꽉 차는 일이 없어졌다. 신선한 야채는 쟁이지 않고 그때그때 조금씩 사다 먹는다. 억지로 뭔가를 만든다기보다는 냉장고 파먹기 모드로 가고 있다.


이제 생활에 길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뜬금없이


기분 탓인가... 왜 이사 와서 집안일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응. 기분탓아니야. 진짜로 살림할게 훨씬 더 많아졌어


기분 탓이 아니다. 많아졌다. 분명히 잔일이 많아졌다. 큰 집에 빈 공간이 많다. 우리는 30평대에서 절반으로 살림을 줄이면서도 버린 물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침대 2개, CD장 두 개, 소파 하나, 책장 하나. 그걸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 이고 지고 왔다. 근원적으로 큰 덩치의 살림이 많지 않다.


책장 2개, 아기용 책장, 옷장 4칸, 아기용 옷장과 책상, 어른용 책상 하나, 식탁하나, 세탁기, 건조기, 8인용 식기세척기, 오븐, 전자레인지, 에어컨, 정수기, 냉장고 500리터짜리 하나, 문 2개짜리 김치냉장고 하나, 식탁에 쓸 의자 서너 개와 자잘한 소품들. 이게 다다.


자잘한 주방용품이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다 한 곳에 모아두면 크게 공간을 차지하는 편은 아니다. 건조기와 세탁기는 욕실에 들어가 있고, 냉장고는 남들 쓰는 거 절반 정도 수준이라 그냥 양문형 하나 있겠거니 하는 정도고.. 주방용 가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이건 덩치가 작다. 오히려 잔짐이 많아 정리가 어려운 건 아이방이다. 장난감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내가 함부로 미련이라 퉁칠 수 없는) 아이템들이 한가득이고, 그걸 알기에 더 이상 장난감을 사줄 수 없다는 것도 본인이 잘 알고 있다.


우린 넓은 집에 저 자잘한 물건들을 여기저기 숨겨놨었다. 베란다에 널 부러트리고 눈을 감고 커튼을 쳤으며, 식탁 아래, 혹은 창고에 대충 처박아 두고 잊어버렸다. 분리수거는 1주일에 한 번밖에 못했지만, 베란다에 통을 두고 쌓아두면 그만이었다. 빨래건조대에 걸어놓고 며칠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뒤늦게 대충 개더라도 거실 한 귀퉁이에 쌓아놨다 그대로 입는 날이 허다했다. 그럼에도 거실은 여전히 매우 넓었고, 아이가 뛰어다니기 충분했다. 주방에도 잔짐이 많았지만 대충 바닥에 널부러 트려도 이상에 크리티컬한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다르다. 아기 옷을 세탁해 건조대에 올리면, 이동이 불편하다. 대충 마르면 건조기에 한 번 더 돌려서 습기를 완전히 빼고 접어서 바로 치워야 한다. 서랍에 바로 넣지 않으면 빨래에 먼지가 붇는 게 훤히 보인다. 그건 어른의 옷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용도실에 있던 세탁기와 건조기가 욕실에 있으니 습기가 상대적으로 많고, 건조기에 돌렸다고는 하지만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다시 습해질 것 같은 위기의식이 들었다. 예전보다 더 자주 세탁기를 돌리고, 더 자주 건조기를 돌리며 더 빈번하게 개서 정리해야 한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이 동네는 분리수거를 1주일에 3번이나 가져가고, 쓰레기도 동일한 패턴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짐들을 쌓아 둘 공간이 없다. 1주일에 3번이 아니라 매번 버리면 좋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봉투에 넣어 버리는 구조라 매일 내다 버릴 때마다 봉투를 써야 하지만, 그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라도 수시로 봉투를 사다 쟁이고 버려야 한다. 전에 살던 집도 흰색에 가까운 연한 회색 바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연한 회색 바닥이지만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너무나도 잘 보인다. 소파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좌식 생활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머리카락을 더 잘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신발장도 2칸이나 있었는데 이걸 하나로 합하면서 버려야 할 신발을 더 많이 추려내야 했다. 그마저도 한번 정리하고 이사를 왔음에도 또다시 버리고, 자주 쓰는데 헐어버린 신발을 새로 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의 신발도 작아졌음이 분명한데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또한 이제야 애쓰고 애써서 정리하는 중이다.


집이 작으니 그 모든 것들이 다 눈에 보였고, 있는 거 다 쓰기 전까지 쟁이지 말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코스트코에서 사서 쟁이던 식료품도 수시로 시장 가서 사는 방식으로 바뀌니 더더욱 번잡하다. 집안에 체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남편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치우다 보니 체력적으로 더 힘들게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왜 살림살이는 줄어들었는데, 몸이 이렇게 바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집이 작으면 살림이 편할 거라는 우리의 착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중이다. 우린 넓은 집에서 게으르게 살았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치우고 닦고 가꾸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편하게, 쉽게 살았다. 필요하면 사고, 구석에 처박아 두고, 존재를 잊었다. 우린 그 모든 삶의 패턴을 다 바꾸는 중인 것이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오븐도, 정수기도, 식기세척기도, 김치냉장고도 없었다. 에어컨도 벽걸이형으로 옵션이었고. 당연히 아기용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고, 침대가 있어도 지금보다 더 작은 집이 그리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과 살림은 30평대에 맞춰져 있었고 지금 그걸 철저히 부수며 적응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결혼하고 7년째, 아이 낳고 5년째다. 그간의 늘어지고 벌어진 게으름을 우린 이렇게 수습하고 있다. 대체 얼마나 더 지나야 적응하게 될까 고민도 되지만, 타이트하게 줄어든 살림으로 고대로 큰집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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