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리러 왔어요.>> <<무슨 책을 원하십니까?>> 우리는(아버지와 에르노) 도서관에 다시 가지 않았다.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이방인'의 첫 문장처럼 시작해볼까 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위층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아래층에서 파스티스 와인을 판다. 가게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옷을 치우면서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폐 뭉치가 그가 며칠 전까지 살아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아버지의 장례는 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결혼식 미사에서처럼 슬피 울었다. 행복도, 슬픔도 멀리서 보면 같은 모습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만나보면 소설인지 현실의 사건들을 텍스트화 시킨 것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철학이 느껴진다.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아버지를 회상한다. 어머니와의 결혼, 가게를 차리고, 일을 하며, 만나보지 못한 언니의 죽음까지. 딸 혹은 관찰자로서 자신의 아버지를 적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작가가 원했던 것은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문학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이 글에서 작가의 의중이 나타난다. "아버지의 존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쓰면 인물을 창조하게 됩니다. 이 경우 제 아버지가 되겠죠." 그저 보여주고, 화자의 감정에 붙잡히지 않게 하는 것. 에르노는 자신의 기억 속에 불투명한 아버지를 담담히 서술한다. 아버지는 교육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자리, 아니 에르노가 자란 그 자리를 적어두고 떠나려고 한다. 부르주아라고 불렀던 그곳으로 가기 위해,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자리에 온기는 살아있음을 나타내 준다. 아버지의 자리의 온기가 사라져서 '자리'였던 곳이 어느 순간 없어지지만 아니 에르노가 "아버지의 자리"를종이와 펜으로 만들어주었듯이, 나의 삶의 자리는 어떤 온기를 내뿜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자리의 온기가 누군가를 덮혀줄 수 있는 적당한 온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