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해 초등학생 아이들과의 첫 해외캠프로 치앙마이를 선택했다. 최대한 자연을 접하자는 나의 목표에 치앙마이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사전답사라는 이름의 혼자 여행 때 다소 외진 쁘렘(PREM International School)의 트라이도스 캠프(TRAIDHOS CAMP)를 선택했다. 1주일간의 기숙캠프였고 한국인 아이는 없었다. 첫 해외캠프치고는 리스크가 있는 셈이었지만 남매가 함께 하니 서로에게 의지도 되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미리 안면 튼 한국인 인턴 스탭도 있어 마음을 놓았다. 여차하면 그 분이 아이들 소통을 도와주시겠지 하며.
사전답사 때 확인한 쁘렘 전경. 큰 수영장이 인상적이었고 기숙사도 좋아 보였다. (사진출처: 쁘렘)
1주일은 캠프를 하고 3주는 태국을 돌며 여행하자 싶었다. 친정엄마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태국 한달돌기를 마음에 그리고 항공권을 끊었다. 한 달이나 타지에 있을 것인데 제대로 준비를 하진 못했다. ‘준비’나 ‘계획’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체질이라 매번 맨 땅에 헤딩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럼에도 모로 가도 서울은 가기에 체질개선을 하지 못하고 늘 이 모양 이 꼴이다.
준비는 촉박했으나 오는 길은 순조로웠다. 비행기도 흔들림 없이 편안했고 입국심사도 빨랐다. 일사천리로 비단길 미끄러지듯 연착륙 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연착륙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캠프에 잘 적응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캠프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묵는 곳은 사전답사 때 내가 봤던 멋진 학생 기숙사가 아니었다! 애들이 1주일 간 묵을 벙커하우스는 작고 어둡고 후덥지근 했다.
딸 아로는 “엄마, 여기 크고 좋다고 하더니 작네요.”라며 실망하는 눈치였고, 아들 노아는 “나는 땅바닥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데?”
쁘렘 국제학교 기숙사와 쁘렘 산하 트라이도스 캠프의 숙소는 달랐는데 그 차이를 사전답사 때 미처 몰랐다. 학교 투어 때, 캠프보다는 학교 중심으로 봐서이기도 했고.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는 거 난생 처음이고 아이들 영어도 생존영어 수준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뭐든 맨 땅에 헤딩이 최고니까 말 그대로 애들을 던져놓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외진 곳에 말도 안통하는 애들을 두고 나오자니 걱정이 되었다. 겉으로는 '강하게 키워야 해', '맨 땅에 헤딩이 최고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 모양새였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이 1주일 캠프를 하는동안 부모도 쁘렘에서 묵어도 되는지 문의했더니 가능하단다. 그렇게 나와 친정엄마가 묵을 곳을 안내 받았는데, 그 곳이 바로 사전답사 때 봤던 학생 기숙사였다.
엄마 없이 보내는 타지에서의 첫날 밤 : 딸은 성공, 아들은 나와 함께
딸 아로는 도미토리 숙소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냈고 아들 노아는 내 품에서.
캠프 첫 날밤. 아이들이 타지에서 엄마 없이 첫날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남녀 각방이라 아들 노아로서는 엄마는 물론 누나와도 떨어져 자야 하는 타지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이 첫날 밤을 무사히 보내야 나로서는 비로소 연착륙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
캠프 첫 날이라 5분 대기조마냥 대기할 생각이었지만, 마냥 대기하기도 애매했다. 쁘렘은 너무 외진 곳이라 근처에서 할 일도 없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친정엄마랑 시내에 있는 선데이 마켓을 갔다. 아로에게 핸드폰을 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다. 친정엄마랑 길거리 음식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며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오후 3-4시에 전화를 하니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었을 땐 별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잘 지내는 거 같고 엄마 없이 자는 첫 날이자 자기네들끼리도 떨어져 사는 첫 날임에 감격스러웠다. 내일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들이지만 달리 보일 거 같았다.
