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번씩 나를 남기는 건
집 가까이에는 초록을 한가득 독식한 공원이 있고, 손짓 몇 번이면 온 세상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름다움 가득한 순간 속에 살고 있지만요. 반대로 우리 삶은 아름답게 만개한 꽃 한송이가 아니라 꽃 피우고 지다를 수만 번 반복하다 천천히 시들어 끝내 흙이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고 사라지는 것은 더 이상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지나가버린 각자의 시간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땅 아래 깊숙이 파묻혀버리지요. 지고 난 자리에는 색바래고 속 빈 꽃줄기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관은 거대한 지하 흙 공간 같습니다. 땅 밑 공간에는 여러 사람이 꽃 피우던 지난 시간이 차곡차곡 기록되어있습니다. 제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꽃 피운 사진들은 흡수되거나 증발하지 않고 땅 속 한켠에서 흙으로 자리 잡아 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남겨진 기록은 허둥지둥대는 법이 없습니다. 남루한 것들도 없지요. 꿈과 생시의 교차, 사유와 실천의 반복으로 저기 얼굴 위 주름의 역사는 시작되었을 겁니다. 수만 번의 따뜻한 눈물과 차가운 웃음이 한곳에서 만나 얼굴 위에서 꽃 피우다 흙이 되어 밭고랑 길을 만들었을게 분명합니다. 그 흔적은 아주 질겨 메꿔보려 애써도 제 모양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고랑의 깊이가 더 깊어질 뿐이지요.
‘찰-칵’, ‘찰-칵’. 빠르고 강한 반복적인 플래시 빛 덕분에 익숙했던 매일을 끊어내고, 선명하고 번쩍이는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그간 열심히 피워낸 꽃송이도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한 날이었고요.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운동장이 동그란 이유도, 세상 모든 바퀴가 동그란 이유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여기 이 사진에 기록된 눈동자도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요. 강한 빛을 받고 렌즈 너머 보이는 반짝이는 눈동자는 유난히 동그랗습니다. 매일을 한결같이 하루를 돌고 제자리로 오는 둥근 태양 빛 덕택에 활짝 핀 꽃 송이가 동그란 눈동자 안 가득 맺혀 다시 캄캄한 지하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계절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 번, 이것도 어렵다면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사진관에 가서 각자의 모습을 남겼으면 합니다. 틈 없이 내뱉던 말들을 잠시 아껴두고 미처 몰라던 눈빛과 웃음을 찾아내느라 웅크려보기도 하고 허리를 한 번 쭈욱 펴보기도 하는 게 제법 즐겁더라고요. 꽃 피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입꼬리를 힘주어 올려보기도 하고요, 투명한 허공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속 저의 어색한 멈춤이 애틋합니다. 사진은 멈춰있고 활짝 피었던 꽃송이는 이제는 흙이 되어있지만, 그날의 저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한결같이 꽃 피워가고 있으니까요.
사진 가득한 땅 속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니 매서웠던 겨울바람은 지나가고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덕분에 지하로 내려가 흙이 되어버린 꽃송이는 곧 틈을 비집고 나올 새로운 꽃줄기의 든든한 양분이 되어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