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때문에, 나 때문에, 사회 때문에 꽃다운 인생을 망쳐버린 착하고 힘없는 피해자.
능력 면에서나, 성격 면에서 완벽하게 태어나지 못했던 내 죄도 있기 때문에, 나는 직접 불쌍한 엄마의 인생을 구원해 주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서 나를 키우고, 나는 또 나를 희생해 엄마를 보필하는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엄마는 나 때문에 과하게 고생했고, 나는 엄마 때문에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희생에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과대평가해 왔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을 했고, 이렇게 인생을 살면 어떻게든 보답 받을 거라 기대해 왔다.
보답을 생각했다니. 내가 했던 게 순수한 희생은 아니었다는 건 인정한다.
내가 알고 있는 A라는 사람이 있다. A는 내가 실제로 본 사람 중 가장 이기적이고, 매너도 없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주 작은 것조차 거짓말을 일삼았고,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착취했다.
자기는 잘났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원하는 만큼 남들이 따라 주지 않아서 피해의식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A는 커리어적으로 잘 나가고, 정체를 들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A에게는 쟁취하고자 하던 큰 목표가 몇 가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것들을 이루었다고 A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게 살면서도 성공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처음에는 기분이 좀 안 좋았다. 목표를 위해 저렇게 남을 짓밟아야 성공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A는 철저히 혼자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자신이 성공하고 능력을 보이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성취와 화려한 배경에도 A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A의 힘을 좋아해서 붙어 있는 사람들뿐이다.
A는 목표를 위해 노력해서 모든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성취를 이루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거라는 기대는 1%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A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아니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부모의 말에 학업에만 열중했다가 여자에게 말도 못 붙이는 남자가 된 경우는 종종 있다.
그들은 모두 목표를 위해서 노력했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성취를 하면 인정과 호감이 자연스레 올 거라 생각했던 기대가 무너지면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다고 느꼈을 것이다.
목표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연습으로 능숙해졌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점점 더 서툴러져 갔다.
직접적인 노력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꾼다. 내가 만약 엄마를 위해 희생하는 노력을 하면서, 내 인생이 언젠가 구원받거나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결론은 이럴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점점 더 잘하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내 인생이 구원받거나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은 처참할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걸 점점 더 잘하게 될 거다. 그리고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존을 점점 더 잘하는 사람이 될 거다.
무언가 얻고 싶다면, 다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직접 그것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엄마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다. 그게 잘못된 게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가 엄마와 함께 얽힌 관계의 덩굴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묵묵히 한 발 한 발을 내디뎌 가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노력의 방향만 바꾸면 된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내키지 않는다면 한번 생각해 본다. 힘들거나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서 내키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한 일이지만 힘들어서 내키지 않는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이라서 내키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보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더라도 횟수를 조금씩 줄여 간다.
이기적인 게 아니다.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기 위한 연습인 거다.
지금 당장 내가 하는 일이 쌓여 내 인생을 바꾼다. 지금 노력의 방향이 어디로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