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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Apr 16. 2020

#16. 고집과 아집 사이, 꼰대의 품격

열다섯 번째 날: 보아디야스 델 까미노에서 까리온까지 26km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보아디야스 델 까미노(Boadillas del Camino)에서 까리온(Carrión de los Condes)까지 26km


 지난밤, 내 옆 침대의 이태리 아재가 코를  심하게 고는 탓에 잠을 설쳤다. 옆 침대... 정말 말 그대로 옆 침대다. 손 한 뼘의 간격도 없이 바로 붙어있는 상태이니, 모르는 남녀가 붙어 자기에는 많이 어색한 간격이다. 순례길의 많은 알베르게가 그러하듯 남녀가 같이 자는 혼숙은 당연하거니와 좋은 공간에 많은 침대를 밀어 넣었기에 개인 공간이 협소하다 못해 없다. 


 내 이웃인 파울로는 한눈에 딱 봐도 헬스장의 단백질 보충제 광고의 모델 같은 몸을 가진 친구다. 여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남자들은 열광을 하는 그런 몸 말이다.  그의 갑빠가 내 브래지어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아주 건장한 오빠야다.
길에서 자주 보고 인사를 했지만 같이 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냥 보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같이 자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한눈에도 전문 코골이꾼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는 자다가 몸을 뒤척이다가 내 옆에 바싹 붙었고, 그것도 모질라서 내 얼굴에 그의 얼굴을 밀착시키고는 엄청난 크기의 데시벨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얼마나 컸는지,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느낄 정도였고 덕분에  잠이 깨버린 나는 약이 바짝 올랐다. 
잠을 깨어서 까칠해진 나는 나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팔을 때렸다.
'찰싹'
그의 팔이 단단한 근육질이라 내 손이 다 아프다... 동시에 찔금했다.
'이 오빠야가 깨면 어떡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굴어야겠다'
다행히 그는 깨지 않고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살짝 멀어졌다.

그리고 또 한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되었는데, 다음 만났을 때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내가 때렸는지 잘 모르는 눈치다. 어쩜 그의 부인에게 매일 밤 이리 당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미스타마을 직전에 볼 수 있는  운하



 새벽안개를 해치고 또 출동이다. 새벽어둠을 틈타 공복 걸음을 하겠다고 아침도 안 먹고 나왔는데, 길눈이 어두워서인지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야 까미노 길에 진입했다. 평소 길눈은 좋은 편인데, 불시에 찾아오는 이놈의 야맹증이 문제이다. 

달빛을 따라 다음 마을인 프로미스타(Frómista) 마을에 진입하는데 찻길 건너편에서 독일 숙녀분이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른 아침부터 뭔가 심각한 분위기라 귀찮긴 해도 길을 돌아 그분에게 다가갔다.
그분의 이야기인즉슨,  몸 상태가 안 좋아 큰 도시인  레온(Léon)까지 기차를 타고 가시겠다고... 이제 그만 걷는 것을 포기하겠다며  아쉬워했다. 
며칠 전부터 그녀를 보아왔는데 그녀의 걸음걸이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사태가 심각해 보일 정도로 위태위태했었다. 힘겨워 보이는 그분에게 안부를 물을 때마다 그녀는 괜찮다며 다독여왔었는데 이젠 한계에 봉착했나 보다.

"레온에 가서 푹 쉬어  완치하세요. 그리고 제가 레온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우리 같이 걸어요"
꼬옥 안아주면서 위로해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원통하고 스스로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으라...
그래도 때론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독일 숙녀분을 기차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 동행했던  미국 중년의 숙녀분이 자신의 첫 번째 카미노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2014년에 처음 여길 왔었어. 그때 나도 무릎이 너무 아파왔지. 그런데도 참았어. 고집스럽게 참았어. 얼마나 미련했던지. 카미노를 끝내긴 했지만 난 무릎 연골이 다 나가버린 거야. 3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하지 못해. 얼마나 어리석은 거야!! 까미노가 뭐라고. 그것을 끝내겠다고 스스로에게 미련한 고집을 피우고, 포기하는 것에 자괴감에 빠지고.. 카미노가 다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 부정적인 측면도 많아.. 이게 뭐라고  다들 이리 고생인지.... "

그러고 보면 순례자들은 고집과 아집의 경계라는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듯하다.  




