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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Apr 04. 2024

무언가가 되고 싶은 누군가에게

혼자라는 결핍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3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을 내가 나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일에는 여전히 막막함이 앞선다. 무어라고 정의 할 필요 없이 나는 그냥 '나'였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때로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물어보거나 누군가의 자기 소개를 참고하기도 했고, 심리검사나 책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한 적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찾아낸 '나'라는 정보는 소개받을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낼 만한 표현들 위주로 다시 추려진다.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낯선 상대에게 내가 안전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믿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다. 성공적인 설득을 위한 일반적인 방법은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교집합을 활용하는 것이다. 교집합에 들어가는 정보가 비록 나를 정확히 표현하기에 부족하더라도 일단 낯선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무난한 정보여야 타인이 받아들이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보만으로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 할 만한 톡특한 특징 몇 가지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추가된 정보는 나를 안전하면서도 매력적인 존재로 보여주는 무기가 된다.

 무기를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여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은 단 한 가지, 상대와 '우리'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되어 소속감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소개는 일종의 시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이자, 공동체가 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 지 판단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매력적인 무기를 활용하여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독립된 존재를 벗어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를 소개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소속과 이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소속은 학교나 학년, 반 등 사회적으로 정해진 배경을 의미한다. 적어도 그 시기에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한 교집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 시간과 장소 뿐 아니라 개인의 역할과 인간 관계까지 공유하는 실질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깊이와 상관 없이 같은 반에 있는 모두를 같은 반 '친구'라고 부르고 나이가 들어서도 출신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소속은 확실히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배경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미를 갖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소개 역시 소속과 이름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어른이 되어 달라진 게 있다면 개인의 경험과 능력이 소속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나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로 나타난다. 소속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얻게 되는 정보의 양이 더 많아진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양에 비례하여 상대가 느끼는 신뢰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같은 정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소속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교집합이자 호감의 이유가 될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편견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경험에 의한 판단은 대상에 대한 빠른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고정관념이나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려고 한다. 내가 갖게 될 사회적 배경이 나를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그 동안 살아온 내 인생의 상당수를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임은 확실하다. 게다가 상대가 가진 고정관념으로 인한 판단의 결과가 실제의 모습보다 근사하거나 어쩌면 사소한 오해는 신경쓰이지 않을만큼 상대와 공동체를 이루는데 관심이 없다면 자신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설득하는 행위는 더더욱 불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의 내리고 말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들도록 설득하기 위한 일이라면 생각 이상의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 일 지 모르겠다.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를 수용해 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일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고 정의해보는 시간 없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배경으로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정말 충분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말 그것으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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