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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an 13. 2019

띠띠미마을에서

- 아름다운 이름들에게

'띠띠미마을'에 산수유꽃을 보러 갔더니 만개는 아직 이른데 꽃보다 마을이 좋더라. 담장은 낮고 밥집 하나 없어서 상춘객들이 무심히 꽃만 볼 수 있는 게 좋더라. 꽃은 잠깐 피었다 지고 꽃구경 왔던 이들도 꽃 지듯 가고나면 주민들은 꽃 진 자리에 맺힌 산수유를 따고 말려서 생계를 삼겠지. 꽃은 잠시 좋고 사는 일은 늘 수수롭다는 듯 마을 이름도 '띠띠미마을'이다. 

 
'멋질'이란 동네 이름은 또 얼마나 멋진가. 자배기 속 같은 골짜기에 논이라야 스무마지기, 그나마도 무논이어서 상호 아니고는 부칠 사람이 없지. 밭도 죄 물매진 감자밭에다 사람이라야 열셋. 상호네 식구 다섯을 빼면 노인들만 사는데 참 희한하지, 그 노인들 짓는 비탈밭 농사가 해마다 좋더군. 감자는 실하고 고추는 붉어서 자족하기에 모자라지 않더군. 아마도 동네 이름이 '멋질'이라 그렇지. 
 
'생달'이란 마을 이름은 또 얼마나 아름답나.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화전민 아니고는 들어올 이유가 없는데 화전이 금지된 뒤로는 산 뜯어먹고 살던 약초꾼 몇이 주민의 전부였던 동네. 그런데 댐이 생기고 골짜기에 물이 들어오면서는 그 흉악스럽던 산이, 그 음험하던 골짜기가 전부 호수에 비치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지. 그 배경 위로 바람이 불면 호수 위에 뜬 달도 일렁거려서, '생달'이란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동네가 되지. 
 
'비나리마을'에서 느껴지는 간구함은 얼마나 경건한가. 시드물, 구망이, 오그래미, 재멜, 소금미, 미개놀, 넘어마실, 거리늘미, 똥고등골 같은 마을 이름을 듣노라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생이 저절로 눈물겹고 홀로 아름다운데 어이없게도 그 마을들을 지우면서 길이 생겼다. 
 
산수유길, 사미정길, 오전길 따위의 근본없는 신주소를 보노라면 살던 동네는 간 곳 없고 사람들은 죄다 길 위로 쫓겨나 집으로 못갈 것만 같은 것이, 에라이, 관이 하는 일이란 게 하나같이 저 지경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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