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규사용자의 랜딩 플로우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존에 아몬즈는 신규설치자를 회원가입/로그인 페이지로 랜딩시켜 왔는데 구매전환/리텐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홈으로 랜딩시켜 상품/기획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게 신규사용자의 리텐션/구매전환에 긍정적일 것이라 판단되었다. 해당 가설을 기반으로 뎁스와 랜딩페이지를 변경하는 개선안을 진행하였고, 1달여 전 출시되었다.
하지만 개선안의 추적 결과 구매전환/리텐션/이탈율이 그대로 유지되는 패턴을 나타냈다. 이외의 여러 분석을 통해 사용자를 공감시키는 사용성이 우리 서비스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최근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조금씩 찾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려 한다.
가치/취향을 제안하거나, 연결하거나
많은 커머스들과 서비스를 살펴본 결과, 서비스/상품 유형별로 사용자를 락인하고 가치를 제안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서비스는 고유의 가치(정체성)를 가지며, 사용자들은 해당 서비스의 가치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그것은 사람냄새일 수도, 고급스러움, 편리함, 친근함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각 서비스의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고유한 가치는 제안이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제안이란 쇼케이스/매거진/콘텐츠/큐레이션 등을 통한 생산자(편집자) 중심의 일방향적 소통을 중심으로 한다. 연결은 랭킹/UGC/후기&커뮤니티 등 사용자간의 취향(가치)를 연결하거나, 맞춤 콘텐츠 등 사용자가 이미 가진 취향/가치를 끊임없이 연결하는 형태이다.
서비스/마켓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트렌드 구축 방식은 달라진다. 어떤 서비스는 제안만을, 어떤 서비스는 연결을, 어떤 서비스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취할 수 있다. 오늘은 먼저 명품 커머스 FARFETCH를 통해 제안하는 서비스를 알아보려 한다.
제안하는 서비스
간혹 가치를 제안하기만 하는 서비스들이 있다. 리뷰/커뮤니티/뉴미디어 등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각광 받고 있는 현 시대에서 어떻게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수 천만 사용자의 선택을 받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던걸까? 서비스/마켓별로 다양한 배경이 있겠지만, 오늘은 FARFETCH를 통해 가치를 제안하는 명품패션 커머스를 알아보려 한다.
명품커머스 FARFETCH
파페치는 2008년 시작된 명품 직구 서비스이다. FETCH(전세계의 부티크에서 가져온 명품을)+FAR(널리 보급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등으로 인한 온라인 커머스 산업의 수혜를 입은 파페치는 2020년 1조 8천억의 매출을 달성했다. 거래액으로 따지면 4~5조는 가뿐히 넘길것이다.
그렇다면 전세계 명품커머스를 혁신하고 있는 파페치는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안할까?
파페치는 굉장히 깔끔한 레이아웃의 홈으로 사용자를 맞이한다. 할인/직구라는 파페치의 기능성, 절제된 화보이미지, 브랜드/상품명/가격, Button-쇼핑하기가 전부이다. 그 흔한 기획전, 인플루언서, 후기콘텐츠 등은 볼 수 없다. 심지어 리뷰수/평점도 파페치에는 없다. 한마디로 사용자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소셜프루프 요소는 깔끔하게 제거하고, '명품의 가치'만 남겨놓은 것이다.
왼쪽)파페치-누끼컷, 오른쪽)W컨셉,29cm-컨셉컷/후기/좋아요
이러한 특징은 상품정보 영역을 비교해보면 훨씬 명확해진다. 파페치의 상품정보는 누끼컷/브랜드/상품명/시즌으로만 이루어진다. 누끼컷으로 이루어진 상품 썸네일은 오직 상품의 모양에만 집중하도록 만들며, 사용자는 이외의 별다른 사회적 정보를 획득할 수 없다.
