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경 우리가 만난 지 햇수로 2년쯤 되었을 때 양가 어르신들의 입에서 상견례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나오는 때였다. 우리는 상견례 장소를 물색하고, 모실만한 곳을 찾았다. 우리만 단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룸이 있는 상암의 한 고급스러운 중식당을 예약했다. 양가 어르신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양가가 불교를 신앙으로 가진 집안이라 날짜를 선택하지 않고, 우리의 시기가 맞는 날짜로 좋은 날로 받아야 했다. 그렇게 나온 달이 20년도 4월 25,26일 그리고 중간에 윤달이 껴있어 죽은 달이라고 하여 실제 4월이 넘어가면 여름이 지나 9월이 될 거였다. 상견례를 하고 6개월이 넘어가면 좋지 않다는 소문들이 많은지라 우리는 4월에 25일이나 26일의 날짜로 선택했다. 25일은 토요일이고 26일은 일요일이었다. 상견례가 2019년 11월 경이었으니 9월까지는 너무 길고 4월이 적당하다는 양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4월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보니 식장부터 잡아야 하는데 예약이 많이 차 있있다. 둘 중한 날을 골라야 해서 우리는 비교적 한산할 것 같은 일요일로 식장 예약을 했다. 그렇게 20년 4월 26일 날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새해가 밝아 1월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스드메의 기본인 스튜디오 촬영을 했다. 추운 날이라 야외 촬영을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신혼여행에서 스냅을 많이 찍기로 하고 아주 재미있게 5시간 정도를 촬영했다. 현재 아내가 후기를 많이 보고 준비를 잘한 덕에 웃는 연습도 하고 안면근육도 잘 풀고 비교적 수월하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준비가 착착 진행되다 보니 빠른 시일에 결혼 준비를 하는 것 치고는 굉장히 무난했다.
물론 신혼집을 구하는 것, 박람회를 가서 가격을 비교하는 것, 촬영 드레스 셀렉, 가봉 등 주말마다 쉬는 날 없이 돌아다녀야 했지만 우리는 그 또한 데이트 같아서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며 신혼여행에 관한 박람회를 또 다녔다. 스드메에서 돈을 많이 아끼고, 여행에 많이 쓸 생각이었다.
참고로 나와 아내는 비슷한 점이 많다.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빨리 잊고 돌파구를 찾으려는 태도까지 닮았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등이 서로 잘 맞았다. 그래서 다른 데서 돈을 아끼고 여행에 투자하자는 제안도 서로 다툴일이 없었다. 예비 신혼부부가 준비를 하며 많이 싸운다는 후기를 봤는데 우리도 그러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했지만 막상 해보니 우리는 너무 잘 맞아서 그게 더 불안했던 것 같다.
여행은 맥주의 나라 독일로 가기로 했다. 둘 다 맥주를 좋아하기도 하고, 내 직업 특성상(심리, 인문학 분야) 철학의 나라 독일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휴양지보다는 멀리 갈 수 있으면 좋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유럽으로 가기로 했고 우리는 체코와 독일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중에서 독일과 체코의 큰 도시와 관광지 말고 소도시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정서나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는 러시아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선택하여 비교적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하고 값을 지불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준비는 아주 무난하고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2월이 지났다. 1월 말쯤 "우한 폐렴"이라는 바이러스가 돈다는 뉴스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코로나-19"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질병관리본부에서 통제를 굉장히 잘해 잘 막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안정적이었다. 그 이후 한 종교단체의 급속도로 퍼지는 코로나에 온 국민에게 비상이 걸렸고 그 여파는 우리 결혼에 영향을 막대하게 끼쳤다.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미뤄야 하는지, 강행해야 하는지, 얼마나 손해인지 등의 손익계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앞서 쓴 글들을 보면 심리학과 관련된 글들, 인문학과 관련된 글들이 많다. 그러한 글들 중에서 "선택을 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유의 주체성과 관련된 글들이 많다. 니체가 그러했고, 들뢰즈가 그러했다. 내 아내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진짜 선택을 해야 했다. 우선 예약을 걸어놓은 식장에 방문하여 이 사태에 대해 상담을 받았다. 미루면 8월 말까지만 미룰 수 있고 4월에 하면 지불보증인원을 많이 낮춰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때가 3월 초였으니 4월 말을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결혼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중간중간 주변의 많은 이들이 우리를 흔들었지만 우리는 그냥 하기로 했다. 지불보증인원은 식장에서 기본적으로 받는 식사 금액을 이야기하는 게 그것을 많이 낮춰줬다. 안 올 상황에 대비해 우리는 그것도 고마웠다.
