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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18. 2020

[주역]비 내리게 하는 매일의 힘-풍천소축(風天小畜)괘

모든 위대한 작품은 매일의 습관이 '스며든' 결과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했다. 요리에 관심 있는 딸아이는 마음에 드는 반찬을 먹을 때면 레시피를 꼭 물어본다.  


“엄마, 이거 메추리알에 간장만 부으면 돼요? 그러면 색깔이 이렇게 돼요?”


“아니, 간장 넣고 한참 졸여야 돼. 그래야 색이 스며들지. 간장만 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문득 간장게장을 소재로 한 안도현의 시 <스며든다는 것>이 생각났다. 간장게장이건 메추리알 장조림이건, 또 다른 빛깔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는 ‘스며듦’에 있다. 스며들고 물들여지다 끝내 이뤄지는 변화.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변하는 변신이 아닌 진정한 변화는 이렇듯 스며듦에서 온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매일의 습관이 ‘스며든’ 결과이다.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단박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천재들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영감 역시 매일의 꾸준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영감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마중 나가야’ 하며 그러한 영감 마중은 메추리알에 간장이 스며들게 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급기야 물들어 또 다른 변화의 빛이 빛날 수 있는 것의 열쇠는 바로 ‘스며듦’인 것이다.


하지만 스며들어 물들인다는 것은 말이 쉽지 참으로 감질 맛 나는 일이다. 나처럼 성질 급하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노력이니, 습관이니 하는 것보다는 재능, 천재성, 한 순간의 번뜩이는 영감이라는 파랑새를 찾는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욕심이 재물에 적용될 때에는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거다. 천리 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되고 태산은 티끌이 모아 되는 것인데 말이다.



혹시 그대도 나처럼 재능은 평범한데 성질만 급하고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큰가? 나와 그대에게 필요한 괘가 있으니 바로 주역의 9번째 괘,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괘상을 보자. 하늘(天, ☰) 위에 바람(風, ☴)이 있다. 축(畜)은 ‘기르다’, ‘쌓이다’, ‘저축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늘 위에서 바람이 불며 구름을 띄우는 모습은 비 내리기 직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비 내리게 할 구름을 묵직하게 기르고 저축한다는 의미로 축(畜)을 괘의 이름으로 한 것 아닐까. 이제 풍천소축의 괘사로 들어가 보자.   


“小畜(소축)은 亨(형) 하니 密雲不雨(밀운불우)는 自我西郊(자아 서교) 일 세라”


小畜(소축)은 亨(형)하다고 했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 째, 소축은 형통하다는 것이다. 대축(大畜)이 아닌 소축(小畜)이 형통하다고 한 것에 주목하자. 작은 습관, 쌓이는 습관인 '소축'은 요샛말로 하루 루틴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소축은 의식(ritual)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亨(형)은 '제사를 올리다'라는 뜻도 갖고 있는 바, 제사를 올려서 만사가 잘 풀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매일의 루틴은 하나의 '의식(제사)'이라는 뜻도 되겠다.


이어지는 매우 시적인 표현은 종종 사자성어로도 쓰인다. 바로 '밀운불우(密雲不雨)'라는 표현인데 밀도 높은 구름(밀운/密雲), 즉 구름이 빽빽함에도 아직 비가 오지 않음(밀운불우, 密雲不雨)은 내가 서쪽 교외에서 서성거리고(자아서교, 自我西郊) 있기 때문이란다. 매일의 루틴으로 소축을 실천하여 구름은 묵직해졌거늘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욕망이 변비에 걸린 상황이라 하겠다.

당장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낙담할 것인가? ‘소축’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넘쳐 하나의 빗방울을 시작으로 비는 쏟아져 내릴 것이다. 다만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는 우리는 조급해하며 포기를 하거나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을 쓸어버리는 우를 범하곤 한다. 自我西郊(자아서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며 서쪽 교외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빗댄 것이 아닐까. 또는 한 번에 비가 내리는 방법을 찾아 엄한 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빗댄 것이 아닐까.  비를 내리게 하는 小畜(소축)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풍천소축>을 내게 적용하여 나는 아침마다 필사와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 나는 소위 진도를 빨리 빼는 것을 좋아하여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추진력은 강하나 유지력이 약한 내게는 매일의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수련 같은 모닝 루틴을 만들어 아침마다 필사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내 나름의 빽빽한 먹구름(密雲, 밀운)을 만드는 과정이다.


밀운불우(密雲不雨), 즉, 구름은 무거운데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 서쪽에서 서성이지 말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매일의 의식을 쌓아야 한다. 소축의 밀도를 빽빽하게, 매일의 습관을 더욱 촘촘하게 할 때 미래는 길할 수밖에 없다고 주역은 말한다.


'매일의 습관'은 비가 내릴 때까지 진행된다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매일의 기우제'를 올리는 것이다. 소축(매일의 습관)은 구름을 빽빽하게 만들어 급기야 비를 내리게 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그대와 나, 모두 '풍천소축' 하여 만사형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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