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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써 Feb 27. 2024

날 버리겠다던 엄마는 사실 버려질까 봐 불안해했다

엄마와 보라카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동생과 함께 자유 여행으로 갔다. 엄마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동생과 내가 돈을 내서 엄마를 데려갔다.


우리는 가족끼리만 여행을 간 적이 거의 없다. 이모네 가족이 놀러 갈 때, 나와 동생을 몇 번 같이 데려가 준 적이 있을 뿐이다.


내가 걷지도 못하는 아기일 때, 아빠가 좋아하는 야구장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하지 못한다.


보라카이는 하나의 작은 섬이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정도로 작다. 주민들이 대부분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기 때문에 굉장히 친절했다.


필리핀의 다른 도시에 갔다가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보라카이는 확실히 달랐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고, 거리도 밝았고, 안전했다.


보라카이의 최고 번화가 디몰의 한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동생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일어나려는데, 엄마가 갑자기 둘 중에 한 명만 가라고 했다. 


엄마는 불안해 보였다. 처음에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엄마가 직원과 혼자 상대해야 할걸 걱정하는 건가 했다.


“왜? 엄마, 무서워? 주문도 했고, 금방 올 거야.”


엄마는 완강했다. 기어코 한 명씩만 가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명씩 다녀와.”


“도대체 왜 그래?”


엄마의 대답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날 버리고 가면 안 돼.”


버린다고? 


정말 황당했다. 우리는 한 번도 엄마를 버리고 간다고 한 적이 없었다. 인파가 많아서 엄마를 잠시나마 놓친 적도 없었다. 엄마 혼자뿐 아니라 우리 셋이서 함께서라도 길을 잃었던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 와서, 낯선 사람들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다. 도착한 직후 엄마가 보라카이의 그야말로 모든 것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직원들의 호의도 거부했고, 예약해 둔 액티비티도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고, 길이 조금만 좁아져도 가지 말라고 했다.


여행지에 와서까지 그러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답답했다. 하지만 엄마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나중에는 팁을 엄마가 주기 위해서 필리핀 돈인 페소를 가방에 따로 담아두기까지 했다.


처음 두려워하던 때와 달리 완벽히 적응해서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에 엄마의 이런 우려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엄마는 나와 동생이 엄마를 두고 떠나서, 혼자 남겨진 꿈을 꿨다고 했다. 엄마의 공포는 진심이었다.




“이러면 아무도 너 안 좋아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나는 들어봤고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 나의 여러 면을 검증하고, 교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말이 남의 인간관계에 조언이나 상처를 주기 위해 자주 쓰여 왔던 클래식한 멘트이기 때문에 직접 들어본 적은 없어도,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알긴 할 거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었다고 모두가 충격받는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아 인간관계 자체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어쩌라고’ 하며 이 말을 들은 것 자체를 금세 잊는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너무 웃기다는 반응도 있고, 상처 주려고 한 말이라는 걸 알겠는데 타격은 없어서 동요조차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다양하게 반응하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면 아무도 너 안 좋아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 말이 상처였고, 충격이었고, 자기 검열을 해 봤던 사람이기에 이 말을 무기로 쓸 수 있다. 전혀 효과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뱉는 내용이, 그 사람에게 가장 큰 취약점이라는 거다.


나는 엄마에게 버려질 거라는 협박을 자주 들어왔다. 엄마의 존재가 나에게 목숨과도 같았던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어떤 걸 가장 무서워하는지 엄마가 잘 알고 있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엄마 또한 어떤 이유로든 유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고, 그 공포가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렇게 자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던 거였다. 어떤 사람은 그러기에 절대 그런 소리는 장난으로라도 내뱉지 않았겠지만.


나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으로 자랐지만, 엄마 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엄마가 스스로 해소하지 못한 불안감은 나에게 옮아 왔다.


원인이 어쨌든 내가 담고 있는 불안은 나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불안감이 다른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와 가깝거나 소중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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