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규 Dec 11. 2018

인간, 그 존엄함에 대하여

검사실을 찾는 피해자들 이야기

11:00


오늘의 첫 번째 피해자가 들어왔다.


100킬로는 거뜬히 넘길 것 같은 큰 체구를 가진 그는, 내 좁은 사무실이 마치 광활한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신이 공항 수하물 처리 직원이라고 했다. 창고에서 밤새 10시간 동안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이 그의 주 업무이며, 주로 야간 근무를 맡는다고 했다. 수하물 처리 작업은 몸이 고된 일이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가 다른 직원들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후 근무를 서는 동료들 중에는 여름날 끔찍하게 뜨거워지는 창고 안 열기 때문에 작업 도중 쓰러진 이들도 몇 명 있다고 했다.

물론 야간 근무조 역시 다가오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겨울, 해가 떨어진 후의 창고 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워지는데, 옷을 뚫고 올라오는 시멘트의 냉기에 근육과 관절이 얼지 않고 버티려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의 손을 보자,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두툼한 손가락 군데군데 갈라진 틈 사이로 까맣게 굳어버린 진물들이 보였다.

그는 언젠가부터인가 자신의 급여명세서에 일주일에 적게는 3시간, 많게는 8시간 이상의 근로 시간이 깎여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실수겠지, 서류상의 오류겠지 했지만, 세 번, 네 번, 그리고 열 번 이상 반복되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다. 매니저에게 찾아가 명세서를 보여주고 따지자 돌아온 건 이런 불만은 자신을 찾아올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임원들에게 건의할 사항이라는 사무적이고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물론 그는 회사 임원진이 누군지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그의 동료 직원들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지 캐내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다섯 명의 동료들을 추궁하자, 그는 이 일이 자신에게만 일어난 일시적인 '오류'가 아니라 전 직원들에게 오랜 시간 행해져 온 회사 측의 '기만'이란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여태까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순리라고 받아들여졌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한여름 38도가 넘어가는 창고 안에서 물과 휴식시간도 없이 일해야만 하는가? 왜 그들은 한겨울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살을 찢고 뼛속까지 관통하는 추위 속에서 벌벌 떨며 일해야만 하는가?


물론 동료들을 조직하여 회사 측에 노동조건 개선을 부르짖거나 토막 난 노동 시간과 급여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에게 조용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부질없이 되지도 않을 노동조건 개선이나 떠들고 다니다가 임원진의 미움을 사서 해고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조소를 던졌다.


그는 나에게 호소했다. 자신을 도와달라고. 그리고 자신의 무지한 동료들을 도와달라고. 배운 것은 많이 없어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자 발버둥 치는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회사 측이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 했다.


당장 해줄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 나는 괜히 커피잔 바닥에 가라앉은 적갈색 앙금을 들여다보며 뜸을 들였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자, 크고 물기가 많은 그의 눈이 보였다. 그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은 그의 손등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고여있는 진물보다도 진득하고 진한 고름 같아 보였다.


나는 그에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법률적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다른 동료직원들의 증언들이 최대한 많이 필요하니 모을 수 있는 대로 많은 직원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그를 일단 돌려보냈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은, 처음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때의 모습보다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15:00


오늘의 두 번째 피해자가 들어왔다.


함부로 질끈 묶은 머리가 훤히 드러낸 화장기 없는 얼굴엔 여러 줄의 선명한 주름이 보였다. 꺼진 눈두덩에, 이마에, 그리고 정수리에, 피로의 흔적이 거무죽죽한 흡반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어있었다. 아마 사건파일을 미리 검토해보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이는 2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1년 전부터는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갔더니 희귀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치료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어버린 그녀는 큰 호텔 체인의 케이터링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월세와 생활비, 그리고 아들의 치료비까지 감당하려면 죽기 살기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회사 내에서의 업무평가도 우수했고 동료 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올해 7월, 그녀는 조심스레 그녀의 직속 상사에게 다가가 아들의 사정을 설명하며, 아들의 골수 이식 수술을 위해 올해 말 즈음에 열흘간의 휴가를 내야 할 거 같다고 설명했다. 상사는 수긍하는 표정으로 그녀가 근무한 지 1년째가 되는 올 11월이 되면 휴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족 의료 휴가법 (Family and Medical Leave Act)은 1년의 근무기간을 채운 직원들에게만 해당 법의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녀는 11월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더욱 일에 매진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호텔 직원으로 근무한 지 딱 1년이 되어 의료 휴가를 낼 수 있게 되는 날인 11월 26일이 되기 일주일 전, 그녀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사유는 그리 길지 않았다.


불성실한 업무 태도.


상황 설명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눈물도 닦지 않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나 역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살짝 돌려 테이블의 모퉁이를 조용히 응시했다. 유리창으로 오후의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들의 수술일이 언제인지, 만약 지났다면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을 자신이 없었다. 위태로운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에도 사무실 밖에선 레이저 프린터가 낮고 성마른 기계음을 내며 인쇄물을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결국 오전에 찾아온 첫 번째 피해자에게 했던 말을 그녀에게도 그대로 반복하며 그녀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힘없는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내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한사코 거절하는 그녀에게 회사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편의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그제야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교통카드를 받아 들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철컹하며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17:00


오늘의 세 번째 피해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왼쪽 팔과 발목에 깁스를 하고 있는 그녀는 통역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엘살바도르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3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농사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늙고 왜소한 그녀에게 농사는 거칠고 고된 작업이었다. 그녀는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했고 한 달에 하루뿐이 쉴 수 없었다. 봉급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잔업수당은 아예 없었다. 오후의 햇살이 목 뒷덜미를 덥힐 시간대에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는데, 선 채로 졸기라도 하면 고용주는 그녀에게 욕을 하면서 뺨을 때렸다. 저녁시간 때만 되면 종아리와 발등은 묵직하게 부어올랐고, 조금이라도 건조한 날이면 기침과 코피가 났다. 두통은 일상이었다.


