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쉬 Sep 29. 2021

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 이혁진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지만, 위트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현장 안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이 어디에나 있을 법하다. 보는 내내 나까지 기분이 나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읽는 동안 그 불편함에서 발견하는 현실 문제들이 또 다른 희망을 주었다. 한탕주의. 인간 속에 남겨진 것은 나약함과 욕망뿐일까. 인부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한 없이 하찮은 것을 위해, 반장은 위에서 내려오는 인정과 적당한 돈을 위해, 소장은 자신이 만든 판과 달콤한 돈 때문에. 그렇다. 모두가 돈 때문이다. 도덕적 양심을 버리기 위한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의 술 한잔이, 백화점 상품권이, 빼돌리는 돈들이 그들의 인간성과 바꾸는데 차고 넘칠 뿐이었다. 인간은 그렇다. 그저 입을 달게 만들면 될 뿐이다. 한 번 맛본 혀는 쓴 것을 거부한다. 직급은 결국 얼마만큼 맛보았느냐의 차이이다. 맛본 것이 더욱 많은 사람이 더 먹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올라갔을 뿐이다. 그렇다 그것이 현실이다. 

 

 선길은 아이가 아프다. 일을 하는 이유도 사실 아이를 위해서다. 목반장은 그의 사정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하지만 결국 남이다. 굴착기를 모는 현경 역시, 그를 배려함으로 현장에서 욕망에 침식된 군중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다. 타인을 위하는 행동을 통해서도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동정심 때문인가 아니면 자기만족인가. 어느 선택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나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기심이 숨어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이라는 것은 과정과 주체의 의도를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목반장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 같다. 

 

 선길의 아이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이의 쾌유는 아버지에게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주었다. 아니, 더러운 세상에서 더럽게라도 살아남겠다는 개인이길 포기한 다짐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선길은 전보다 의욕적이었다. 새로운 팀장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주변의 기대가 조금은 생길 정도로. 허나 세상일이 그렇게 잘 풀리던가. 욕망에 멀어버린 현장에 안전은 없다. 안전은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흙받이 작업조차 하지 않은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선길은 죽었다. 러시안룰렛 게임에 운이 없게 자기 차례에 총알이 발포되었을 뿐인 사고이다. 


 이 사건의 최고 관리자인 소장은 냉철했다. 그는 가능한 책임을 작게 만들려고 했다. 그는 이 안에서 가장 똑똑하다. 모든 것은 소장의 뜻대로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았다. 허나 매끄럽지 않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반발과 저항을 넘어서서 바뀌지 않는 사실, 죽은 선길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모순적이게 가장 큰 피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약자는 그런 것이다. 약자는 말하지 못한다. 약자를 떼어두고 모든 것은 처리된다. 누구도 약자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애도는 어디 갔는가. 욕망과 아직 동떨어진 현경. 죽은 선길을 보며 구역질한다. 현경에게 마음이 있는 한 대리는 이 순간도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했다. 의도하든 아니든. 현경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한 대리. 괜찮지 않은 것은 죽은 선길 아닌가. 선길에게서 눈을 돌려 헛구역질하는 현경을 챙기는 현장에서 가장 약소한 한 대리를 통해서 인간은 높든, 낮든 자기 자리에서 욕망에 충실하다. 결국 한 인간의 죽음도 욕망의 카르텔을 깰 수는 없었다. 인간의 생명은 그 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던가. 

 

 한국소설은 결국 권선징악이라고 하던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장은 분노를 몸소 받아냈다. 현장은 붕괴되었다. 선길이 데려온 개에게 현경은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말한다. 

"사람이 다 널 어떻게 하려고 하진 않아. 한 대리 같은 사람도 있잖아?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너도 알아야 돼. 사람이 다 그런 게 아니야. 다 그런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럴수록 너만 곤란해지는 거야, 너만."

 

 현장을 빠져나가는 현경의 품에 안긴 개의 보드라운 배를 만지는 현경. 개에게 자신이 바라던 인간은 다 그렇지 않다는 희망을 전가했다. 작고 보드라운 희망은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먹힐 거 같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은 한 인간의 의해서 지속되고 유지된다. 작가는 우리에게 전한다. 희망을 지키려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존재하고 지켜진다는 것을 말이다. 지독한 현실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바로 당신의 품에 안겨서.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조쉬의 인스타그램_@underyaw

다대포예술기지_@ddp.artbase.official

 

작가의 이전글 최애, 타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