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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Jan 13. 2019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을 외치다 (1)

1부: 돈과 욕망의 도시

1부: 돈과 욕망의 도시


세상의 중심은 어디일까?

만약 '이과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세상은 둥글기 때문에 결국 세상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 즉 핵(核)이나 코어(Core)라는 재미없고 식상한 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문과생'들에게 더 신선한 답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들은 읽고 있던 시집을 덮으며 촉촉한 눈빛으로 "세상의 중심은 너와 나,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바로 이 곳이 아닐까?"라는 인체의 '중심부'를 가격하고 싶게 만드는 멘트를 날릴 테니 말이다. 그럼 ‘쓰앵님’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인지 신림동인지 모를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S.K.Y."



한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계, 아니 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옴파로스(Omphalos)를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호주 원주민들은 울루루(Uluru)를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먼 옛날, 중국인들 역시 스스로를 '중화(中華)'라 자처하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주장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강대국은 어떨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시절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시절의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처럼, 미국이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정말 미국이 세상의 중심인 걸까? 글쎄다, 미국의 어느 한 깡촌 마을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국인들에게서 찾지는 마시라.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의 50개 주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뉴욕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면, "네, 뉴욕이 이 세상의 중심입니다!"라는 한결같이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오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뉴요커들의 뉴욕 사랑 대단하다 못해 유별나기까지 한데, 일단 뉴욕에 붙은 수식어만 살펴봐도 'The Big Apple', 'A City of Dreams', 'A City That Never Sleeps' 등, 마치 성조기에 새겨진 별들만큼이나 많고, 뉴욕에 관련된 영화나 노래 역시 수백 개는 된다. 그 밖에도 '금융의 중심지', '공연예술의 중심지', '패션의 중심지'란 타이틀 보유 중이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태그 된 도시> 압도적 1위 자리를 매년 유지하는 거 보면, 뉴욕에 대한 뉴요커들의 자부심을 단순히 '근자감'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거 같다. 그래서일까? 많은 뉴요커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뉴욕에서 경쟁하며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 즉,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환상에 종종 빠져 살곤 한다.




내 사건의 피의자 로버트슨 씨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착각하며 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로버트슨 씨는 한때 뉴욕의 할렘(Harlem) 및 브루클린(Brooklyn) 지역에서만 십수 개의 피자 체인 점포들을 운영했고, 할렘 지역지의 <떠오르는 사업가 TOP 10>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릴 만큼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번쩍이는 삼각별 엠블럼이 달린 스포츠카를 굴렸고, 거느리고 있는 직원들만 해도 300명이 넘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모든 직원들과 일일이 문자를 주고받을 만큼  유대감 또한 남달랐다고 하니, 정말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이런 부족할 것 없는 인생이니만큼, 로버트슨 씨가 쭈욱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내 사무실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로버트슨 씨의 경우에도 결국 과한 욕심이 문제였다.



먹어도 먹어도 절대 그 허기가 채워지는 법이 없는 아귀처럼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라고 한다. 게다가 뉴욕은 이런 사람들의 욕심을 부추기고, 이 욕심들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은 곳이다. 매일 억! 소리 나는 단위의 '러(Dollar)'들이 사라졌다 생기기를 반복하고, 이 '달러' 몇 장의 차이로 모든 게 '달라'지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니만큼, 온 도시가 욕망으로 들끓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로버트슨 씨는 이런 뉴욕에서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도시에서 돈이 어떠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 돈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10대부터 돈만 쫒아 달려온 지 30년 만에 마침내 자신도 300명이 넘는 직원들을 거느리는 사장님이 되자, 그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도 힘차게 고동치는 이 도시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했을 것이다. 비로소 자신이 뉴욕이라는 이 거대한 욕망 덩어리 일부가 되었음을. 