어느 날, 고용주가 운전하는 골프카트가 그녀의 발을 밟고 지나갔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녀의 발은 곧바로 눈에 띄게 크게 부어올랐다. 고용주에게 고통을 호소하자 고용주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대신 그가 믿는 토속신앙의 주술사 격인 쿠란데로 (curandero)에게 끌고 갔다. 민간요법에만 의존한 허술한 응급처치를 받은 그녀는 회복할 시간도 없이 다시 일터에 투입되었다.


발목의 통증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의 일처리와 몸짓은 더욱더 굼떠졌다. 어느 날, 몇 개의 박스를 겹겹이 쌓아 시야가 가려진 채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는 그녀를 본 고용주는 왜 이리 동작이 느리냐며 그녀에게 발길질을 했다. 불편한 발목 때문에 제대로 중심도 잡을 수 없던 그녀는 맥없이 쓰러졌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손목과 손가락 두 개가 부러졌다.


생각보다 일이 커져 당황했는지, 고용주는 그녀에게 이 일을 경찰에게 신고하면 그녀가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당국에 밝혀 강제 추방시켜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또 그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그녀를 죽인 후 시신을 엘살바도르에 쥐도 새도 모르게 보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추가 협박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자신의 충실한 일꾼이 발에 이어 손까지 다쳐 쓸모가 없게 되어버리자, 일단 그녀를 치료해주는 게 이득일 거라는 판단을 한 고용주는 다음날 그녀를 자신의 차에 태워 한 시간 이상을 운전해 병원까지 데려가 주었다. 병원 앞에서 고용주는 그녀에게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고, 실제로 의사를 만나서도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물론 모두 급조된 거짓 정보들뿐이었다.


치료를 마친 후에 2주 동안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로 다음날 농사일 대신 고용주 가족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가사도우미일을 한 지 3일째 되는 날, 그녀는 경찰에게 구조되었다고 한다. 고용주의 언행이 수상쩍다고 생각한 의사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마지막 피해자의 인터뷰 과정은 전 두 피해자의 경우에 비해 유난히 길었다. 통역이라는 추가 과정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감정이 자주 격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나직한 음성은 감정이 격해질 때면 조금씩 높아지다가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고, 흐느낌이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다시 나직한 음성으로 지난 몇 주간의 아픈 기억을 읊조렸다. 단어들과 흐느낌이 한데 어우러져 그 둘을 구별할 수 없을 때도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긴 과정의 모든 순간, 그녀의 나직한 음성과 흐느낌 사이사이에 도사리던 무거운 침묵들까지도 숨죽여 귀를 기울여주는 것뿐이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녀가 겪은 고통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저녁의 푸른 어스름들도 어느새 지나가고, 창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20:00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지만 나는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열고 습기 찬 날숨을 뱉어낸, 사무실 가득 밀폐돼 있던 공기를 빨아들이자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역겨운 답답함이 차오르는 게 느껴져 급하게 창문을 열었다.


맨얼굴에 느껴지는 십이월 초순의 공기가 맑고 찼다. 눈을 감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자,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오늘 내 사무실에 왔던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날 찾아온 것일까? 나는 과연 그들 안에 생긴 구멍들을 조금이라도 메워줄 수 있을까? 오늘 내가 전해 들은 것들, 그 수많은 침묵과 헛기침과 망설임과 흐느낌, 뭉툭하면서도 날카로운,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단어들을 조합해 나는 어떤 내용을 완성할 수 있을까?


O.J. Simpson.


Enron.


조두순.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사건들은 항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이름으로 거론되고 기억된다. 검사실 역시 모든 사건에 통상적으로 부여하는 사건번호가 아니면 피고의 이름으로 사건들을 구분한다. 피해자들은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기에 기억되지 않고 잊힌다.


문득 오늘 나의 사무실을 찾은 사람들이 이름 없는 피해자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름 없는 피해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온 것이다. 적어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이 눈을 마주치고,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상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본 나는 그들을 그리 간단히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잊혀진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크고 물기가 많던 그의 눈을 기억한다. 입술이 일그러질 때마다 선명하게 그어지던 그녀의 주름들을 기억한다. 그녀가 격해진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숨을 고르며 흰자위가 충혈된 채 물끄러미 나를 마주 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들의 표정, 자신들이 겪은 날것 그대로의 아픔과 상처를 말로 표현하는 일의 고통, 그래서 위태롭게 이어지던 침묵들을 기억한다.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해당 사건과 관련된 서류들을 보관하는 마닐라 폴더들에 통상적으로 는 피고의 이름들 대신 그들의 이름들, 잊혀서는 안 될 그 고귀하고도 존엄한 이름들을, 천천히 힘주어 한 자 한 자 적는다.



Allen


Melissa


Aguilera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바꾸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