좌. 산타마리아 혹은 블랑카성모 성당, 템플 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짐./  우. 사순절에만 마신다는 와인 칵테일


 프로미스타의 한 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ón de los Condes)의 전 마을인 비얄카르사르 데 시르가(Villalcázar de Sirga)에서  관광도 할 겸, 또 요기를 하려고 카페를 찾았다. 이젠 거의 마을마다  바에 들른다. 하루 5끼를 먹는다는 스페인식 삶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고, 그중 4끼는 반주가 들어간다. 


  그 카페의 노천에는 미리와 앉아있던 두 한국 여자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아는 얼굴이다. 
바로 상희 씨... 론세스바이에스에서 보고는 아주 오래간만에 그녀와 다시 만났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아주 다급하게 브리핑했고,  까리온에 도착하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내가 먼저 길을 나섰다.

 물론, 잠시나마 비얄카르사르 데 시르가 마을도 옹골차게 구경했다.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에는 도처에 성 야곱의 동상들이 여기저기 포진해있다.


빈센또


 술기운을 빌려, 까리온까지 남은 기간 폭풍 질주를 하였다. 이렇게 빨리 걸어본 게 몇 번 안 되지만, 여하튼 난 폭풍 걸음을 하였다.
이때 난, 발렌시아에서 온 3명의 빈센또들과 같이 걸었는데(셋다 이름이 빈센또,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친구), 9살 정도로 보이는 애기 빈센또가 어찌나 귀엽게도 쫑알쫑알 말이 많던지, 
나와 똑같이 걸으면서 말은 계속하는데, 아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마구 넘쳐난다.
게다가 설명도 어찌나 잘해주던지 만약 이 친구와 까미노를 다녔다면 난 스페인어 리스닝은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폭풍 걸음으로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 나지막한 건물 때문인지,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인지 동네가 참 마음에 든다.
오늘은 사순절 주간의 금요일.
바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이 날을 기리기 위해 동네는 행렬 준비로 분주했고 덕분에 문을 연 슈퍼마켓이 없었다. 내일은 카미노 프랑스길의 악명 높은 마의 구간을 걸어갈 텐데, 그것에 대비하려 음식을 구입해야 할 텐데, 난처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니 다행히 문을 연 슈퍼가 하나 있다길래 그곳에 가는 길이였다.
귀염둥이 삼인방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옆에 한국 할머니가 한분 계셔서 인사를 드렸다.
나보고 어디 가냐는 말에 '슈퍼'라고 대답하니, 할머니께서 바로 나를 따라나서셨다. 

할머니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
"근데, 배가 왜 이래?"
"네??"
"배가 왜 이러냐고, 매일 밤마다 술 마시지?"
"네??"

보통, 사람이 처음 만나면 '이름이 뭐냐', '어디 사냐', '까미노는 어떻냐'라는 인사말이 오고 갈 텐데, 이 할머니는 그런 거 다 생략하고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권투로 치면 글러브도 끼기 전에 어퍼컷이 들어온 셈이다. 
실로 연예기사 밑에 딸린  인신공격성 댓글에서나 보아온 그 팩트 공격을 내가 실사판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자가 배가 그리 나와서 어떻게.. 매일 밤 술 마시지??  술 좀 그만 마셔"

띠로리~~
아~ 정신이 혼미하다....
예전엔 모르는 어르신이 나에게 함부로 말할 때는 정말이지 아무 말도 댓 구를 못했다. 순둥이 같은 성격도 한 몫했고, 어른들에게 말대답하면 안 된다는 유교식 교육 관습 때문이었기도 했으며,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아무 말하지 말자'라는 참을성 때문에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냥 흘렀다.

그런데 지금, 아주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쭉빵을 날리는 소리에 나도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다. 예전의 순둥이였던 나도 나이가 드니 우악스럽게 변하나 보다. 
"아니, 할머니. 무슨 말씀을 그리 심하게 하세요? 너무 초면에 실례가 되는 말씀 아니세요?"
"어머, 그랬어? 그랬으면 미안. 난 몸매에 전혀 신경 안 쓰는  줄도 모르고...."

