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규 Feb 15. 2019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을 외치다 (2)

2부: 피와 눈물의 도시

2부: 피와 눈물의 도시



앞서 밝혔듯이 나는 어린 시절 『슬램덩크』에 상당히 심취해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가장 많이 읽고, 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을 꼽으라면 단연 『삼국지』가 그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물론 『슬램덩크』도 수어 번 되풀이해서 읽을 정도로 사랑한 작품이지만, 『삼국지』 앞에서는 아무래도 그 빛이 바래지 않나 싶다. 그만큼 『삼국지』에 대한 나의 열정은 대단했다. 어린 나이에 그 긴 『삼국지』를 세 번도 아닌 다섯 번이나 읽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시대를 뒤흔든 영웅호걸들의 무용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야망', '대의', '시대적 소명'과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니면 모두 시시한 주제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어린 시절 내가 열광했던 작품들은 주로 영웅물, 시대물, 그리고 모험물에 편중되어 있었다.


이런 내가 로맨스물에 눈을 뜬 건 한순간이었다. 어느 한가한 평일날, 방학이라 방구석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나는 영화가 보고 싶으시단 어머니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동네 영화관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본 영화 <워크 투 리멤버 A Walk to Remember (2002)>가 그 시발점이었다.


영화 <워크 투 리멤버>의 한 장면


<워크 투 리멤버>는 맨디 무어(Mandy Moore)라는 하이틴 스타가 출연한 청춘영화였다. 찌질하고 촌스러우나 착한 여자 주인공이 인기는 많지만 살짝 어딘가 삐딱하고 공허해 보이는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전개에, 여주인공이 결국 백혈병으로 죽는다는 너무나도 식상한 결말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렇듯 소재도, 전개도, 연출 방식도, 무엇 하나 특출 날 게 없는 영화였지만,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죽기 전 'To-Do-List'들을 하나하나 함께 이뤄가는 장면들만큼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게다가 목사님의 딸인 여주인공이 남주인공과 함께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읊조리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다"라는 고린도전서의 성경 말씀은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 마음에 놀라우리 만큼 큰 울림을 주었다.


몇 번이나 쏟아질 거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고 영화관에서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나에게 영화는 어땠냐고 물으셨다. 최대한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보단 괜찮았어"라고 시크하게 답했지만 사실 생각보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생각보다 너무 좋아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난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다"는 영화 속 성경 말씀을 되뇌면서 '어쩜 이리 멋진 말이 있을까'라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날 이후, 로맨스물은 내 인생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로맨스물의 세계에는 피와 땀이 사방에 튀기고, 의협심과 단호한 결의가 힘차게 꿈틀대는 세계에는 없는 섬세하고도 포근한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부터 즐겼던 장르들이 원샷을 하고 싶어 지는 시원한 생맥주와 같다면, 내가 새로이 접한 로맨스라는 장르는 여유를 가지고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은 기로운 와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로맨스물들을 한껏 음미하고 난 뒤에 혀끝에 남아 감도는 끝 맛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언제나 오래 참고, 언제나 온유하기에 모든 걸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영원토록 변함없다는 사랑. 그렇기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사랑. <워크 투 리멤버>는 그렇게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사랑의 진짜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고마운 영화였다.




내 사무실을 찾은 엘레나 씨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참을성도 많았고, 온유했으며, 무엇보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겉모습만 봐서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청소년기와는 달리, 엘레나 씨는 십 대 시절에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기엔, 그리고 사랑을 제대로 알기엔, 그녀의 삶이 한없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십 대 시절, 엘레나 씨는 매일 1시간 이상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학교로 통학했다. 브롱스(Bronx)에서 A 트레인을 타고 하염없이 뉴욕의 도심을 통과하다 보면, 문득 삶이라는 것은 참 기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의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들은 늘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세상을 뒤엎을듯한 도시의 소음들도 우르르 커졌다 이내 다른 소음들로 대체되곤 했다. 사람들 역시 항시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도시도, 그리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쉴 새 없이 변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만은 늘 제자리였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빵을 씹고,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섰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곗바늘은 육중한 추라도 매단 듯 좀처럼 돌아가 주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녀만 늪처럼 바닥이 없는 시간에 빠져있는 듯했다. 마치 그녀 안에 있는 무언가가 깨어져 버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처럼.


그녀가 처음으로 친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건 8살 때였다. 한쪽 뺨을 수차례 맞았는데, 같은 자리를 연달아 맞다 보니 아직 얇고 연약했던 살갗이 터져버려 얼굴 위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눈에서도 눈물이 그렁 괴어, 이내 뺨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눈물과 피가 타고 흐르던 뺨은 크게 부풀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이 상황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무언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 그러니 앞으로는 더욱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학대는 처음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아버지의 폭력은 더욱 무분별하게, 그리고 더욱 광폭하게 이어졌다. 엘레나 씨가 잘못을 했건 안 했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나 패턴이 없었기에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더 공포스러웠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열 번째.


