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둘리
예전에 같이 일하던 직장 동료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이전 회사의 상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상사는 급히 처리할 업무가 있는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 후임 직원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그 직원은 시간을 내서 업무 처리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몇 번 일을 도와주었더니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일을 주더라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은 고맙다, 미안하다, 밥 한번 산다라는 인사치레라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말은 쏙 빠지고 마치 업무 지시하듯이 이메일만 보내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절을 했더니 몸 담고 있던 회사에 그 정도도 못해주냐고, 야박하다고 하길래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그 상황에 대한 그 직원의 결론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진짜더라."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극단적이고 선명한 상황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마실 커피 타는 김에 팀원들 것도 몇 번 타 줬더니 이제는 커피 마시고 싶을 때마다 나를 찾는다." "집 가까운 곳에 협력 회사가 있어 퇴근길에 담당 직원 대신 서류를 몇 번 전달해줬더니 요즘에는 퇴근 시간쯤 되면 담당 직원이 말도 없이 내 책상 위에 서류를 놓아두더라." "집이 회사에서 멀어서 힘들어하길래 지각할 거 같다고 메시지 올 때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 이제는 메시지도 안 보내고 그냥 지각을 하더라." 정도를 떠나서 '호의를 권리로 안다'는 말로 설명되는 상황들이다.
아마 직장인들에게 사례를 들어달라고 하면 수 백, 수 천 가지의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베푼 작은 호의가 누군가에게 권리가 되고, 그 권리가 나의 의무로 되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사람 사이에는 너무 흔한 일이라 그런지 학문적 분석이나 해석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유념해야 할 것' 중에 하나로 통한다. 그리고 어렵고 긴 말 필요 없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문장 하나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명확히 말하면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워낙 그런 경험이 도처에 널려있다 보니 적어도 겪어본 사람들은 그 일반화에 동의를 하는 지경이다.
정말 권리라고 여길까?
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게 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된다. 호의는 받으면 고맙고 감사하고 때론 미안한 것일 뿐이다. 호의의 반복이 수혜자의 권리로 둔갑하는 데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논리적 필연성은커녕 개연성 조차도 없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을 해석할 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그런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교육을 받았고 세상은 그것을 장려한다. 이 부분이 해석의 발목을 잡는다. 해석을 시작할 때부터 논리나 이성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문장에서 '안다'라는 단어가 큰 몫을 한다.
호의를 권리로 둔갑시키는 사람들은 타인의 호의가 자신의 권리가 될 수 없음을 모를까? 그럴 리 없다. 직장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다면 그들도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타인의 호의와 자신의 권리 사이에는 논리적 필연성 따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에서 '안다'는 말은 잘못 쓰인 것이다. 호의를 권리로 둔갑시키는 사람들은 남이 베푼 호의가 자신의 권리라고 아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남도 그렇게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의 호의를 자신의 권리처럼 보이도록 하려는 것일까? 누굴 괴롭힌다거나 하는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유는 하나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몸의 편함, 정신적 안정, 금전적 이익, 명예의 획득, 우수한 평가 등등. 그 이득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자신이 얻을 이득을 최우선에 두고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불사하겠다고 다짐하면 타인의 호의를 나의 권리로 치환하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이 베푼 호의가 자신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염치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대가 반발을 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딱히 대꾸를 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놓고 너의 호의가 나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마치 당연한 일인 양 자연스럽게 호의를 요구한다. 본인은 타인의 호의가 자신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상대는 그렇게 알고 넘어가 주길 바라는 것이다.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이면 이득을 얻게 된다. 그리고 미안함이나 염치없음을 덜 느껴도 된다. 나의 권리 주장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의무로 인식하고 받아들인 일이니 말이다.
상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태도는 호의의 요구가 실패를 했을 때도 쓸모가 있다.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러는 것이라고 알았다며 발을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작은 사례들을 두고 보면 이렇다. 커피를 왜 타 줘야 하냐는 물음에는 타는 김에 같이 타 달라는 것이었지 시키는 게 아니었다고 넘기면 된다. 왜 서류를 담당자도 아닌 내가 전달해야 하냐고 물으면 퇴근하는 길에 잠깐 들리면 되는 일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왜 무단 지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별말이 없어서 그랬다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로 '남들이 여겨주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함부로 베풀지 말자
종합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남들 눈에, 특히 호의를 베푸는 당사자가 호의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호의를 자신의 권리라고 대놓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굴어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스스로 의무감을 갖게 되면 최고다. 그렇게 염치없고 약아빠진 수단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얻을 이득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호의를 권리인 줄 아는 사람은 이득은 얻고 싶은데 염치없어 보이거나 부끄럽기는 싫은 얌체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은 별다른 게 없다.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직장생활에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렵다. 글의 시작에서 얘기했던 사례처럼 아예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과의 관계라면 두 눈 질끈 감고 끊어버릴 수라도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사람과 그런 식으로 관계를 설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은 직장생활의 큰 불안요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호의를 권리로 아는 사람들은 얌체 중에서도 최악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직장생활이라는 환경을 교묘히 이용하니까 말이다.
현실의 직장생활에서 나의 호의를 나의 의무로 인식시키려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두 번 당하지 않는 것 말고는 없다. 한 번 당했다면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멀리하라. 그리고 호의를 베풀지 마라. 친절과 배려는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며 미안할 줄 아는 사람에게 베풀어야 빛이 나는 법이다. 아무 데서나, 아무에게나 박애정신을 발휘하면 좋은 먹잇감 되기 쉽다. 마음 편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라도 선별적으로 착해지자.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