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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아의루시 Apr 29. 2022

외국어를 통해 즐기는 제2의 캐릭터

내가 영어공부를 좋아하는 이유

가끔 영어공부를 언제부터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중학교 때부터 영어라는 것을 배웠던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본격적으로 영어에 흥미를 갖게 된 건 고3 때인 것 같다.

고3이 되고 처음 봤던 모의고사에서 영어가 4등급인가 나왔는데 나름 열심히(솔직히 진짜 열심히)해서 수능 때는 문법 문제 1개 틀리고 다 맞았다. 수학처럼 나에게 좌절을 주지 않고, 공부하면 오른다는 효능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과목이라 그런지  그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도 취미로 영어를 공부한다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대학을 두 개나 졸업하고 취업하면서도 고3 때 공부했던 실력으로 근근이 버텼다.


그러다 아이 낳고 육아하면서 아이를 위한 것 말고 나를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시도했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 중의 하나가 영어공부이다.

유튜브나 어플 등 귀에 꼽고만 있어도 되는 여러 콘텐츠들이 엄청나게 생겨난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깨작깨작 티도 안 나게 공부를 지속하긴 하다가, 올해 제주에 1년 살기를 위해 이사를 오게 되면서 변화를 좀 주었다. 어차피 지금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볼 심산으로 일주일에 한 번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선 일주일에 두 번은 하고 싶었으나 그러자니 과외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한 번으로 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하지 않을 때보다는 진지하게, 선생님 눈치 봐서라도 좀 더 열심히 할 동기부여정도는 되겠다는 전략이었다.


어제가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었다.

수업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옮겨보자면,

질문지에 있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던 시간이었는데,


나에게 질문이 주어질 차례였고 질문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What are three things that make you sad these days?


 Um…The three things are..

Politicians,  Environmental destruction and Hormone


 ha ha ha

  

선생님은 나와 성별도 같고 나이대도 비슷하고 제주에 정착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공감대가 많다.

위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에도 격하게 공감하시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물론 내가 유창하게 프리토킹할 실력은 안 되지만 떠듬떠듬 얘기를 하면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나의 선생님은 잘 알아들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대화를 이끌어내신다.

내가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이유를 요새 들어 명확히 알게 됐는데,

그건 나에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언어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어민처럼 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간접성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든 문자가 나에게 오는 동안 언어적, 문화적 필터를 몇 번 거치면서 그 단어나 문장이 가지고 있는 의미 혹은 발화자의 의도나 감정이 희석되는 것이다.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그 언어에 담겨 표현되는 감정의 직접성이 긴장이나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반대로 모국어이지만  생각과 감정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모호하고 불충분한 표현으로 인해 답답할 때도 있다. (한국말도  못하는 건가..)


영어든 뭐든 다른 언어로 읽고 쓰고 말할 때에는, 물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못해서 오는 답답함은 있지만 오히려 모국어로 소통할 때 잘 느끼지 못했던 감정표현의 자유로움이라던지 좀 오글거리는 말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일 수도 있고, 무식해서 용감한 걸 수도 있고 언어에 민감한 내 성격상의 특성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영어를 공부하고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대화하며 외국어라는 간접적 언어체감을 이용하여 평소의 나였으면 하지 않을 표현도 막 하고 솔직한 대답도 서슴없이 하는 등 나름 부캐를 누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너무도 간접적인 이 정도의 실력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 안 좋아해도 되니까 할 수만 있다면 모국어처럼 하고 싶다ㅠㅠ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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