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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Oct 25. 2019

#12. 한계 따윈 없음 (Sin Límites)

열한 번째 날 : 벨로라도에서 산후안 데 오르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D+11 벨로라도(Belorado)에서 산후안 데 오르떼가 (San Juan de Ortega)까지 24km

 이른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약간의 야맹증이 있어 깜깜할 때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진 상태라 할 것도 없어서 그냥 박차고 나왔는데 그게 문제였다.

영혼 빠진 이른 새벽, 아무 생각 없이 길이 있길래 걸어 들어갔는데 그게 잘못된 길이었다. 나보다 더 훨씬 먼저 길을 나서서 한참을 깊숙이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영국 아저씨를 마주하는 바람에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왔다.  만약 그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주아주 먼길을 떠났을 것이다.  오던 길을 되돌아오는 동안 동이 텄고 여명에 길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샛길로 빠져야 제대로 된 카미노 길인데, 바닥의 노란 화살표를 못 보고 그냥 지나쳐 나온 게 이번 화근의 계기였나 보다. 

 제대로 길을 들어왔지만 처음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는 허탈감에 배가 다급하게 고파왔다.

처음 만난 마을,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인부 아저씨들에게 길을 물어 카페를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있었다. 아저씨들 말로는 금방 열릴 거라는 하길래 벤치에 앉아 한참을 졸며 기다렸지만 열릴 생각뿐 아니라 아예 인기척도 없었다.

 결국엔 다시 길을 떠나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야 제대로 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일정이 꼬인다.





 카페의 야외 테이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하나둘씩 아는 얼굴이 와서 합석을 하고는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첫끼니로 피자를 시켜 먹는 나에게 "아침부터 피자를 먹는 거야?"라며 한마디 거드는 바트에게 '너도 처묵어봐'라며 한점 떼어주었다.

카미노 길에서는 자꾸 묵직한 음식이 당긴다. 원래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도 별로 없고 아무거나 잘 먹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이 길에서는 유난히 심하게  잘 먹어서 탈이었다.  음식뿐이었겠는가?

 마시기도 엄청 마셨는데 와인 맥주 증류주 사이다 종류도 엄청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미노 후반에는 살이 빠졌다. 뭐 카미노가 끝난 후에는 다급하게 요요가 왔지만...


 카미노 길의 초반부가 지나니 이젠 익숙한 얼굴들과 엉키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이 길에서 내가 마음의 문을 별로 열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친근하게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은 변함이 없는 탓에 늘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일상이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순례자들 때문에 그 길고 지루한 길을 같이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였으니깐.... 







비야프란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에서 산후안 데 오르떼가까지 약 13킬로가 되는 작은 언덕의 숲 속 길을 지난다. 중간에 간이매점이 도네이션으로 열려있다고 했으나,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을 초입의 슈퍼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사고 출발했다. 언덕이라고 하지만 산에 가까운 고도였던 것 같다. 오르막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난이도가 심한 경사는 아주 짧게 있어서 땅만 보고 꾸준히 걷으면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다.  

 숲 속 길을 올라가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우버 택시 불러줘, 안 그러면 나 울 거야' 친구들은 내가 농담하는 것이라고 충분히 알아들었는데, 지나가는 다른 순례자가 그것을 심각하게 들었나 보다. 까미노 길 막판에 혼자 길을 걷고 있을 때 그 순례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분이 하는 말이 내가 카미노를 못 끝내줄 알았다고 하신다.  나는 그냥 엄살이고 응석이었는데, 듣는 이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걱정해줬다고 하니, 농담도 조심해야겠더라..

  숲 속 길 중간쯤 있는 간이매점이 다행히 문을 열러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것인데, 기부금을 내고 음식을 취하면 된다. 

간식은 가방에 있으니깐 여기선 간단히 캔맥주를 사 마셨다. 마을 간격이 13킬로라고 해도 숲 길이라 그런지 지루하지는 않다. 물론 오르막길이라 약간 힘들기는 하지만, 겁나 수다를 떨며 왔기에 재미난 길이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맥주 파워로 견뎌냈다.





그러고 나서, 도착한 산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

 원래 이날 나의 목적지는 5km 더 떨어진 아헤스(Agès)였으나 나를 붙잡는 이가 있어서 산후안에서 지내기로 했다. 슈퍼도 없고, 근처에 있는 거라곤 수도원을 개조한 알베르게, 성당 그리고 스낵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바(bar)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 지내기로 한 이유는 바로 카를로스(이하 '')때문.

 칼이 며칠부터 발목이 안 좋았는데, (그래서 중간에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한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이곳을 마지막으로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팜플로나에서부터 파스타도 나눠주고 와인도 나눠준 것을 시작으로 친해진 그가(난 먹을 거주는 사람에게 약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어찌 매정하게 떠날 수 있겠는가...