아~~~~!!!
내가 상대할 상대가 아니다. 
내가 몸매에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사람의 체형 가지고 처음부터 인신공격하는 것에 무신경한 사람이다 

몸을 돌려 다급한 발걸음으로 슈퍼를 향했다. 말로 생채기를 준 할머니도 나를 다급하게 따라왔으나 내가 여기저기 골목을 헤매느라 어느 순간 그 할머니는 사라졌다.
이것저것 오지랖 떠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명절날 친척들도 안 만난 지 오래인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얼마 뒤 알베르게 앞에서 또 다른 한국인 어르신들을 만났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초면이지만 일단 이국땅에서 만난 같은 순례자 어르신들이길래 "안녕하세요?"하고 꾸벅 인사를 드리니 바로 한소리가 나온다.

"조금 있으면 발에 까만 매니큐어 칠하겠어!"
"네?"
"발에 까만 매니큐어 칠하겠다고?"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신 건가?? 왜 초면에 다들 나에게 어깃장을 놓는 거지?'
게다 지금 매니큐어를 바르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데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발 말이야, 심하면 발톱이 죽어서 시커멓게 변한다고"
"아아~, 네"

그분들 딴에는 내 너덜너덜해진 발을 보고 하시는 걱정의 말이었지만 초면에  만난 사람한테 하는 말씀하시는 말투 치고는 너무 거칠었기에 불쾌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쩜 바로 이전 그 할머니 때문에 내가 벌써 색안경을 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봐줄게, 이리 와 봐요"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리 와 보래도, 약 다 있어"
"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 만났어요"
"아, 이리 와 보래도, 약 다 있다니깐!"
"괜찮다니깐요, 여기 스페인 의사 선생님 만나고, 약사분들도 다 만났어요. 약도 많아요"
마지막 대답은 나도 앙칼지게 나왔다.

그분들 입장에서 걱정의 조언이, 나에게 오지랖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또한 왜 같은 말을 좋게 하실 수도 있는데, 어깃장을 놓고 비꼬는 말투를 탑재하신 채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할머니 포함에서 그 어르신들은 단체로 오신 순례자이었으며 그 그룹 안에서도 문제가 많았고, 다른 한국인 순례자들과도 불화가 많았다고 했다.
게다 어르신들이 막무가내로 행동하셔서 피해를 입는 순례자들의 불만도 많았다고 했다.

며칠 전 까미노를 여러 차례 하신 한국 어르신 한분과  한국 청년들과 함께 바에서 동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우리들한테 꽤 길게 일장연설을 하셨고, 우리는 그냥 듣기만 했다.

그러는 중 내가 까미노 안내 종이를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처음 까미노를 시작할 때 순례자 사무실에서 A4용지에 고도와 마을 거리와 함께 알베르게 리스트가 쓰인 종이를 나눠줬고, 그 종이가 내가 가진 유일한 까미노 가이드였다.)
"그거 한번 줘봐"
어르신은 종이를 건네받고는
"내가 지난번에도 미국애들이 한숨을 쉬면서 이것을 들어다 보길래 내가 찢어버렸지. 이거 들어다 보면 뭐해, 길은 그냥 가면 되지"
하면서 내 종이를 반으로 찢으시려고 하신다.
"왜, 이러세요!"
다급하게 내가 말렸기에 어르신의 손동작은 그대로 멈췄지만, 진짜로 찢으시려고 한 건지 찢는 제스처를 하신 건지 잘 모르겠다. 


난 사람이 경험이 많으면 철학도 생기고 시야도 넓어질 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 보다.
전해진 얘기에 따르면 수차례 까미노를 걸으신 그분 역시 다른 한국 청년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남발하셨는데.
"젊은 사람이 왜 이리 못 걸어, 늙은 나보다 느려 터지면 어떡할 거냐" 같은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분만큼 경험이 많은 스페인 어르신 순례자분들이 
"차근 차근해, 그냥 쪼금씩 하면 언젠가 도착하는 거지"라고 하는 말씀과 아주 상반되는 내용이다.