엄마랑 선데이 마켓을 즐긴 후 택시를 타고 쁘렘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노아가 비 내리는 밤 10시에 샤워타월을 뒤집어쓰고 선생님이랑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앳된 얼굴의 선생님은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도 가고 아로 통해 나에게 전화도 하고 그 큰 쁘렘에서 빗 속에서 나를 찾는다고 돌아다닌 거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했거늘 핸드폰 문제로 터지지 않았던 거다. 앳된 얼굴의 그 선생님은 노아는 실제로는 7살이니 아직 어리지 않냐, 캠프 대상연령이 아닌데 어찌된 거냐, 며칠 후엔 야영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며 걱정을 했다.
결국 노아는 나와 함께 잤다.
노약자와 함께 치앙마이
나의 믿는 구석이자 비빌 언덕은 인턴쉽을 한다는 한국인 스탭 은찬씨였다. 한국인 선생님이 계시니 애들도 잘 적응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아이들 캠프 시작 바로 전날 은찬씨의 인턴쉽이 끝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아로 노아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케어해줄 샘들과도 또래 아이들과도 소통을 할 수 없는 거다. 한국인이 아무도 없는 캠프에 내던져진 거다. 그런데 인턴쉽 끝난 은찬씨가 일부러 쁘렘에 출동해서 아이들의 연착륙을 도와줬다. 시내에서 쁘렘까지는 거리가 있기때문에 은찬씨 입장에서는 일부러 온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 고마왔다.
벌레에 물려 당나귀 귀가 된 아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도이수텝 국립공원에 가서 1박 2일 야영을 한단다. 애들이 벌레에 물려서 노아 귀는 이미 당나귀 귀가 되었는데 누가 챙겨서 발라줄까 싶기도 하고. 일단 책임자를 만나야겠다 싶어 담당자 린다를 찾아갔다. 놀라운 건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린다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전날 노아가 울면서 나를 찾은 것도, 결국 첫 날 캠프 숙소에서 못자고 나와 잔 것도. 아마 선생님들을 통해 다 보고를 받은 것이렸다.
노아도 걱정이지만 선생님들께 미안하다 했더니..린다 왈, 사실 그래서 기숙캠프 대상연령을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는 9살 이상으로 한 거란다. 선생님들이 일일이 다 케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남매가 같이 오고 엄마가 아이를 보낼만 하니까 보내는 거겠지라고 생각해서 수락한 거였다며.
마음 속에서 머뭇거리던 말을 린다가 먼저 꺼냈다.
"내일 야영, 아이들과 함께 가겠어요?"
너무 고마왔다. 즉시 스탭한테 전화를 걸어 나의 참석가능여부를 알아보게 하던데 숙소와 식사 등 다소 번거롭게 된 것 같았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니 "yes! It's difficult. BUT possible!"이라는 거다. 너무 고마왔다. 게다가 노아가 유난해서가 아니라 첫 캠프는 그럴 수 있다며 위안까지 해줬다.
자, 아이들은 해결이 되었는데 이제는 친정엄마가 눈에 밟힌다. 이 수용소에서 엄마는 혼자 이틀을 보내야 한다. 마침 쁘렘 내부에 마사지 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전신마사지 예약하고 식사 장소 메뉴 돈까지 다 준비해놨다. 구글 번역기도 다운 받았는데 "휴지"라고 쓰니 PAUSE PLEASE란다. 이런.
성인인 친정엄마도 말 안통하는 낯선 곳에서 혼자서는 힘들 건데 아로 노아도 힘들겠다 싶었다. 나는 왜 여기까지 돈 주고 와서 삼대가 말 그대로 '사서' 고생하는 겐가 싶었다. 그래도 아로•노아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애써 위안했다.
노아를 끼고 자는동안 아로는 친구도 사귀고 샤워도 하고 언니들 짐 싸는 거 보면서 다음 날 야영을 위한 짐꾸리기도 야무지게 잘하고 있었다. 캠프 끝나면 정말 졸업파티 해줘야지. 내일은 산에 간다는데 나는 운동화도 없다. 괜찮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니까. (야영 이야기는 2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