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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목 Mar 09. 2019

3학년 5반 딸에게 쓰는 편지

   낡은 가방을 끌고 나옵니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잠금장치에 문제가 있어 잘 열리지 않기도 하는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이번 여행에도 가져옵니다. 대신 간단하게 맬 수 있는 작은 배낭을 하나 샀습니다. 외부로 돌출된 주머니는 없고 안에 여러 개 지퍼가 달린 수납공간이 있어 가져는 가지만 읽지 않는 책 몇 권과 메모지를 넣기에 적당한 것입니다. 낡은 캐리어와 촌스러운 꽃무늬 배낭을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아파트 입구로 택시를 부릅니다. 평일에 직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입니다. 어제의 출근 때와는 다른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쉽니다.

   


   광명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합니다. 타야 하는 비행기는 규슈 가고시마행 비행기입니다. 일상의 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고 떠나는지라 마음은 새로 맨 배낭만큼이나 가볍습니다. 공항 라운지에서 음식 한 접시와 라면을 먹고 탑승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커피를 마십니다. 노란 메모지를 꺼내 몇 자 적습니다.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가 고3이 되는 큰 딸에게 편지를 씁니다.



   며칠 전 큰 딸을 기숙사에 데려다주는 길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3학년 5반 반배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벌써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3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잠시 흠칫했습니다. 그날 우리 딸을 응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어떤 결정이든 우리 큰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좀 더 괜찮은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하고 아빠는 항상 우리 딸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하며 마무리했습니다.


   공항에서도 그렇고 비행기를 타는 중에도 기숙사로 향하던 그 날의 부족하고 어정쩡한 격려가 마음에 걸려 펜을 듭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입시에 쏟았고 여러 결과를 받아 보았습니다. 그런 만큼 그 과정에서 겪은 스토리와 함께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많은 말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편지에 큰 딸에게 격려를 하고 힘을 보태려는 자리가 여행 가는 중이어서 뭔가 정성이 부족하고 날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적습니다. 고3에 어울리는 말을 해주고 못하고 결국은 편지에서도 응원한다고,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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