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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아의루시 Apr 27. 2022

아이의 꿈에 설레는 건 아이의 몫이다.

엄마는 엄마의 꿈을 꾸자.

2달 전쯤 첫째가 발레학원을 다시 다니게 되었다. 코로나 직전 시작했다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만뒀는데 계속 더 배우고싶어했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지만 그만큼 싫증도 잘 내는 첫째아이가 비교적 오랫동안 재미있게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까지 연습을 챙겨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몸도 유연하고 폼도 그럴싸한 것이 제법 발레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발레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꾸준히 발레를 배워서 예술학교에 진학도 하고 발레를 전공해서 발레리나가 되면 어떨까?’ 무대에 선 아이를 떠올리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다 흠칫 놀랐다. 아이가 발레에 싫증을 내고 안 하겠다고 한다면 실망할 내 마음이 염려되었다. 어쩌면 나는 발레리나가 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설렌 게 아니라 ‘드디어 아이의 재능을 발견했구나’ 하는 안도감에 잠시 들떴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여러 가지 경험과 기회들을 제공하고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이 내 안에는 은연중에 ‘아이에게 세상에서 인정받는 재능이 있어야 할 텐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되도록 빨리 알아채서 무언가 되어야 할 텐데’라는 압박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발레에 흥미를 보이고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며 서둘러 아이의 재능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니 그런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래서 쉽게 아이의 꿈을 대신 꾸며 설레고 싶어 한다. 그리고는 부모역할 체크리스트가 있다면 분명히 존재할 ‘아이의 재능 발견하기’라는 항목에 줄을 쫙 긋고 성취감을 느끼려는 심산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위기의식마저 들었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 무언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은밀한 욕심, 그 모습에 ‘엄마 역할 제대로 했다’며 나의 지분도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 그 지분에서 내 자아를 찾으려 하는 어리석음…

이런 것들이 뒤섞여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자기 인생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내가 훔칠까 봐서였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나는 내 꿈에 설레기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하기로. 그러면 오히려 아이의 꿈을 바라보며 너그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꿈을 발견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멋지게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아이의 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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