그리고 이 생각은 로버트슨 씨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는 이제 매일같이 보는 삼각별 엠블럼보다는 바라카 백작의 검은  문양 새겨진 스포츠카가 탐났고, 매일같이 보는  아이의 아내보다는 처음 보는 낯선 여자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점포들의 수만큼, 로버트슨 씨의 욕망도 그렇게  몸집의 크기를 늘려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차체가 무거워질수록 핸들도 같이 무거워져야 방향을 잃지 않고 안정된 운행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로버트슨 씨에게는 무섭게 커져만 가는 '욕심'이라는 차체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크기의 양심이라는 핸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8 트럭인 프리마 경차인 마티즈핸들로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커져가는 욕심과 흔들리는 양심 사이에서, 로버트슨 씨는 결국 양심이라는 핸들을 놓아버렸고, 그때부터 그는 직원들의 주급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마냥 위태로운 질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주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지며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피해자들인 그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 고졸, 이민자 출신들로, 뉴욕이라는 몸통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말 그대로 '그날 벌어 그날 쓰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자들이었다.


모든 직원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그들과 연말이면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사이가 각별했다던 로버트슨 씨가 그런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정말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또, 자신의 내연녀들에게 선물로 줄 보석의 크기가 2캐럿이냐 1.9캐럿이냐의 차이가, 그의 직원들에게는 아픈 아이가 치료를 받고 사느냐 죽느냐의 차이였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을 버리고 욕심을 택한 로버트슨 씨는 그저 돈 몇 푼 더 벌 수 있다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로버트슨 씨의 사건 파일을 처음 건네받았을 때의 나는 입사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였다. 한 달 차 신입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 당시의 나 역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의욕과, 일당백의 사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얼굴은 잘난 편이 아니어서  노력 없이도 내추럴한 겸손함이 묻어 나왔지만, 목에 잔뜩 들어간 힘만큼은 빠질 줄을 몰랐다. 게다가 안 그래도 힘이 잔뜩 들어가 빳빳해진 목에 넥타이까지 조여 주니, 이건 뭐 당장에라도 거악을 척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패기와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때였으니, 로버트슨 씨의 사건 파일을 읽은 내가 마른 볏단에 불붙듯이 크게 분개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당장 로버트슨 씨의 출석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작성했다.



소환장을 보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로버트슨 씨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검사실에 출석했다.
 
검사실에 들어온 그는 긴장한 기색은커녕, 오히려 자수성가한 사람들 특유의 당찬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되지도 않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노동규준법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선빵부터 날리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물론 "잘 몰랐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흔해빠진 변명이라 검사실을 들락날락거리는 피고인들에게는 방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하는 가벼운 인사치레 같은 거다. 인사치레는 인사치레로 받아쳐줘야 하는 법. 나는 그에게 노동규준법상, '법에 대한 무지'는 처벌의 경감 사유가 못된다고 조용히 말해줬다. 내 대답에 별로 당황하지도 않는 걸로 보아선, 그 역시 내가 그 정도로는 넘어가지 않으리란 예상까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 이제 서로에게 인사는 주고받은 셈이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이었다.

 


로버트슨 씨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자기라고 임금을 깎고 싶어서 깎았겠냐며, 사실은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징계 차원에서 임금을 깎은 것이었다고 호소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단 로버트슨 씨의 점포들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는 다른 뉴욕의 점포들의 평가들에 비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버트슨 씨의 직원들 대부분은 그의 밑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었다. 뉴욕주는 '임의 고용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직원이 일을 제대로 안 하면 자르면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직원들과는 3년 이상 징계를 주네 마네, 임금을 깎네 마네 하면서 피곤하게 서로를 지지고 볶으며 같이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걸 다 떠나서 300명이나 되는 그의 직원들이 하나같이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건 마치 잭 스나이어 감독의 영화 <300>의 설정만큼이나 믿기 힘든 주장이었다.


