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금쪽 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은 육아와 관련이 없는 2030세대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연출을 맡은 PD조차도 ‘육아를 하지 않는 젊은층 시청자들까지 위안을 느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금쪽이'였던 시청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박사님의 말에 많은 위로를 느낀다. 나도 몸만 다 커버린 금쪽이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내 마음의 상처나 나쁜 버릇들이 엄마의 잘못된 대처 때문에 생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은영 박사님이 엄마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강조하던 것들을 숱하게 당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행동했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됐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내면아이’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지금은 가짜로 판명되어 비판 받는 이론인데, 일반인들은 이런 단어가 존재한다는 자체도 잘 모르던 시절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내면아이 이론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자아를 내면아이라고 하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 고통을 주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무의식 속에서 아직도 슬퍼하고 있는 내면아이를 지금이라도 치유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2004년 발간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에는 내면아이를 직접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나온다. 어린 시절의 각 성장단계들로 돌아가서, 건강하게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들을 자기자신이 스스로 해줄 수 있게 안내해 준다.
나는 한동안 그 과정에 매몰되었다. 몇 달에 걸쳐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책을 읽고, 책에 나오는 실천을 빠지지 않고 했다. 기억 나는 실천 중 하나는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는데, 유아의 글씨체처럼 보이기 위해서 왼손으로 펜을 잡아야 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잘못된 과거의 기억을 계속 끄집어 내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며 슬퍼했다. 그 순간에는 정말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면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신경전달물질이 실제로 분비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갇힌 내면아이를 위해 울어줘도 현재가 변하지는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눈물만 흘려도 이미 죽어버린 연인도 살아나던데, 내 상처는 한 방울도 녹지 않았다. 같은 상처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감정적인 문제가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자 과거를 점점 더 불행하고 나쁘게 프레이밍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야 열심히 노력함에도 지독히 해결되지 않는 고통의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해결할 수 없으니 무기력해지고, 나 자신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피해를 받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점점 자기 연민이 늘어갔다.
이 모든 과정은 과거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불행의 기억을 더 자주 소환하고, 그때의 감정을 더 깊이 생생하게 느끼며 나를 괴롭히는 과정일뿐이었다.
나는 너무 어려운 길을 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을 하는 게, 절대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치유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의 상처를 다 치유할 필요는 없다. 팔자걸음이 문제라면, 지금 당장 곧은 자세로 가는 연습을 하면 되는 거지, 여태 걸어온 만큼 팔자걸음으로 뒤로 가는 과정을 밟을 필요는 없다. 이건 팔자걸음으로 뒤로 가는 걸 연습하는 꼴이다.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건 지금 순간의 내 선택이다. 현재의 상처의 원인을 찾을 필요도, 그걸 찾아내 치유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의 좋은 경험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