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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Feb 19. 2024

신기루가 호수가 되기까지

 매일 신기루를 보며 살아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라는 행복 혹은 행운, 이상 혹은 환상. 이런 것들을 나는 신기루라고 부른다. 눈앞에서 보란 듯이 반짝거리지만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기루. 그런 신기루가 점점 제 몸집을 키워 결국 세상 곳곳을 반짝여주면 나는 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약 시속 900km로 하늘을 가로질러 저 멀리 어딘가로 가는 길. 그 길을 거대해진 신기루와 동행한다. 우리는 함께 상공을 부유하며 낮과 밤을 지나온다. 한치에 오차도 없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낮과 밤을 이곳에서 마주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창 사이로 유난히 뜨겁고 새하얀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빛은 저기 대각선 방향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쓰고 있는 메탈 안경테와 만나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마치 내 신기루와 같다.


 창문 너머로 지상을 바라본다. 손톱보다 작아진 건물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채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산맥과 끝을 모르겠는 파란 바다가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x축이 아닌 y축으로 머문 곳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면 세상은 나름 고요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y축에 도달하고 보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만이 저 아래 존재한다.


 해 질 녘이 찾아온다. 해가 질 때 하늘이 가장 예쁘다는 것을 아는가. 하루 종일 빛을 내며 자리를 지켜주다 떠날 때쯤 되니 우리는 그때서야 예쁘다 아우성이다. 수 시간 비춰대던 태양이 우리와 멀어지면 푸르던 신기루는 붉게 그을려져 이곳에 가득 찬다.


 이내 곧 차가운 어둠이 드리운다. 그저 창밖에서 하늘 가득 찬 별들만이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신기루를 잊지 말란 듯이 별들이 만들어내는 반짝임은 그 모양이 똑 닮아있다. 이름조차 간신히 기억하는 옆자리 아주머니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옷깃을 스미는 서늘한 공기에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린다. 그녀는 신기루를 호수로 만들기 위해 여기 있는 걸까. 호수를 거쳐 다시 신기루가 보이는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기 있는 걸까. 그 방향이 어찌 됐든 허튼 방향은 없다. 그 속에서 그저 우리는 함께 순환하고 철저히 엮여있을 뿐이다.


 약속된 시간이 오면 우리는 하강한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커다란 쇳덩이가 지면과 스치듯이 닿으면 크고 작은 충격이 몸을 뒤덮는다. 고이 모셔온 신기루는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리고 만다. 슬퍼할 새 없이 사람들과 섞여 밖으로 서둘러 나온다. 그 앞으로 새파랗고 커다란 호수가 나를 반기고 있다. 잘게 부서져 사라져버리고만 신기루가 다시 생겨났나 했지만 분명 호수다. 더 이상 신기루는 없다. 더 이상 행복도 행운도 이상도 환상도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원한, 푸르고 맑은 호수만 있을 뿐이다. 한동안 호수 주위를 걸어 보고, 파란 잔디밭에 누워 지나온 하늘길을 바라보겠지. 그러다 태양 빛에 몸이 익어갈 쯤 호수로 뛰어 들어가 헤엄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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