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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아의루시 Apr 27. 2022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가?

김경림 작가님의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한 챕터의 제목에 눈길이 갔다. ‘좋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가 되자’

내용은 이랬다. 작가님이 어느 날 둘째 아이에게 자신이 좋은 엄마인 것 같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뭘 잘했기에 좋은 엄마냐라고 다시 물었을 때 아이가 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뭘 잘해서 좋은 엄마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좋아해서 좋은 엄마지. 엄마, ‘좋다’라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잖아. 그러니까 ‘좋은 엄마’라는 건 없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있는 거 아니겠어?”


책을 읽다가 갑자기 1년 전 반모임이 떠올랐다.


나는 첫째와 둘째 모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냈었다. 첫째는 3년 동안 다니고 졸업을 했고, 둘째는 2년을 다니다 이사를 하는 바람에 중간에 옮겼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한 달에 한 번, 선생님과 엄마나 아빠가 함께 모여 시간을 갖는다. 모임에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또 앞으로 한 달간은 어떻게 지낼지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집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도울 수 있는지도 고민한다. 자연스레 서로의 육아고민도 얘기하게 되고  아이 키우는 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은연중의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한다.

첫째가 졸업하고 둘째 반모임에만 참석하고 있는데, 우리아이 빼고는 다들 첫째 아이들이다. 내가 안 그럴 거라는 걸 나 스스로도 알지만 모임 전에는 그래도,  이미 다 겪은 척, 아는 척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이유는 모임에서 토로하는 고민들의 대부분이  내가 이미 해 봤던 것 들이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신경을 좀 써야

“아 그거~내가 그거 고민해봐서 아는데~"라고 말문을 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반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진짜 둘째에 대해 별로 걱정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밥을 잘 안 먹는다거나 떼가 심하다거나 잠투정을 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린다는 가 하는 행동 등등..


얘기를 하다 보면 둘째아이에게도 그런 상황들이 분명 있는데 내가 느끼는 염려의 수준은 비교하자면 민망할 정도로 가볍다. 그래서 할 말이 별로 없기도 하다. 나도 무슨 고민을 얘기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겨우 쥐어짜 내서 하나 얘기하는 날도 있다. 그날도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말을 해버렸다.

"아이는…잘 지내요~그냥 뭘 해도 웃기고 크게 지금 문제 되는 건 없어요~좋은 거 싫은 거 확실하고 자기가 원하는걸 잘 표현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니까 가끔 고집도 세게 부리고 자기가 생각한 순서대로 안 되면 막무가내이기는 하지만요ㅎㅎ"

그때 한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그렇게 떼쓰면 마음이 어때요?"

떼쓰면 어떻게 해요? 가 아니라 떼쓰면 어때요 라는 질문이 낯설어 잠시 고민을 하고 대답했다.

"사실 너무 좋아요. 그것마저도 좋아요"

대답을 하고 나서 나도 좀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파악한)둘째의 성격도,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나오는 과격하고 미숙한 행동들도 모두 사랑스럽고 좋았다.

내가 둘째 반모임에 그렇게 여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내 고민의 대부분이 거의 다 첫째에게 가 닿아있기 때문이다.

첫째아이 입장이라면 어쩌다 먼저 태어나서 걱정 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고 자라는지 억울할 일이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처음이니까.

반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까 내가 했던 대답에 꼬리를 물고 오는 다른 물음들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졌다.

첫째 생각이 많이 났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언니라는 이유로 첫째는 늘 나의 비장한 물음들 속에 존재했다.

너무 사랑만 했지,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즐거워해 주고 좋아해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둘째아이의 자기주장 확실한 성격을 좋아해서 그 기질 때문에 나오는 문제행동까지 예뻐 보인 반면,

첫째의 순한 기질로 인해 내가 분명 수월하게 키운 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순한 기질 때문에, 엄마로서 답답해 보이는 행동들을 둘째처럼 좋아해 주고 고마워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첫째에대한 나의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비장한 엄마 노릇보다는 아이를 좋아하고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육아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존재 자체로 즐거워하는 육아.

그것이 나의 육아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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