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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16. 2021

#29. 마지막 질주

스물여덟 번째날 : 몬테 데 고소까지 47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멜리데(Melide)에서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 Monte Do Gozo)까지 47km


 
새벽같이 일어나 출동 준비를 하고 등산화의 신발 끈을 매고 있었을 때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여수가 나를 발견하고 묻는다.
"오늘 어디까지 가는지 결정했어?"
"일단 산티아고 직전의 마을인 몬테 데 고소 Monte De Gozo."
스페인어로는 몬테 데 고소 Monte De Gozo이지만 갈리시아어로는 Monte Do Gozo. 갈리시아어는 포르투갈과 인접해서인지 포르투갈어와 많이 닮아 있다.

몬테 더 고소까지는 47km의 긴 거리다. 일단 그 기록을 깨트리고 싶어서 오늘의 목표를 거기까지 잡았다. 산드라가 지난날 그랬던 것처럼 한방에 산티아고를 갈까 했지만 일단 목표한 바를 이루고 몸 상태를 봐서 생각해봐야겠다.
"그럼 내일 11시 반에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보자, 부엔 까미노"

우린 어찌 되었든 오늘 아니면 내일 금요일에 산티아고로 입성할 것이고, 매일 정오에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가하기 위해 11시 반에 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Cabeceiro: 갈리시아의 전통적인 창고 구조물. 식량을 담는다고 한다.




아직은 어두운 길을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어갔다.
긴 거리를 걸어보겠다고 의욕이 충천해서 길을 나섰지만 생살이 터진 왼발이 삐거덕삐거덕한다.
정말이지 잘라내고 싶은 새끼발가락이다. 그 작은 새끼발가락이 평소에는 그리 존재감이 없더니만, 순례길 내내 말썽을 부렸다.

지하철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학문(ㅋ)에 몰입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문구이다.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조약돌이다.
그 돌을 밟고 넘어서라,
그러면 산을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유명한 '셜록 홈스'의 작가 '코난 도일'이 한 말이다.
나를 CCTV로 관찰한 듯 딱 맞는 말을 했다. 순례길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 존재감 없던 작고 작은 새끼발가락이었으니깐..
그 작고 작은 미천한 새끼발가락 때문에 난 순례길 내내 난 고통을 감내하며 다녀야만 했다.






이 순례길은, 그리고 이번 여행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아니 터닝포인트로 만들고 싶었다. 20대도 그렇고 30대에도 그렇고 40대가 되어서도 그렇고 아마 50대가 되어서 늘 하게 될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뭐 해 먹고살 것인가!'이다  길고 긴 시간 같은 직종에서 일했던 나는 이직을 생각하고 싶었고 늦은 나이지만 (혹은 그리 늦은 나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시점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처음 하는 일이고, 인맥도 없고, 누구의 조언도 도움도 없는 맨바닥에 헤딩하는 일이라 생각할, 그리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이 시점에 순례길을 오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걷다 보니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할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잡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십 대 시절, 주머니의 돈은 없었지만 감성만큼은 충만했던 시절.
어른이 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설이 소록소록 생각의 틈에 비집고 올라왔다.
핸드폰도 아니고, MP3도 아니고 워커맨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
친구와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는 워커 맨 하나를 가지고 영동대교와 성수대교를 걸어서 넘나들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한쪽씩 이어폰을 나눠 끼고는 친구와 함께 그 강북과 강남을 오가며 아주 길게 걸어 다녔다. 삼성동의 빌딩 숲에서 밤바람을 쐐기도 하고 건대 입구나 한양대의 번화한 술집 거리를 오고 가면서 말이다.
그때도 이때와 같이 엄청 걸어 다녔었는데..... 그때의 그 걸음이 순례길 내내 생각이 났다.




 기나긴 길을 걸어 다녀서 그런지 남겨진 사진이 없다. 아예 사진조차 찍을 생각을 안 했나 보다.
오늘은 평소에 그리 마셔대던 술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오늘 밤인지 내일 아침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곧 도착할 산티아고를 위해 오늘 하루는 그리고 산티아고 도착할 때까지만 금주하기로 했다.

내 신앙이 기독교라고 하지만 사실 무교에 가깝다.
이슬람교도 좋아하고 불교도 좋아하고 천주교도 좋아한다.
엄마가 교회를 다녔기에 모태신앙이라고 하지만 난 어느 종교에도 소속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어떤 종교든 다 존중한다.
내 기준에 종교라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을 향한 매개체라 여기며 종교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영혼을 평온히 달랠 수만 있다면 사이비 종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단, 삶을 좀먹고, 정신을 피폐하게 하며, 나아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를 도착하여 드리는 미사는 내가 난생처음으로 드리는 가톨릭 행사이기 때문에 경건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치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를 위해 금주를 하기로 했다.

순례길에서 와인을 그리고 맥주를 물처럼 마셔댔지만 오늘만큼은 금주를 하며 경건하게 지내기로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평소 알코올로 인해 둔감해졌던 발가락의 고통이 오늘 유난히 심하게 느껴진다.




