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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Nov 05. 2024

조리원은 천국인가 감옥인가

임신 기간에 "요즘 강남에서는 둘째는 둘째라서 한 달씩 조리원에 있는데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니 둘쨰인데 한 달을 어떻게 있을 수 있지? 애가 그걸 견디나? 싶었다. 출산율 0.7 시대이니 둘째를 낳으면 뒤는 쉽지 않을 것이고, 두 번째 출산이니 나이도 더 먹었을 거고, 몸도 더 힘들 거고 그러니 더 확실하게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난 기간을 줄여야 하나 고민했는데, 심지어 2배로 늘이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언제나 큰 아이의 존재였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고되거늘 이 와중에 큰 아이는 자신을 안아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은근히 서운함을 표했다. 병원은 기간이 짧기라도 하지, 산후조리원은 2주의 기간 동안 아이와 완전히 격리돼야 한다. 고민했다. 그렇게 긴 기간 큰 아이와 떨어져 있게 되면 나의 첫 딸은 얼마나 힘들까. 


고민하던 중 결정한 산후조리원에는 다행히 '가족실'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3개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가장 낮은 층은 상대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곳이다. 2층에서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가족이 방으로 들오는 게 가능했다. 물론 3층이나 4층을 선택하면 가족은 들어올 수 없는 보통의 조리원과 같다. 병원에 입원해 아이를 낳는 그날까지 계속 고민했다. 가족실에 갈 것인가, 일반실에 갈 것인가. 


병원 1주일, 조리원 2주 총 3주 동안 아이가 나와 함께 잘 수 없다는 건 큰 아이에게 타격이 크다는 걸 안다. 안 그래도 출산 직전까지 몇 달을 야근이 길어져 저녁을 함께 보낸 날이 몇 달인데, 거기에 완전히 분리된 3주라니... 돌아가면 얼마나 과하게 밀착하게 될지가 더없이 고민이 됐다. 그러나 큰아이의 등장이 다른 신생아들에게 어떤식으로든 감염의 여지를 만드는 숙주가 될 가능성, 누구 말처럼 마지막 휴가(?)인데 아이가 오면 온전히 쉴수 없다는 불안함이 고민의 이유였다. 결국은 모자동실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 모자동실 전까지 아이가 체류할 수 있는 방식인 가족실을 선택했다. 평일엔 어린이집 때문에 자고 갈 수는 없었지만, 주말 한 번은 와서 품에 꼭 끌어안고 잘 수 있었다. 아이가 주말에라도 함께 하면 좀 억울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조리원의 생활은 아주 심플하다. 일어나면 밥을 먹고, 모자동실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함께 있고, 수유콜이 오면 수유를 하고, 점심 먹고 다시 수유하고 누워있다 일어나서 간식 먹고 수유하고 누워있다 일어나서 물 마시고 수유하고 다시 누워있다 일어나서 물 마시고 저녁 먹고 모자 동실하고 아이를 보내고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나 물 마시고 수유하고 간식 먹고... 눈뜨면 먹고 수유하고 자고.. 3가지가 무한반복된다. 


다행히 수술하고 난 후에 정말 열심히 걸어 다닌 덕분에, 몸 컨디션은 꽤 많이 돌아와 있었다. 병원에 더워서 산모패드 자리와 가슴 쪽에 소양증이 확 올라와서 고생하는 거 말고는... 병원에서 물병을 사다 두지 않고 일부러 정수기가 있는 곳까지 나와서 텀블러에 미지근한 물을 수없이 마셔댔다. 조리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짧게라도 걷고, 물을 마시기 위해 굳이 방에 생수를 한 병씩 넣어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수기까지 나가서 물을 떠 와 마셨다. 


조리원에 입소해서 아이의 컨디션이 스테이블해지고, 나 또한 어느 정도 정서적 안정을 찾았는데 딱 3일이 걸렸다. 아이는 수시로 방으로 와고, 젖을 물리고 다시 보내기를 반복하니 3일 만에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큰아이에 대한 걱정과 지루함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이벤트는 큰아이의 방문이었다. 가족실은 다른 신생아들의 감염을 우려하여 신생아실 소독시간인 모자동실이 끝난 시간부터 다음 모자동실까지인 오전 9시까지였다. 우리는 큰 아이가 너무 수시로 드나드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고, 주중에 한번, 그리고 주말에 한번 정도로 빈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다만 주말은 큰 아이가 조리원에서 함께 자고 가는 정도로 시간을 보내주어야 후폭풍이 덜할 것이라 판단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는 수유콜에 응했던지라 간간에 한 번씩은 동생의 얼굴을 볼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던 동생을 실제로 본다는 사실에 대단히 흥분했고, 우리는 내가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야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도 했었다. 수유가 끝나고 둘째가 신생아실로 돌아가면 남편을 집에 보내고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는 상상 이상의 고통일 것이다. 8개월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태어날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내가 3주나 집을 비워야 한다는 말도 수없이 했지만 3주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모를 수밖에 없는 게 어린아이이다.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족실을 선택한 샘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2주간 45살 먹은 다 큰 어른이 하루종일 먹고 자고 젖먹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그 직전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던 내가 모든 것을 다 접고 오직 수유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더군다나 마사지를 조리원이 아니라 집에서 출장 마사지로 받기로 한 이상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한없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방문은 나에게도 큰 즐거움이 되었다. 


이제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아이와 헤어진체 2주간 조리원에 갇혀 새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집중되기에는 우리가 함께 한 지난 6년의 시간이 너무나도 강렬하다. 집에 비해 층고도 훨씬 높고,  쾌적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과 떨어진 시간을 보상해 주는 것은 아니다.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길 건너에 냉면집이 보인다. 8월 초. 폭염으로 모두가 미쳐가고 있는 그 시기에 비록 난 시원한 곳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지만, 더위를 피해 냉면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것다. 시원한 냉면도 먹고싶었고, 한동안 못먹을 매운 음식도 먹고싶었다. 


모두가 말한다.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안다. 1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고 밥 먹여야 하는 어린아이를 밤새 상대하는 것은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리원의 진정한 기능은 산후조리 + 초보 엄마를 위한 교육기관에 가깝다. 하지만 그 흔한 마사지도 안받기로 한 나에게 외출이 용이하지 않고, 가족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과연 천국이기만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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