 을 비롯하여 다국적의 젊은 청년들이 뭉쳐 다녀서 우리는 그들을 칼의 그룹이라 불렀는데, 난 늘 그들에게 초대를 받았지만, 항상 거리를 유지했다. 뭉쳐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번 뭉치면 계속 끝까지 붙어 다닐 것 같아 어느 정도 간격을 둔 것이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같이 지내야 될 것 같아서 이곳에 짐을 풀고 그들과 어울리기로 했다.



 오후 반나절이 남은 시간, 동네 구경하나 하지 않고 이렇게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다.

바닥에 누워 햇살에 몸을 구우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은 아마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동네 구경을 하고 싶어도 어디 딱히 갈 데가 없는 그곳이라 뭔가 답답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카미노의 일부라 스스로를 달랬다.




얼마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8~10유로) 가격 대비 별로인 식사를 먹고 나서도 순례자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잠깐 동안 일기를 쓰겠다고 조금 글을 깔짝거려 봤으나, 옆에 앉아 고양이처럼 치대는 제이미 때문에 글 쓰는 것은 포기했다. 

 190cm 넘는 긴 몸뚱이를 접고는 내 옆에서 치대는 제이미에게 한글을 가르쳐줬다. 그런지 15분 만에 제이미는 핸드폰 자판으로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음과 모 음의 구조를 설명해주고  자모음에 각각  알파벳 발음을 달아주고는 퍼즐씩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갈쳐주니 금방 따라 했고 결국 핸드폰의 천지인 폰트로 자기 이름과 그의 여자 친구 이름을 써내는 데 성공했다. 

 이 친구가 천재인지, 내가 똑똑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한글은 진짜 과학적이라는 사실이다.



재이미가 썼음. 하트는 내가 도와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칼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해야겠다.

그는 나에게 카미노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준 친구이다. 실제로는 그가 아니고, 그가 보여준 동영상 한편이겠지만...

카미노가 처음이 아닌 그는 작년 가을에 이 길을 그의 친구인 후안올리버와 같이 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여준 동영상..


그들이 함께 걸으면서 만든 까미노의 여정이 담겨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viLh4MlZdI



후안올리버.

후안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시적으로 가사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응급처치로 깨어나긴 했지만, 그때부터 신체의 90% 이상은 더 이상 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그이지만 그의 곁에는 늘 그의 형 올리버가 있었다.

 올리버는 동생 때문에 알게 된 장애우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론세스바이야스에서 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동생과 함께 80km를 걸었다. 그들의 모토인 '한계 따윈 없음 (Sin Limites)'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정상인도 힘든 그 길은 휠체어를 타고 끌고, 친구와 가족들, 그리고 순례자들과 함께 완주를 한 것이다.

 휠체어에 타고 있다고 덜 어려운 것은 아니다. 곧게 포장이 되어있는 아스팔트 길도 힘들데, 울퉁불퉁 자갈길을 덜덜거리며 휠체어로 다닌다면 차가운 바퀴로 전해진 충격은 모르긴 몰라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장시간으로...

게다 오르막 내리막길은 여러 사람 도움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형 올리버가 짊어진 책임감은 아마도 물리적 무게의 수십 배로 무거웠으리라..

그렇게 한계를 뛰어넘어 800km 걸어온 그들의 까미노는 '마이웨이'음악과 함께 짧은 비디오 클립으로 만들었는데, 이 동영상은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전해준다.




내가 초반에 걸으면서 가졌던 까미노에 대한 불평불만들이 사라진 것도, 사실은 이 비디오의 영향이 크다. 그 영상을 본 이후로는 난 불평의 ㅂ자도 상기하지 않았으니깐...

발이 아파 엄살을 피우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더 큰 물집을 참고 견디며 걷는 이들을 만나거나 아님 후안올리버를 생각했다. 

그들도 하는데....

후안도 견뎌냈는데....

그리고 배낭도 무거운데 휠체어까지 끄는 올리버도 해냈는데...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


그 생각으로 불평불만을 걷어내고 덕분에 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겸허해지고 겸손해지는 방법을 그들에게 배운 것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후안과 올리버



http://olivertrip.com/camino-sin-limites/ (올리버의 블로그)



                        

다시 얘기는 에게로 돌아와서, 

'칼'을 처음 만난 팜플로나에서 그는 주저 없이 그의 가족사와 아픔 일수 있는 사생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놨다. 그래서인가 처음부터 가깝게 느껴졌던 그가 이곳 오르테가에서 멈출지도 모른다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일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거 같아?"

"모르겠어. 일단 오늘 자고 나서 상태를 봐야겠지"

"여기서 끝내면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볼까 하고. 어차피 카미노 끝내고 나서 자원봉사자로 알베르게에서 일하려고 했거든"

이것이  이날 우리가 나눈 많은 대화중의 일부이다. 

과연 칼은 다음날 계속 카미노를 했을까? 아님 그곳에 멈췄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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