오후가 되니 순례자들이 걸음을 멈추어서 그런지 늦은 오후부터는 순례자를 보기 힘들어졌다. 순례자를 만나더라도 처음부터 인사를 나누고 돌림 노래하듯 인사를 주고받기가 싫어 가급적이면 피해 다녔다.
그렇게 긴긴 시간을 걸어 마을의 한 모퉁이 손님이 아무도 없는 식당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때였다.
식당 입구의 아는 얼굴이 들어온다.
나의 하비 아재였다. 이런 깡 시골의 으슥한 카페에서까지 다시 만나다니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는 지난 시간을 서로 따라잡았다.
스페인 사람이나 지금은 호주에 살며 호주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하비.
십 대의 딸의 키우고 있는 하비안드레와 함께 나의 까미노 단짝이다.
까미노 초반의 도시  팜플로나에서 나는 샐러드가 너무 많아 남아 옆의 순례자와 나누었는데 그게 하비였다. 난 안드레와도 친하게 지내고 하비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서로 각자가 온 까미노 길 어느 순간부터 안드레하비가 절친처럼 딱 붙어 지냈다.
 늦둥이인 안드레는 그의 형제와 나이 차이가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50대인 하비와도 교감이 좋았다.
매번 내가 서로에게 '니 마누라 어디 갔냐고'할 정도로 딱 붙어 지냈는데, 오늘 안드레가 보이지 않는다.

"안드레는?"
"오늘 산티아고에 입성하겠다고 먼저 갔어. 난 옛 친구가 멜리데로 나를 보러 와서 지난밤엔 그 친구라 노느라고 일정이 좀 늦어졌고..."
"뭐? 지금 산티아고로 갔다고?"
"응. 너는 어쩔 거야?"
"글쎄.."
몬테두고조까지는 앞으로 5km, 산티아고까지는 10km만 더 가면 된다. 부지런히 걷는다면 오늘 안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그렇지만 뭔가 이렇게 조급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음... 난 오늘  몬테 두 고소까지만 갈래, 산티아고는 내일 아침에 입성할래, 대신 오늘은 몬테 두 고소에 있는 호텔에서 지낼 거야, 알베르게는 이제 싫어"
"거기에 알베르게가 있어?"
"응."
"그럼 나도 거기까지 갈래"
그래서 우리는 긴 토론 끝에 오늘의 목적지를 산티아고가 아닌 몬테두고조로 잡았다.

길은 꽤 길고 지루했다. 포장도로도 지나고 산티아고 공항을 둘러 걸어왔는데, 5km 남았다는 주민들의 말과는 달리 아주아주 긴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하비와 같이 걸으면 난 하비에게 고백을 했다.

"하비야, 고마워"
"뭐가?"
"너의 소년의 모습을 나한테 보여줘서, 넌 다름 사람과 있을 때면 늘 교수의 근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나한테는 늘 개구쟁이 모습을 보여줬잖아, 그게 너무 고마워"
진짜로 그러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교수인 그는 늘 타인에게 근엄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와 있을 때만큼은 마치 십 대 소년처럼 행동하였다.

난 한국 사회에서 제일 빨리 없어져야 할 문화가 바로 나이로 서열을 가리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단지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을 잡고, 우선순위에 서있기만 하는 것이 다라서 오히려 젊은 감각을 잊어버리는 풍토야말로 하루빨리 척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아주 오랫동안 인이 박혀 꼰데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 문화,  오죽하면 한국 사람들이 불리한 위치에 몰리면 "너 몇 살이야?"라는 말로 반박을 할까! 나이 운운하느라 있지도 않은 책임감을 짜내는 통에 정작 젊은이들과 친구를 맺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 그 전통은 하루빨리 가져다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본능적으로 혹은 사회적인 풍토로 나이로 서열을 메기고 있지만 말이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하비는 내가 그냥 아는 아저씨로 생각하겠지만 나이를 따지는 풍토가 아닌 외국에서는 하비도 나와 동등한 친구이다. 어쩜 그래서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엄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풀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지체가 되었지만 난 하비에게 나의 진심을 충분히 전달했다. 교수 하비의 근엄한 모습이 아닌 소년 하비의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쑥스러워 빙그레 웃는 하비와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는 헤어졌다.
걸음이 빠른 그가 걸음이 한참 느려진 나를 기다리는데 인내심의 바닥이 들어 날까 봐 그보고 먼저 가라고 등 떠밀었던 것이다.




하비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 오래오래 걸었다. 5km 남았다는 말은 개뻥처럼 들렸고, 가는 길이 하도 멀고 지루해서 히치하이크를 할뻔했지만 꾹 참고 긴 시간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 드디어 몬데 두 고소 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구글맵을 들여다보니 '파울루 코엘류 거리'도  공립 알베르게도 있었지만 난 근처 한 호텔에 거금 40유로를 내고는 몸을 뉘었다.
포송포송한 침구류와 바짝 마른 두툼한 타월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반겨주는 호텔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지지듯이 샤워를 하고는 정갈하게 짐을 다시 꾸렸다.
내일은 드디어 산티아고 입성이고 5km만 걸어가면 끝이다.
나의 신성한 산티아고를 위해 몸과 마음의 청결하기 위해 까미노 순례길의 마지막 밤을 비장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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