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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준 Oct 13. 2020

어서 와 결혼은 처음이지??-제3화-

-제3화 첫만남 두번째 이야기-

 나는 그렇게 그녀와의 어색함을 지우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었다. 카톡으로 접했던 것보다 더 밝은 에너지, 긍정적인 마인드, 그녀가 나에게 대답을 해주면 해줄수록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궁금증에서 호감으로 살며시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좋은 분위기 속에 "다른 데 가실까요?"라고 제안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밖으로 나와 술을 마실지 커피를 마실지 고민했다. 우리는 커피보다는 술이었다. 나는 막걸리를 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막걸리가 약이다. "막걸리 괜찮아요?"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좋아요"라고 답했고 우리는 치킨과 맥주를 먹고도 전과 막걸리를 먹으러 자리를 이동했다. 중간에 이동하다 보니 이자카야가 눈에 보였다. 그녀가"사케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뭐든 긍정적으로 좋다는 그녀의 말에 "그럼 사케 마실까요?"라고 묻곤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악마와도 같은 곳일 거라는 것은 그때는 미쳐 알지 못했다. 들어가서 메뉴를 봤다. 나는 사케에 약간 얼어있는 타코 고추냉이의 궁합을 참 좋아한다.


 친구들과 사케를 마시는 날이면 타코 고추냉이를 꼭 시켜 먹는다. 문어의 쫀득함과 고소함, 그리고 내 비염을 없애주는 알싸한 고추냉이의 향이 나의 술맛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술을 고르기 전에 그녀에게 타코 고추냉이 영업사원이 된 듯 자랑을 늘어놓으며 "이건 꼭 먹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메뉴를 보며 "저는 잘 몰라서 알아서 주문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결정권을 줬다. 나는 타코 고추냉이와 나가사끼 짬뽕을 시켰다. 술을 고를 차례였는데 이 술이 우리에게 악마였다. 사케가 무. 한. 리. 필이었다. 우리는 무한리필로 주는 사케를 시키고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며, 낮에 만들어져 있던 어색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와 재밌는 공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사케라는 술을 마셔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다른 술보다 쓴맛이 강하지 않아서 홀짝홀짝 목구멍으로 잘 넘어간다. 우리는 사케를 시키며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차갑게 해서 마시며, 9병을 넘게 비워내고 있었다. 나는 술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정도 마셔도 괜찮아서 즐기면서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걱정하며, 그만 마실길 권유했다. 그녀는 "원래 이렇게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네요" 라며 한잔 두 잔 술잔을 기울였다. 앉아서 이야기 나눌 때 그녀는 한치의 흩트림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기에 취했다는 생각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배도 많이 부르고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만 마시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카톡으로 대략 집이 어딘지 들었던 지라 연세대 앞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나는 술이 들어가면 그것을 완화시키는 방법으로 아이스크림을 자주 찾는다. 이래저래 살찌는 나일수밖에 없다. 술도 깰 겸 아이스크림을 권유했는데, 그녀는 '저는 돼지바요"라고 말했다. 나는 구구콘을 샀고 돼지바를 찾는데 없어서 돼지콘을 샀다. 그리곤 연세대 방면으로 걸으며 술을 깨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녀가 약간 취했다는 첫 번째 단서를 알아냈다. 돼지콘을 먹더니 초코 부분만 다 먹고 나에게 주며, "이거 먹어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뭐지 이거 트릭인가"라고 생각하며, 선뜻 받아 들었다.


 오른손엔 먹고 있는 구구콘과 왼손엔 돼지콘의 초코는 없는 우유만 남은 부분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돼지콘을 돼지처럼 먹었다. 드디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가 약간 휘청거렸다. 상암동 방면으로 가려면 연세대에서 왼쪽으로 가야 했고, 우리 집으로 가려면 연세대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 자신의 집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우겼다. 속으로 " 이거 한대 쥐어박을까" 하다가 좀 취한 것 같아 연세대 운동장을 좀 걸으며 술을 깨기로 했다. 걸으며 했던 말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낮에 했던 얘기들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밤이 되면 추워지는 날씨였기에 좀 걷다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왔다. 악마의 술 때문인지 그녀는 술이 깨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더 취하는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버스에 같이 올라탔다. 분명 이렇게 보내면 집이 아닌 종점이나 외딴곳에 잠들다 내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그녀는 앉자마자 잠들었다. 얼추 동네가 가까워졌다.


 그녀에게 "여기서 내려야 해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두리번거리더니 "여기서 내려도 되고, 다음에 내려도 돼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음 정류장에 같이 내렸다. 지나며 몇 번 스쳐 지나갔던 동네의 어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귀소본능을 발동시켜 나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첫 만남에 아무리 호감이 생겨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그게 상대방에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를 아직 안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생각이 깨져버렸다. 나를 안전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그녀가 안전하게 집에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취해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비틀비틀했던 그녀가 집 근처에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걸어갔다. 나는 다시 "나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해" 라며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앞으로 자주 올 동네가 되는 걸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날의 임무를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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