폭력이 계속 이어지자, 어느 순간 엘레나 씨는 세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이 고통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엘레나 씨는 그렇게 몇 년을 학대에 시달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폭행으로 늘 부풀어 올라있던 그녀의 뺨처럼, 십 대가 되자 그녀의 가슴이 눈에 띄게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사이 키도 부쩍 커져, 어느새 엘레나 씨의 몸은 더 이상 소녀의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늘 분풀이할 사냥감을 찾던 아버지의 눈에도 포착되었다. 그는 무섭게 부릅뜬 두 눈으로, 여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딸의 몸을 거칠게 탐닉했다. 이제 학대는 더 이상 단순한 구타로 그치지 않았다. 지옥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엘레나 씨의 몸과 마음은 아버지의 성폭행에 폭우에 둑 무너지듯 무너져 내렸다. 이제 엘레나 씨는 더 이상 8살 때 처음 뺨을 맞았을 때처럼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해서 이런 일들을 겪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무얼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잘못인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엘레나 씨처럼 몸과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에서도 늘 혼자였다.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들었고,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식사나 등교도 혼자 했다. 물론 처음에는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말도 붙이고 장난도 치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그녀 곁을 떠나갔고, 그렇게 그녀는 점점 더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다. 장벽에 둘러싸여 고립된 성이었고, 수심 깊이 잠겨 보이지 않는 섬이었다.


이런 그녀의 삶을 누군가 처음으로 두드린 건 엘레나 씨가 15살이 되던 때였다. 엘레나 씨는 그날도 역시 혼자서 A 트레인을 타고 하염없이 뉴욕의 도심을 통과하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그 시야를 가렸다. 눈은 생글거리고, 미소는 송글 거리는, 꽤 귀여운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마커스라고 소개했다.


마커스는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 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늘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 때문인지, 또래 남자아이들은 그녀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성숙해 보이고, 또 세련되어 보이는 이 낯선 남자는 그녀의 두 눈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엔 내 얼굴에 들러붙은 지독한 어둠과 아픔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엘레나 씨는 그가 짓는 표정,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말들을 아직 그렇게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하고 본능적인 이었다. 이미 인간의 야만성을 충분히 목격한 그녀는, 오로지 끝없는 경계와 의심만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열 번째.


마커스는 전화로, 문자로, 그리고 짚 앞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그는 끈질겼다. 벽을 치면 이내 포기하고 떠나가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그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그가 끈질기게 그녀의 삶을 두드리자, 여태껏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식어 있던 온몸의 피는 다시 따뜻해지는 기분이었고, 갖은 학대 때문에 움츠러든 근육들도 다시 활짝 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엘레나 씨는 어쩌면 자신의 존재가 그리 큰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마커스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그녀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엘레나 씨는 마커스 씨에게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갔다.


엘레나 씨는 그가 영화를 보자고 하면 영화를 같이 봤고, 그가 타코가 먹고 싶다 하면 같이 타코를 먹어줬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철저히 고립되어있던 엘레나 씨에게 친구가, 그리고 의지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황홀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리 오래 친구 사이로 남아있지 않았다. 마커스는 어느 날 그녀와 키스를 하고 싶다고 했고, 그건 엘레나 씨 역시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그날 둘은 자연스레 입을 맞췄고, 그렇게 친구에서 연인 사이가 되었다.


엘레나 씨는 마커스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었다. 마커스가 눈 화장을 더 짙게 해 보는 건 어떠냐고 하면 그렇게 했고. 조금 더 짧은 치마와 힐을 신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했을 때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마커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라고 칭찬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엘레나 씨는 그런 칭찬들을 들을 때마다 그 단어 하나하나들이 그녀의 몸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일그러져 있던 세포 하나하나를 다시 소생시켜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마커스가 그녀에게 그런 '섹시한' 복장으로 자신의 친구가 주최하는 파티에 가지 않겠냐는 부탁을 했을 때도 승낙했던 것이다. 사실 엘레나 씨는 여태껏 술도, 파티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과 오래 어울려 본건 마커스와의 시간들이 유일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야 하는 파티는 솔직히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을 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긴 시간 동안 어울릴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커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마치 그녀가 마커스가 영화를 보자고 하면 같이 영화를 보는 것과, 타코를 먹자고 하면 같이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마커스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이제 그녀의 삶의 목적이자 유일한 의미였다.