신혼여행이 문제였다. 다른 나라 특히 유럽 쪽에 전파가 야금야금 진행되는 상황인지라 유럽 쪽에서 우리나라의 입국 금지를 요청하고, 격리를 시키는 시기였다. 당연히 여행은 미뤄야 했다. 그런데 러시아 항공에서 체코로 가는 경유하는 승객들은 입국 금지를 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환불을 받아도 전액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이 사태에 유럽을 억지로 가야 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우리의 선택은 이러했다. "분명 버티면 러시아도 전 승객 입국 금지를 시키게 될 거야. 그러니 우리 그냥 환불하지 말고 버티자!!"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버티며 하루하루 피가 말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회사에 출근하며 하루하루 입국 금지 국가를 살펴보다 러시아가 전면에 떴다. 후훗!! 우린 존버의 승리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여행 자금을 몽땅 환불받을 수 있었고 20년 9월로 미뤘다. 물론 9월에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존버의 DNA를 믿고 독일 맥주축제인 옥토버훼스트에 맞춰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6일 결혼식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청첩장을 돌렸다. 원래 대면하고 식사도 대접하며 청첩장을 돌려야 했지만 모바일로 인사를 대신하고 초대를 대신하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때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실물 청첩장이 소모되지 않고 모바일 주소 복사를 무지 많이 해야 했다.
학교 동창들, 대학 동기들, 대학원 동기들과 같이 일하는 대학원 사람들, 사회에서 맺게 된 인연들에게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보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이런 시국에 좋은 소식을 주어 너무 고맙다는 인사들이었고 꼭 참석하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전문가로서 활동하면서 많이 느끼지만 이번 일을 겪고 정말 크게 깨달았다. "축하해, 고마워, 너무 잘 어울린다." 등등등의 한마디 한마디의 메시지들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으레껏 하는 인사 혹은 답례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일을 겪을 나 자신이 되니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큰 위로와 충만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을 때 특히 좋지 않을 일을 겪을 때 애도를 하거나 위로를 전한다. 그게 말일 수도 있고, 행동이나 태도로 보여줄 수도 있다. 말 한마디, 글 한 글자, 위로의 태도, 축하의 태도는 역시 사람은 무엇이든 나눌수록 그 안에서 가치와 행복이 존재하는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우리는 비접촉 체온계를 빌렸다. 손소독제도 준비했다. 식장에서 방역을 하고, 준비한 소독제 이외의 우리도 섬세하게 준비했다.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고, 결혼식 일주일 전에 방역과 소독을 하였고, 우리가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준비해놓은 사진을 다시 한번 전달하면서 하객들을 안심시켰다. 다행인 것은 이 사진이 하객들로 하여금 준비 잘했고 안전하는구나 라고 느끼는 계기가 되어 결혼식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그리고 무사히 안전하게 결혼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예상한 인원을 뛰어넘어 준비했던 식권이 부족했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웃지 못하지만 안심되는 좋은 현상이었다. 아내 쪽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많이 찾아주셔서 우리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질 수 있었다. 양가 합쳐서 350명 이상의 인원이 왔었다. 어른들도 결혼식을 할 때 사람들이 많이 안 오면 어쩌지 라고 생각하셨는데 당일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조금은 안심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코로나 속에서 안전하게 결혼을 하였다.
정말 다행인 건 4월 20일이 지나자 코로나 확진자수가 10명 미만으로 계속 유지되었고 우리는 하객들에게 그 점을 조금 더 어필할 수 있었다. 세상일 하나도 내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35년을 살며 내 삶의 무게만큼 선택의 기로에 서본 적이 없다. 잘못되면 큰 손해를 보거나 부담, 무게가 있는 선택은 그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 시간을 견디고 선택하며, 무게와 부담을 느껴보니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될까?라는 생각이 항상 존재했는데 우리는 이런 선택에서 서로 의지하고, 말을 맞추고 대화하며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우리가 부부가 된 지 11일이 지났다. 전과 다름없는 달콤함과 신혼의 즐거움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들이 신혼 1~2년이 지나에 느껴지는 부담이나 책임을 시작도 전해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선택이든 나쁜 선택은 없다. 자신이 선택했다면 후회할 버려질 선택지는 뒤도 보지 않고 과감히 버리면 내가 선택한 그 한 가지가 최고가 될 것이다. 코로나 속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혼부부의 안전하고 행복한 결혼이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