일명, 꼰대. 
어르신을 가르치는 은어지만, 보통은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고, 어린 상대를 자신의 고집의 틀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모든 일에 우대받으려 하며, 나이로 갑질을 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 분들이 주위에도 넘쳐나는 것도 모자라, 신성하다는 까미노 순례길에서도 마주한다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물론 어린 꼰대들도 있다.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은 아주 잘 걸었고, 빨리 걸었으며, 장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한국 청년들에게 
"그것밖에 못 걸으세요?", "너무 느린 거 아녀요?" 라며 비아냥 거리고 다녔기에 여기저기에서 그들에 대한 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어르신들이 전부 다 그러하지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나본 한국인 어르신 순례자분들은 대부분 젠틀하시고,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를 낮게 취급하지 않으셨으며, 매너를 온몸에 지니신 분들이 많았다.
일부의 어르신들 때문에 그런 젠틀하신 어르신을 포함해서 모든 분들이 꼰대로 매도된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 일부의 꼰대들 때문에 세대 간의 단절이 온다면 그것도 반성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안타깝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칭찬이나 응원을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어려운 시대, 어렵던 세상, 격동의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사회의 질책을 받고 스스로의 채찍질로 살아오신 분들이다. 
제대로 칭찬받은 적이 없이 때문에 상대를 칭찬해주는 말도 어렵고, 어린 상대는 무조건 가르쳐줘야 한다는 압박 관념이 팽배하다.
그래서 세대 간에 대화에 서투르며 그 서투름에 꼰대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내 친구들과도 이야기하는 토픽 중에 하나인데
우리 부모가 자식이 어디 가서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이젠  우리가  부모가 어디 가서 꼰대라고 욕먹을까 봐 걱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젠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허긴 이렇게 지껄이는 나도 어디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꼰대 짓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의 꼬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출하지만 풍성한 저녁




까리온에 도착해서 문자를 받았다. 안드레하비가 나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었고, 나는 '산타마리아'라고 대답하니 자기들도 산타마리아에 있다는 것이다. 
"안보이던데? 산타마리아 맞아?"

산타마리아 알베르게는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알베르게인데, 저녁이면 다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수녀님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곳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오늘은 사순절 행사로 인해 수녀님들의 행사는 취소가 되었다고 했다. 
"응, 우리들 산타마리아에 있어!"
"알았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나,
'알게 뭐냐, 여기  알베르게에서 못 보면 나중에 밖에서 보거나 다음 마을에서 보겠지'라는 심정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마주쳤다.
그들이 지내는 숙소는 '산타클라라'
 클라라인지 마리아인지 나만 헷갈려하는 줄 알았는데 다들 똑같이 헷갈리구나

하비안드레에게  스페인 요리 감자또르띠아를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기로 했고, 난 구경하며 얻어먹기로 했다. 그리하여 난 산타 클라라 알베르게에 방문해서 또 입만 축내는 빈대 짓을 했다. 
물론 하비가 좋아하는 샐러드와 와인을 사 갔지만..... 


 식사를 끝내고는 사순절 행렬을 구경하러 나왔다. 고난을 받으시다 돌아가신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거였는데 , 화려한 장식과 의상과는 달리 경건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어 낯설면서도 신비한 경험이었다. 종교 하나로 마을을 단합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축제를 잔뜩 즐기고는 숙소로 돌아오니, 상희 씨와 다른 한국인 처자들이 있다. 
그중에 아까 낮에 바에서 봤던 그 처자도 있다. 근데 이 처자 보통내기가 아니다. 다른 순례자의 발에 난 고름을 다 짜주고 치료해주고 있다. 이런 천사를 봤나. 얼굴도 이쁜데, 마음은 더 곱다.
그리고 상희 씨.... 아놔 내일 대장정을 위해 자야 하는데, 둘이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뭐 여럿이 쓰는 공공장소인지라 개인적인 공간이 화장실밖에 없기에 한 선택이지만  화장실에서 이리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니 꼭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내일 대장정을 위해서는 일찍 잤어야 했는데, 상희 씨의 까미노에서 스페인 남자와 썸을 탔다는 쫄깃쫄깃한 이야기에 혹해서 열심히 들어주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 피로감의 여파가 다음 날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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