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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써 Dec 08. 2023

근거 없는 불안까지는 안 가도록 조절하면서 살자


프로그램에서는 사용자의 자취를 ‘로그’라는 형태로 기록해 둔다. 사용자가 어느 버튼을 눌러서 어느 페이지로 들어갔는지 등의 정보를 기록해 두는 거다. 실제로 사용한 내역이 보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때 유용하다.


사람에게는 감정 상태에 대한 로그가 도움이 될 거다.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주장도 많고, 그걸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감정 기록 앱 같은 것도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내 감정 상태를 관찰하고 그 로그를 주겠다고 해도, 쿨하게 “저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라고 거절할 거다.쿨걸의 허세 같은 게 아니고, 안 봐도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로그는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거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현재 어떤 감정이냐보다는 불안의 상태가 어느 정도냐이다.


무불안: 불안하지 않은 상태. 좋은 소식은 요즘에 이 비율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 무언가에 집중할 때 이 상태가 된다. 운동을 할 때나, 내가 편하게 생각하고 안전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


소불안: 디폴트 상태. (아직은) 젊은 몸에 깃든 노파심이다. 뭔가를 할 때마다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작은 사고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일을 잘 벌이지 못한다. 무리를 하지 않고,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적은 편이라는 장점도 있다.


중불안: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 때 자주 이런 상태가 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글 쓰면서 힐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데, 나는 오히려 글쓰기 덕분에 자주 불안해진다. 눈은 높은데, 실력이 미천하여 그 괴리감에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이 상태를 견뎌야 발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불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주까지 가버린 상태. 어떤 것이든 “인생 망했다”로 귀결된다. ‘오늘 운동을 대충했다’는 사실이 하나 있었을 뿐인데, 디스크가 오고 그로 인해 건강이 망가지고 밥값을 못하게 되며 결국 인생을 망하게 된다는 스토리가 하나 뚝딱 나온다.


대불안 상태는 지나고 보면, 불안을 느꼈던 스스로가 어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다. 쓸데 없이 과하게 걱정하고, 근거도 너무 반약하다. 이런 걱정은 ‘와인을 마시다 질식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방영하던 ‘위기탈출 넘버원’ 세계관에서나 유의미하다.



불안도 계속 관리해야 한다더라. 내가 불안이 많은 성향인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타고나거나 3살 이전에 거의 세팅된다고 한다. 술 마시는 사람이 음주량을 조절하듯이, 나도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참고로, 와인을 마시다 질식사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다. 와인을 마시던 남자가 양치도 안 하고 잠이 들었다. 달콤한 향기에 끌린 벌이 남자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놀란 남자가 입을 다물자 벌도 놀라 침을 쏘고, 기도가 부어 사망한다. 와인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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