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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07. 2021

#21. 나눔의 진정한 의미

스무번째 날 : 아스토르가(Astorga)까지 13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산티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Santibáñez de Valdeiglesias)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지 13km



 산티바녜스마을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의 조악한 이층침대에서 아주 꿀잠을 잤다.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기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6시에 눈이 떠졌지만 이 조용한 공기를 더욱 즐기고 싶어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8시가 넘어서야 꼼지락거리며 일어나 출동 준비를 마쳤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나를 제외한 이곳 유일한 순례자인 몬티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지 그는 내가 출동한다고 인사를 건넬 때에도 침대에 누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누런 흙밭에 만들어진 비포장도로를 걸어 나갔다. 매번 새벽녘에 나와서 밝아지는 등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즐겼는데, 늦장을 부려서인가 벌써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지난밤 전전 마을에서 숙박을 했던 순례자들과 재회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지들이 반겨주고 음메 하고 목청 높여 양들이 노래하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들판과 갈색 먼지가 폴폴 풍기는 비포장도로만 있는 길에 들어섰다. 어제  8km 가까이 되는 이런 텅 빈 길을 걸어가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포기했던 그 길이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그 길고 지루한 그 길을 한참 걷다 보니 한가운데 작은 쉼터가 보였다. 이렇게 쉼터가 있는 줄 알았다면, 어제 지나왔어도 좋았을 것을.... 좀 아쉬운 대목이다.
 도네이션(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의 이름은 신들의 집(La Casa de Los Dios),  그리고 이곳의  주인 이름은  다비드 (David).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알베르게도 그렇지만 중간중간 매점도 기부금 형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약간의 성의를 지불하고 숙식 혹은 음식을 제공받는 방식인데 이곳도 그런 곳이었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때, 텐트를 걷고 정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헝가리 인과 잘생긴 프랑스 청년이었는데 그들은 어젯밤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그들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난 공복 상태라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커피와 쿠키를 먹었다.   그러고는 낮잠을 잤다. 지난밤 그렇게 숙면을 쉬했는데도 졸린 걸 보니 쌓인 피로가 만만치 않나 보다. 아님 많이 잤기에 더 졸긴 건지도 모르겠다. 왜 많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마음처럼 말이다.

 아주 짧은 시간 낮잠을 자고 나서, 다비드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칫 잘못하면  노숙자로 보이는 그는 7년 전부터 이곳에서 지낸다고 한다.  한때는 물욕에 젖었으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지금 순례자를 위해 이곳을 운영한다고 했다. 아들을 보러 바르셀로나에 가는 것 이외에는 계속 이곳을 지키며 순례자과 교감하는 것이 제일 큰 낙이라고 했다. 
휴식을 취할 때마다 난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데, 나의 터진 왼발을 보고는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남의 더러운 발을 만져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그는 내 발을 만져보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었다.

다른 순례자들이 밀어닥쳐 그가 분주해진 틈을 타, 난 그 잘생긴 프랑스 청년과 이야기했다. 그는 순례길에서 강도를 만난 돈도 뺏기고 핸드폰도 뺏겨 난처한 상태라고 했다. 순례길에 강도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당한 사람은 처음 만나본다. 강도가 있다고 해서 순례길이 위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강도 비슷한 것을  한국의 내 집 앞에서도 당해봤기에 그냥 운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청년과 헝가리 청년이 출동 준비를 끝냈을 때, 다비드가 그의 자선 모금함을 열더니 거기 있는 동전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는 반을 쪼개서 헝가리 청년과 프랑스 청년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포옹으로 그들에게 이별 인사를 했다. 모르긴 몰라도 헝가리 청년도 나름 난처한 처지에 놓였나 보다. 
그 자리에 나만 있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운 순간이다. 다비드의 선한 행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어야 했는데...
자선과 나눔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는 다비드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 전 해외 뉴스에서 한 노숙자가 자기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도와줬다는 기사가 생각이 난다. 참된 나눔이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못 가져도 서로의 나눔으로써 기쁨을 공유하는 것인데, 그런 장면을 뉴스나 텔레비전이 아닌 실제로 목격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뭉클해져 온다.



 출동 준비를 하려고 신발을 신고 있는데, 하비와 안드레가 다가왔다. 이 아재들의 인연도 꽤 질기구나.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한 후 나 먼저 천천히 출발했다. 그들이 이 쉼터에서 잠시 쉬고 오겠지만 걸음이 빠른 그들한테 난 금방 따라 잡힐게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왼쪽 초록색 옷이 다비드



마을 초입 십자가상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킹을 하시는데 순례자 찬가이다.


 다음 마을인 산후스토데라베 입구의 한 코너에  위치한 오아시스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난 하비와 안드레에 잡혀 들어갔다. 바에 앉아서 이 두 아재들과도 수다를 떨었지만 이곳 주인과도 수다를 떨었다.


곰살맞은 주인아저씨의  뒤로 그분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한 분이 대형 또르띠아(주로 감자가 들어간 계란 오믈렛)를 들고 나오셨다. 내가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깜짝 놀라니 할아버지는 흥이 났는지 이것저것 설명해주신다.


47개의 달걀과 4킬로그램의 감자를 넣고 만들었다면서 프라이팬까지 들고 나와 시범을 보이시는데 어찌나 귀여우신지... 카미노길에서 제일 맛있는 토르티야라고 큰 소리를 뻥뻥 치셨지만 불행히도 못 먹어 보았다.