반면 W컨셉, 29cm 등의 중저(고)가 커머스는 상품정보에서 컨셉샷/리뷰수/좋아요수를 노출한다. 여기서 사용자는 상품의 모양 외에 세련된 외국인 여성/남성, 화사함, 직장인 등의 페르소나와 상품의 인기도를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 상품정보의 구성에 따른 사용자의 인지 차이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파페치가 사용자를 설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파페치에서 사용자들이 상품/브랜드 정보만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파페치가 다루는 상품/마켓의 특징에서 이를 판단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패션상품을 기능적/사회적 관점을 혼합하여 판단한다. 기능적 관점은 옷이 튼튼한가, 사진과 상품이 동일한가, 사이즈는 어떠한가? 등의 판단을 의미한다. 사회적 관점은 이 옷을 통해 내가 더 나아보일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품인가? 등 '사용자(구매자)'의 사회적 인정 획득과 관련된 것이다. 사용자는 이러한 기능적/사회적 정보를 상품의 썸네일, 실구매 후기(수), 판매랭킹, 좋아요 수, 브랜드명, 가격을 통해 인지하고 판단한다.
명품의 높은 사회적 지위
하지만 명품은 이미 높은 사회적 인정을 누리고 있는 카테고리이다. 버버리, 에르메스,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 명품 브랜드의 높은 판매수, 사회적 명성, 장인정신(품질) 등은 커머스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이미 사용자가 인식하고 있다. 즉 파페치가 다루는 상품(명품)의 사회적 맥락 정보는 이미 사용자에게 내재화되어, 더 이상 후기/판매량/컨셉사진 등으로 제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제안만 해도 되는 커머스를 운영 가능하게 만든다.
카테고리에 따른 기능성/사회적 인정
제안하는 서비스는 높은 사회적 신뢰도에 기반한다.
이처럼 제안하는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높은 신뢰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이다. 후기(수)/평점/좋아요/인플루언서 또한 사회적 인정(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의 일부일 뿐이다. 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SNS의 발전이, 트렌드 변화 속도와 비례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하지만 명품은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평가가 사회적으로 내재화되었다. 후기/콘텐츠가 아닌 긴 시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맥락이 있는 것이다. FARFETCH와 같이 제안하는 서비스에 접속하는 사용자는, 이미 해당 서비스가 다루는 상품/마켓의 신뢰도를 인지하고 있다. WConcept/29cm가 후기를 통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사회적맥락을 FARFETCH의 사용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저명한 의사가, 유명한 CEO가, 탑가수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과 유사하다. 만약 압도적인 기술력, 품질, 사회적 명성을 가질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상품을 다루는 서비스라면 후기/랭킹을 통한 사회적 정보보다 '상품을 찾고, 구매하고, 받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서비스의 특징에 따른 사용자의 가치판단 플로우는 아래와 같다.
제안하는 서비스와 연결하는 서비스의 가치판단 플로우
글을 줄이며, '사람냄새 나는 서비스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최근 배달의민족, 유튜브, 오늘의집, 무신사, 쿠팡, 지그재그 등 사람냄새 나는 서비스들이 많아지고 있다. 고급 이미지를 위해 고객들과의 친근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하던 업체들도, 사용자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서비스들을 둘러보며 모든 서비스에서 반드시 사람냄새가 나야하는건 아니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불특정 고객을 다루는 B2C 시장에서 사람들간의 이야기/내러티브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며, 이는 점점 더 강화될 것이다. 사람은 정보교류(대화)를 통해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시장/서비스별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갈 것임은 분명하다. 리뷰를 중요시하는 트렌비/발란과 같은 서비스가 생겨남과 동시에 파페치/육스 같은 커머스도 함께 공존하며, 조금씩 다른 서비스/시장 양상을 보여줄 것이다.
커머스의 PM/PO로 일하기 시작한 1년여 전부터 상품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씩 고민해 왔다. 어떤 커머스는 랭킹을, 어떤 곳은 개인화를, 어떤 곳은 화보를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듯 어느것도 옳다고 할 수 없다. 각기 다른 결과 방향이 필요하며, 우리만의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오늘은 제안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다음은 요즘 핫한 연결하는 서비스들을 얘기해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