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보미 서비스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봉사 점수를 모을 필요도 전혀 없었지만,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어릴 적 나를 도와줄 어른을 너무 필요로 했던 기억이 있어서 자연스레 이런 종류의 봉사를 선택했는데, 돌이켜 보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일 같다.
길게 있지는 않았지만 며칠 동안 봤던 아이들은 저마다의 특성과 기질이 있었다.
처음 본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도움도 요청하고, 놀아달라고 하고, 여기저기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는 아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원하는 게 있어도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지만, 절친한 단짝 친구가 있는 아이.
부모의 학구열과 달리 공부에는 소질이 없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공감을 잘해주던 아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거절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해서 보험 설계사를 한다면 억대 연봉이 우스울 거 같은 아이.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띈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실내에서 탱탱볼로 축구를 하느라 떼로 몰려 다녀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한쪽 구석에 앉아 블럭만 쌓고 있었다.
한번 집중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관심을 보여도 본체만체 했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가 그 아이가 만든 룰을 따르며 블럭을 쌓았더니 그제서야 나를 놀이에 끼워 주었다.
“그거는 같은 색깔끼리 모아야 해요.”
나는 그 아이의 조수가 되어 열심히 블럭을 쌓았다.
그 놀이방에는 칼림바 시간이 따로 있었다. 외부에서 초청한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밖에서 열심히 놀던 아이들도 연주를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칼림바 수업이 시작되어도 블럭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자 칼람바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불러 세웠다.
“수업 얼른 들어가야지!”
그 아이는 긴장했는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채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저번에도 빠지고, 저저번에도 빠지고. 그동안 못한 거 집에서라도 연습해와야 돼! 알겠어?”
선생님은 수업에 열정적이었고,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자기보다 배는 더 큰 선생님이 어깨를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강하게 이야기를 하니 이 아이는 더 움츠렸다.
과거에 피아노를 배웠던 게 생각났다. 우리 어릴 적 여자는 피아노, 남자는 태권도를 많이 가르쳤다. 피아노 선생님께 손가락을 안 맞아본 학생이 없었을 거다. 꽤 배웠음에도 나는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한다. 선생님이 훨씬 더 엄했어도, 반대로 친절하고 다정하게 굴었어도 잘하는 수준까지는 못 갔을 걸 확신한다. 나는 피아노에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은 과연 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체계적으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알고, 하나의 일에 잘 몰입하고,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지루한 일도 끝까지 해내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러는 게 아니라 운동도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 잘 끼지도 못하고, 여러 분야에서 관심이 떨어지는 아이로 보는 건 아니겠지?
블럭을 쌓던 아이가 서비스가 중요한 판매직을 한다거나, 미래의 보험왕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컴퓨터 공학자가 된다면, 일을 잘하지 못했을 거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인생이 쓰다고 느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블럭을 쌓던 아이도, 미래의 보험왕 아이도 서로 다를 뿐 잘못된 게 아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금 하는 일이 힘들고, 삶이 너무 버겁다면 일이 당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무얼 손에 들고 있는가? 수십 명으로 구성된 악단의 일원이 되어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칼림바를 손에 들고 실수할까봐 덜덜 떨고 있진 않은가? 밤잠을 설치며 흘리는 눈물은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칼림바가 문제다.
주변에서 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한다고,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당신이 칼림바 악단의 일원이라면 주변 사람들도 칼림바와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태어나면서 받은 선물을 잘못된 곳에서 끌러 버렸다면, 그 선물을 소중히 손에 쥐고 환영해줄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좌절하기에는 당신이 가진 가능성은 무한하고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