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여름캠프는 쁘렘으로 결정되었으니 사전답사 혼자 여행 목표의 반은 이뤘다. 이제는 디지털 노마드 인터뷰가 남았다.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었다.
나는 사실 떠돌며 일하는 삶을 꿈꿨다. 1년에 3개월만 일하고 9개월은 세상을 떠돌며 살고 싶었다. 한 지역을 여행해서 그 지역의 특산물을 발굴해서 팔고 그 대금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사는 삶을 꿈꿨다. 그 첫 아이템은 티베트의 '석청(Wild Honey)이었다. '아리랑로드'라는 1인 기업을 세우고 티베트까지 가서 어렵게 석청을 채취했지만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망했다. 이후에도 나의 해외에서 일하고자 하는 욕망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종족의 출현은 예전의 '배낭여행족'처럼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지는 법이니 말이다.
작가는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이다. 내가 꿈꿨던 삶을 그는 이미 살았다.
내가 실현하지 못한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는 치앙마이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인터뷰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몇 명을 섭외하여 만나기로 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라이프 스타일, 돈에 대한 생각, 유목민이 갖추어야 할 재능, 기술, 덕목, 조건 등이 궁금했다(문제는 궁금만 했을 뿐이지 깊은 인터뷰를 하기엔 내 영어가 턱없이 부족했다).
Work and Life Balance? Work and Travel Balance!
대개는 IT 전공자들이라 사실 나 같은 인문학 전공자가 참고할 만한 포인트는 없었다. 그러던 중 마크와 브래들리와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호주 출신의 마크는 30여 개국을 다닌 노마드 인생 5년 차로 나름 잔뼈가 굵었다. 그에 따르면 치앙마이 외에 포르투갈, 에스토니아, 스페인 또한 노마드가 일하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의 여자 친구는 포르투갈 사람이라 스페인에 집을 사서 '노마드의 집'을 만들었다고 한다(유럽인들은 유럽 어디건 집을 살 수 있단다).
그의 '노마드의 집'은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는 오피스+숙소로 노마드를 대상으로 월세를 받는단다. 본인은 그 집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일하면서 말이다. 이젠 정말이지 work and life balance가 아니라 work and travel balance가 관건이 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기술이 그걸 받쳐주고 있고. 마크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고 스스로에게 취해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대로 할리우드 리액션 취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해서 막판에는 정말 진이 빠졌다.
그렇다. 디지털 노마드의 이미지는 이런 합성사진마냥 과대포장 되어 있기도 하다. 로망은 환상이다.
마크를 만난 후에는 SF 작가라는(알고 보니 '자칭' 작가였다) 브래들리를 만났다. 내가 섭외한 노마드는 다 IT 영역이라 작가를 섭외한 건데 그의 본업은 작가는 아니란다. 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고. 그가 쓴 책은 50권밖에 못 팔았단다.
"50권 판매가 가능해요? 출판사에서 뭐라 안 하나요?"
"자비출판했으니 출판사에서 뭐라 할 건 없지요. 아마존에서는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출판할 수 있는데"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브래들리의 책.
그래도 이미 3권이나 낸 작가란다. 인류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도전, 모험에 관심이 많아 문학 중에서도 마크 트웨인 작품을 좋아한단다. 다만 책을 쓰는 건 돈이 안되니까 세일즈를 공부했고 지금은 디지털 노마드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 및 세일즈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고객인 디지털 노마드라?! 디지털 노마드 대개가 IT맨이라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에 사업 아이템을 착안한 것이다. 영어가 되는 경우, 꼭 IT 영역이 아니어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강의 또는 대행, 세일즈와 마케팅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참고할 포인트는 찾지 못했다. 마크처럼 임대업을 해야 하나? 마크와 브래들리 모두 그들의 고객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것에 교집합이 있다.
(좌) 치앙마이에서의 디지털 노마드 삶을 갓 시작한 23세의 헨릭 (우) 디지털 노마드 MEET UP 현장
이들과의 인터뷰 외에 Digital Nomad Meet UP에도 참여했다. 직장인들은 회식이 싫겠지만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이들은 연결되는 느낌이 필요해서인지 치앙마이에는 NOMAD MEET UP이 꽤 많았다. 떠돌이들끼리 어울리기 위함도 있겠고 비즈니스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매주 금요일 4:30에 있는 meet up이 그나마 비즈니스 성격이 강한 거 같아서 가봤다.
호스트는 매튜라는 사람인데 엄청 열정적이었다. 발표하다 심장발작 일으키는 거 아닐까 걱정되었다. WE ARE THE FIRST GENERATION OF DIGITAL NOMADS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 비자나 세금 관련된 대응은 그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전 세계의 노마드여 단결하라'는 식의 발표는 재미있었고 넥타이에 정장이 아니라 수염을 안 깎아서 랍비처럼 긴 수염 가진 사람들이 세상 진지하게 듣고 있는 모습 보니까 웃기기도 했다.
여름캠프 사전답사와 노마드 인터뷰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마쳤다. 혼자 하는 여행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만날 접촉면이 컸던 것도 좋았다. 그러나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밤 12~1시에나 잔 강행군이었다. 아침에는 공진단을 먹고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마흔 줄에 들어서니 체력이 안 따라준다.
공진단, 환으로 되어 있어 기동성 좋은 약이다.
지도를 펼치며 하는 여행이 아니라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파악,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고 라인(LINE)으로 소통하고 페북에서 약속 잡고 그랩으로 택시를 잡는 여행. 이젠 등에 배낭을 멘 백패커가 아니라 손에 스마트 폰을 쥔 디지털 여행자들이 길 위에 있다.
여행만이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먹고사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서건 일할 수 있는 인재, work & life balance가 아니라 work & travel balane를 맞추며 사는 삶. 여행하듯 일하고 즐기며 사는 유목민 인생. 나는 이미 틀렸을지 몰라도 아로 노아는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인터뷰 섭외와 진행이 가능한지 여부를 이번 기회에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영어실력이 저주스럽긴 하지만 무던히 해냈다. 딴엔 나도 디지털 노마드 흉내를 내보려고 노트북을 갖고 오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수첩과 펜만으로도 충분했다. 핵심은 연장이 아니라 유목민 정신이니까.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준비 못해 몇년 전 SK 다니는 친척분이 주신 때 지난 포켓용 수첩. 게다가 내 이름이 아닌 딸 이름(전아로)의 네임 스티커가 붙여진. 하지만 없어 보이는 저 수첩으로 이번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상자들에게는 휴대하기 좋아 유목민에게 어울리는 공진단을 선물했다. 아주 피곤할 때 먹으라고.
노트북 없으면 어때? 유목민 정신이 중요하지!
디지털 노마드족이 사랑하는 발리의 우붓과 태국의 치앙마이는 비슷하면서도 구성원의 성격이 다소 다르다. 우붓은 요가와 명상을 찾는 이들이 많다면, 치앙마이는 좀 더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이들,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많다. 비주얼로 표현하자면 우붓은 눈 감고 요가 중인 사람, 치앙마이는 카페에서 노트북 켜놓고 눈 부릅뜨고 모니터 노려보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나는 후자가 좀 더 끌리고 그래서 우붓보다는 치앙마이가 더 좋다.
10년 만에 혼자 한 여행이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그나저나 도이몬쨈에서 본 저 꼬마야 말로 디지털 유목민 in 치앙마이다. 의자 들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이동해서 스마트폰을 보더라. 사람들 몰리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모양새가 어찌 되었건 나의 아이들도 세계 어디를 가건 변신로봇처럼 변신하며 일하고 놀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의 캠프하며 여행하는 한 달 돌기 여행을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