결국 나도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었다. 지난 6년 동안 지속적으로, 모든 직원들을 상대로 임금 착취를 한 이유가 정말로 그들이 전부 다, 하나같이, 모조리 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냐고. 그러자 로버트슨 씨는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원들을 가족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의 화신다운 말도 했다. 그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어서, 그럼 임금을 깎는 징계 규정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있긴 있는데, 정말 있는, 어떻게 보여줄 방법이 없네'란다.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들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뭐, 그런 문서인가 보다.


상식적인 말이 안 통하는 사람 같아, 난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로버트슨 씨는 사실은 자기가 사업 운영 스트레스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심해져 판단력이 흐려지고 단기 기억상실증 증상까지 겪고 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해댔다. 그쯤 되자 나도 그의 우디르급 태세 전환과 뻔뻔함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까지 가려나 궁금해져 혹시 이런 증상을 증명할 만한 진단서가 있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도 편리하게도 그건 기억이 잘 안 난단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정말 술로 인한 기억상실증이거나, 아니면 로버트슨 씨는 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 게 아니라, 그냥 평상시에도 사람의 탈을 쓴 개거나. 물론 난 후자라는 것에 내 모든 것을 걸 자신이 있었다.





로버트슨 씨의 억지 주장들은 분명 참신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정황들은 그가 저지른 노동 착취가 술김이나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철저한 계획과 계산 하에 이루어진 범죄였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노동 착취 행위가 그렇다. 더군다나 이렇게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행해진 노동 착취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OOPS, I'M SORRY"란 말로도 쉬이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로버트슨 씨는 이 미안하단 말로 용서를 구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오히려 끝까지 당당했다. 그는 소송이 진행되는 내내 검사실에서도, 그리고 법원에서도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면서 악다구니를 부렸다. 


심지어 그가 지난 6년간  이백이십만  상당의 임금을 직원들에게서 착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선고일에도, 그는 법원을 나서는 나를 붙잡고 이 넓디넓은 뉴욕주에 자기보다 더한 업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그들은  잡고 자신만 괴롭히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끝내 반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임 검사로서 로버트슨 씨와 같은 파렴치한들을 상대하게 되면, 그들의 뻔뻔함엔 씁쓸해지면서도, 또 한편으론 선과 악의 대비가 너무나도 명확한 법정 활극 영웅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상대방이 '적대악'임이 너무나도 분명하다고 느껴질 때에는, 그 반대 효과로 스스로'절대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소를 따낼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하고, "정의는 느릴지라도, 확실하다" 따위의 유치한 독백들을 하며 '2' 환자 같은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정도는 귀여운 애교로 감아 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과정들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허영심에 취해 진짜 정의와  자신의 욕심이 혼동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이 점점 더 실감 나는 요즘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로버트슨 씨와 같은 피의자들을 겪을수록 내 의욕과 분노로만 움직이는 단편적인 정의감에 휘둘리게 된다. 내가 맞다는 확신에 찬 이런 단편적인 정의감은 지극히 단순하고 공허한 것이어서, 그 빈자리에는 결국 내 사건, 내 재판, 내 승소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대신 채워 넣게 된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물론 인간의 근본적인 탐욕과 이기심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 때문에 이러한 표면적인 것들에 대한 성취욕으로라도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심리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 역시 그저 이기고 싶은 욕망, 성과를 내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게 더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로버트슨 씨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니 말이다.





뉴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항상 급하고,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무신경하고 불친절한 뉴요커들 때문에 뉴욕 생활에 환멸을 느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하나같이 옆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맹렬하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그들을 보, 난 절대로 그들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들과는 달리, 언제나 주변을 두루 살피며, 한 가지의 목적이나 도그마에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라는 욕망에 무너진 로버트슨 씨의 삶과, 사건들을 처리하며 점점 성공이라는 욕망에 집착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 다짐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의 주관적인 욕심을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시내의 인파들 틈에 섞여 한 가지 목표만 맹목적으로 쫒는 사람이 되어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도 힘차게 고동치는 이 도시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다 결국에는 언젠가 로버트슨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비로소 나도 뉴욕이라는 이 거대한 욕망 덩어리 일부가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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