카페에서 휴식 후 다음 마을인 아스트로가까지 이 두 아재들과 같이 걸어왔다. 나도 그렇지만 두 아재들들 흥이 많아  마치 우린 10대로 돌아간 거 마냥 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쾌하게 걸었다. 내 아이팟에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앨범과 그 멤버 중의 한 명인 루벤 곤살레스 앨범이 있어서 그 음악을 틀고는 경쾌한 쿠바 리듬에 아재들과 발걸음을 맞추었다.
아까 카페에서 아재들이 언제 한국 음식을 해줄 꺼내고 협박과 윽박이 오고 갔고, 난 약속한 바가 있기에 억지춘향으로 아스트로가에서 같이 지내면서 한국요리를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여태 술이며 음식이며  아재들에게 받은 게 많기에 빚 갚은 심정이었고, 또한 이 아재들과 언제 또 헤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엇갈려서 못 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산티아고 끝까지 같이 했지만...)

약속은 약속인 관계로 그렇게 해서 난 오늘 겨우 13km만 걸었다. 이렇게 휴식하는 날도 있어야 된다고 위로를 했지만 죄책감이라던가 많이 못 걸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




초콜릿으로 유명한 아스토르가
아스토르가 대성당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 숙소를 잡고는 아재들과 독일 처자 까미와 함께 동네 탐정놀이를 나왔다. 

 아스토르가 구석구석 돌아보는 시간.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건물들이 가득하고, 로마군의 정복 시기에 활발히 개발되었던 채광,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정복 시기에 멕시코에서 가져와 이곳에서 번성되었던 카카오 등 사연을 가진 지난 역사의 시간들이 뒤엉켜 무수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아스토르가는 내가 까미노 길에서 맘에 들어하는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성당 앞에서 마늘향이 담뿍 배인 감자칩이랑 오이지를 먹는 이유는 뭐냐??

 동네 탐정놀이를 끝내고는 슈퍼에서 장을 보는데, 볼일을 먼저 끝낸 나와 까미는 두 아재들은 여전히  쇼핑 삼매경이었고 따라서 우린 꽤 길게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까미야, 뭔가 성별이 바뀐 것 같지 않니?"
"ㅋㅋ 정말, 그러네"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는 아내 들를 기다리는 남편들처럼 쇼핑과 수다도 늦장을 부리는 두 아재를 기다리는 우리 모양이 뭔가 성별이 바뀐 모양새이다.

 시에스타임에도 문이 열려있는 바를 찾아 와인을 마시는 시간. 난 가급적이면 그 지역 와인을 마시려고 하는데,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서 결국 이름으로 골랐다. '순례자'라는 이름의 와인.
그리고 다른 와인도 마셨는데 그것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이곳도 와인을 시키면 타파스를 공짜로 주는데, 채식주의자인 까미 덕분에 햄이 고기완자를 내가 두 개나 먹어치웠다.  그리곤 이것저것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뭔 얘길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마누라랑, 여자 친구랑, 내연의 여자 3명을 모두 데리고 온다면 저녁은 공짜라는 광고. ㅋㅋ


순례자라는 이름의 와인이 있길래 당첨!!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하루가 너~무 길다.

낮에 그리 팽팽 놀았는데도 아직 6시가 안되었다.

 부엌이 더 붐비기 전에 약속대로 한국 음식을 해주기로 했는데, 벌써 주방은 부지런한 한국인들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내가 이뻐라 하는 귀염둥이 3인방도 있었다. 불과 며칠 만인데도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내가 장거리로 치고 나왔기에 다신 못 볼 줄 알았는데, 오늘 게으름을 피운 탓에 이렇게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파무침에 삼겹살을 만들었고, 다른 한국 모녀는 이름 모를 생선요리, 또 다른 한국 처자는 스테이크. 그 영세한 알베르게의 주방에서는 그렇게 한식대첩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나도 그곳에 한몫 거들었다.

 내가 하비 안드레를 위해 준비한 요리는 갈비.

아스토르가 슈퍼에서 발견한 것은 간장 뿐이었고, 그것으로 요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은 갈비이다.

여행 나올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갈비뿐이라 난 갈비 만드는데 아주 능수능란하다. 정확히는 갈비소스를 만드는 것이지만.

 갈비를 재고, 양파 초무침을 만들고, 오렌지 즙과 설탕을 졸여 만든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 가방에 넣어두었던 가쓰오부시와 가다랑어 포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야끼소바, 그리고 딸기와 설탕을 재어 만든 후식 와인까지.

 5가지 요리를 난 한 시간 안에 만들어 내었고, 그 많은 것을 일사천리로 만들어 낸 나 자신이 은근 자랑스러웠다. 

아재들도 오래간만에 먹어본 특별식에 아주 뿌듯해했는데, 그 와중에 안드레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주 좋아. 다음엔 더 잘 해낼 수 있을 테니, 내일도 부탁해"

"이게, 니들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요리야!"

 나의 몸뚱이에 게으름이 창궐하고 있으니 다시는 요리 따위는 안 할 것이다.

그래도 마음은 아재들이 잘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도 밖이 환하고 체력이 남아돌아 또 셋이서 마실을 나갔다. 광장에 있는 야외 바에 앉아 오후로, 맥주, 와인 등 종류별로 다양한 술을 마시며 셋이서 꽤 무게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추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라 글로 남기는 것은 사양하겠다.

그렇지만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너무나 고맙고도 뜻깊은 시간이었다는 것은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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