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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Apr 14. 2020

꼰대 상사와 갑질 상사의 '권력'에 대한 착각

꼰대 & 갑질

직장생활에서 정말 보기 싫고 경험하기 싫은 것들 중에 하나가 상사의 꼰대질, 갑질이다. 직급이 높고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업무뿐만 아니라 업무 이외의 부분에까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상사는 짜증을 불러온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당신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당신 단점이 뭐냐 하면 말이야~' 같은 인트로를 달고 시작하는 꼰대질은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인생 선배의 금쪽같은 조언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자기 자랑, 자기 위로, 쓸데없는 오지랖으로만 생각될 뿐이다. 듣는 척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표정 관리를 하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진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다 보니 인지부조화 상태에 들게 되고 불쾌감이 치솟는다. 1초가 10분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겨우 끝을 맺으면 안도와 함께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도 꼰대질은 듣는 척만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갑질은 그 보다 더 치명적이다.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부당한 대우를 서슴지 않는 '갑질 상사'는 심각한 심리적 내상을 유발한다. 직장생활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위계질서에 의해 규정된다. 덕분에 상사의 무분별하고 강압적인 지시와 명령,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행 앞에서 제대로 항거를 못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직급이 깡패'라는 말의 요지는 '직급'이 아니라 '깡패'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다. 패배감과 열등감, 분노 같은 나쁜 감정들이 마음속에 뒤엉키다가 상처가 된다. 딱지가 앉을 새도 없이 아픈 곳을 자꾸 후벼 파이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진다.


그런 가운데서 '저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아주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은 어디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꼰대질은 우월함을 향한 애잔한 몸부림이고 갑질은 권력의 오용이자 남용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문제는 꼰대 상사와 갑질 상사도 그런 사실 쯤이야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들은 그런 환영받지 못할 행동을 하느냐이다. 


상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행동들

꼰대질을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우월감에 대한 욕구가 강할 수도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의견을 빌자면 꼰대질은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다. 하지만 위계질서 안에서 상사들은 이미 우월한 사람이다. 적어도 부하직원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들은 이미 '공식적으로' 우월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하직원들을 대상으로 우월감을 쌓으려 든다. 제대로 된, 보다 강력한 우월감을 얻고 싶다면 자신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에게 우월감을 드러내면 될 텐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욕구를 달성할 수 있는 대상이 이렇게 선별적이라면 우월감에 대한 욕구만으로 꼰대 상사를 이해하기는 어려워진다.


상사의 갑질은 권력 추구에서 오는 쾌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이안 로버트슨 Ian Robertson 트리니티 컬리지 교수는 권력에도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권력을 행사할 때 뇌에서는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생성된다. 쉽게 말하자면 권력을 행사하면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쾌감에 중독되면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게 되는 '권력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갑질 상사 모두가 권력에 중독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갑질 상사들은 때로 쾌감이 아닌 다른 욕구들,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해 갑질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꼰대질이든 갑질이든 딱 부러지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파악해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꼰대질이나 갑질을 한 번에 꿰뚫을 수 있는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꼰대질과 갑질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통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다름 아니라 꼰대 상사나 갑질 상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무제한 권력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하거나 무엇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이다. 실제로 상사는 부하직원에 대해서 그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권력은 무제한이 아니라 규범에 의해 승인된 범주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 '제한이 있는 권력', 즉 '권한'이다.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

꼰대 상사는 자신에 주어진 권력은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는 제한을 넘어선다. 그래서 업무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부하직원의 행동, 태도, 인생관 따위에도 관여하려 든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를 업무적 관계로만 철저하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서로가 편하고 관계도 유지가 된다. 업무에 관한 적당한 조언이나 잔소리 정도야 상사를 '업계 선배'로 여기면 받아들일 수 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그 정도가 용인되는 '선'이다. 하지만 상사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권한 밖의 일이다. 직장은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온 곳이지 근거도 편협한 처세술이나 직업윤리, 인생관 따위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질 상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한계선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부하직원이 결코 받아서는 안 되는 부당한 대우를 한 것이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사실을 갑질 상사도 모르지는 않는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런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권한을 권력으로, 다시 그 권력을 '권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갑질 상사는 부하직원에 대해 못된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하직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서류 뭉치를 집어던지고, 자는 사람에게 전화해 야단을 치고, 법으로 부여된 휴가를 못쓰도록 만들고, 실업자를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못된 짓을 하면서도 인식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없게 된다.


꼰대 상사와 갑질 상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무제한의 권력이 아니라 한계와 범주가 분명한 권한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래서 한계를 넘거나, 또는 한계를 함부로 확대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한계를 넘어선 권한 행사를 권리로 여긴다. 어느 게 더 나쁘다고 할 것도 없다. 배울 점이 없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고통과 불쾌한 감정을 준다는 점에서 수준이 낮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면 조직의 시스템이 그런 착각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권한 안에서만 권력을 행사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벗어나는 행동은 제어하면 된다. 그런데 회사라는 집단이 워낙 목적지향적이고, 위아래 구분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구시대적 발상이 여전한 세상이라 시스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시스템을 바꾸기도,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을 어찌하기도 참 어렵다.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인 데다가, 한번 자리를 잡은 시스템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인간은 반성과 성찰의 동물이지만 웬만한 계기가 아니고서야 자신을 180도 바꾸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다. 꼰대질과 갑질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그나마 그들의 행동에 그럴듯한 명분 따위는 1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해야겠다는 다짐이라도 하자. 꼰대질이라는 애잔한 행동으로 우월감을 뽐내고 갑질이라는 비루한 행동으로 권력의 맛을 보는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비웃음의 대상임을 확실히 하자. 그러면 조금은 덜 피곤하고 조금은 덜 아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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