경직된 몸으로 파티를 향하는 엘레나 씨에게 마커스는 다 괜찮을 테니 긴장하지 말라며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건넸다. 사랑하는 남자 옆에서 처음 마셔보는 와인의 맛은 달콤 쌉싸름했다. 실제로 긴장감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술기운 탓인지 마커스의 얼굴도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긴장이 점점 풀어지는 그녀와는 달리, 정면을 바라보며 운전을 하는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굳어있었고,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웃어요 마커스." 엘레나 씨는 말했다. 마커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엘레나 씨의 몸은 이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이것이 술기운이라는 건가?' 그녀는 생각했다. 이내 턱관절이 뻣뻣해지며 전신이 허물어졌다.


엘레나 씨가 다시 눈을 뜬 건 용커스(Yonkers)의 어느 한 모텔이었다. 눈을 떴을 때 마커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낯선 남자 두 명이 그녀 위에 있었다. 손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온 세상이 눈앞에 유리판 두세 장을 얹어놓은 것처럼 뿌옇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이제 그것이 술기운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눈물 때문이었을까? 아님 약 기운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분명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녀의 몸을 더듬는 거친 손놀림과 찢어질듯한 고통이 이 모든 것들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그리고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성매매의 현장임을 너무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마커스는 뉴욕 지역에서만 몇 년간 활동해온 베테랑 매춘 알선업자였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로미오(Romeo) 포주'라고 부르는데, 어리고 연약한, 그래서 관심과 사랑에 목마른 여성들만 목표로 삼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이런 '로미오 포주'들이 개입한 성매매 건수는 작년 뉴욕에서만 300건이 넘었다. 물론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이 수치에 몇 배나 되는 수의 성매매 사업들이 암암리에 횡행 중일 것이라는 것이 경찰과 검찰 내에서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렇듯 성매매 사건들이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총은 팔고 나면 없어지고, 마약도 팔고 나면 없어지지만, 사람은 없어지지 않는다. 팔고, 또 팔아도 그 자리에 남아 살아 숨 쉰다. 그렇기에 성매매 여성이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일 년에 수천번도 넘게 그들을 '굴리며'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성매매 여성들이 도망칠 가능성이라는 것 역시 생각보다 희박하다. 사실 이런 여성들을 붙잡아두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영화 <테이큰>에 나오는 것처럼 여성들을 납치한 다음 총구를 머리에 대고 위협할 필요도, 족쇄를 채워 지하실 안에 감금시킬 필요도 없다.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건 무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이다.


엘레나 씨와 같이 성매매의 세계의 발을 딛게 되는 여성들의 90프로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적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그녀들은 마커스와 같은 전문 사냥꾼들에게 걸리면 그 마수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심지어 폭행의 흔적까지 역력한 피해자들에게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을 때마다 가장 흔히 돌아오는 대답은 놀랍게도 "그래도 그는 날 먹여주고, 재워줬어요"였다. 뜨거운 물 몇 방울은 길가는 행인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럽겠지만, 사우나의 열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주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학대를 당해온 피해자들은 사랑만 있다면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매일 옷걸이로 사정없이 맞는 학대쯤은 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커스와 같은 인신매매범들을 적발하고 수사하는 데에는 늘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엘레나 씨 역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는 데에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이 일 년이라는 시간은 엘레나 씨에게는 놀라우리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앞으로 이 년, 삼 년, 어쩌면 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완전한 치유란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인권 단체 소속 상담사들의 시간과 노력들, 그리고 엘레나 씨 본인의 굳은 의지 덕분에 그녀는 용기 내 입을 열 수 있었고, 이 용기 덕분에 마커스는 기소될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16건의 무력·협박과 사기에 의한 성매매 혐의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마커스의 마수에서 무려 14명의 여성들이 풀려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하나같이 엘레나 씨와 비슷한 힘들고, 불우하게 살아온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비록 마커스에게서는 해방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녀들은 수많은 피와 눈물들을 흘려야만 했고, 또 십 대에만 겪을 수 있는 서툴지만, 그만큼 신선한 감동으로 가득 찬 사랑을 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그녀들이 쏟아낸 피와 눈물들처럼, 그 기회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엘레나 씨를 포함한 그녀들 모두, 그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가슴속 깊은 곳에 품고, 그 온기를 느끼며 늙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이런 분한 마음을 못 이겨 엘레나 씨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가장 무방비하고, 불안정하고, 순수한 부분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악용한 마커스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이며, 그런 그를 절대 용서해서나 다시 받아줘서는 안 된다고. 그러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검사님이 저 대신 그 사람을 용서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이제 그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선 그녀는, 현재 브롱스에 있는 세이프 호라이즌(Safe Horizon)이라는 인권 단체에서 자신과 같은 성매매 피해자들을 돕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 공백을, 그녀처럼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멈춰있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오래 참으며. 또 언제나 온유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을 외치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