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나는 어른이 되었을까?
“이력서를 보니 대한민국 육군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네요. 왜 자원입대를 한 건가요? 그리고 이 경력이 앞으로 검사로 활동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뉴욕 주 검사 인터뷰 중에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내 입대 일은 2011년 10월 11일이었는데, 그때로부터 벌써 거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군대에서의 추억이 어찌 쉽게 바래질 수 있겠냐 만은, 나에게 있어 입대 당일 날의 기억만은 희미할 줄만 알았다. 왜냐하면 그날 막상 의정부에 있는 제306 보충대대에 도착하자, 나의 정신은 반쯤 빠져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군대에 입대하기로 한 결정은 16살의 내가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스스로 내린 결정, 그때의 그 결정이 7년이 지나 나를 그 장소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이게 옳은 결정이라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막상 입대 당일이 되니 문득 그 선택이 후회가 되면서 주변의 상황에 주의를 기울일만한 여유나 정신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흐릿할 것만 같았던 그날의 기억은 신기하게 오늘날에도 단순한 감정들뿐만이 아니라 보충대대 연병장의 풍경 하나하나까지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10월의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의 긴장감과 함께 팽창하며 내 코 끝을 거칠게 찔러오던 땀냄새, 우리들의 초조한 몸짓들에 뿌옇게 일어나던 흙먼지, 그리고 먼 곳에서 붉게 충혈된 채로 흔들리면서도 내 모습을 놓치지 않는 어머니의 눈동자. 아직도 모든 장면들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그래서 조금은 아프게 그려진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과 잠재의식이란 건 신비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건가 보다.
마찬가지로 군대에 관한 내 답변도, 질문을 던진 면접관이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과, 실제로 내가 준비했던 답변과는 많이 벗어난 방향으로 나오고 말았다.
현재 20대로부터 40대까지의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군생활 경험이 없다. 본인들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군생활에 대한 이들의 호기심은 상당한데, 특히 군인에 대한 예우와 존경이 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군생활의 가치가 강조되는 건 미국에서뿐만이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우리는 '남자는 역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또 군대에 갔다 오더니 ‘어른이 다 되어서 왔다’고 하는 말들을 한다. 군대가 남자를 더 남자답게, 그리고 사람을 더 어른스럽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게 군대가 '적응할 줄 아는 인간'들의 양성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는 흔히들 눈치껏 행동하고, 철저하게 복종하여, 빠르게 그 시스템에 적응하면 'A급'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설사 처음에는 '폐급'이라고 분류되었던 병사들도 욕과 시간을 함께 먹어가면서 그 시스템에 점차 적응해가고 동화되어 간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엔 본인들이 'A급'이든 '폐급' 이등병이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계급이 한 계단씩 올라가 마침내 '상병'이나 '병장'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등병 때 그토록 숨 막히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 철저한 상명하복의 시스템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고 만다.
어떠한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반대 없이 이행되어야 하는 철저한 계급사회,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한치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 '얼차려'와 '까라면 까야지'의 세계에 적응하고 동화되어 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복무기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없는 존재인가를 뼛속 깊이 깨닫고, 권위와 지배층에 도전하거나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일인가를 터득하여 결국에는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된 인간, 그러한 인간을 뜻한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의 정체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군대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흥미가 안 생기던 독서와 공부가, 막상 군대에 들어와 보니 그토록 절실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또래 친구들은 미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어엿한 직장도 구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는데, 나만 철창 안에 갇혀 제자리걸음인 게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이등병 때 연등시간에 공부를 해도 되겠냐고 선임에게 물어봤다가 그날 새벽 2시까지 훈계를 듣고 난 이후부턴 주말에 주어지는 오침 시간에 몰래 잠을 안 자거나 평일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숨어서 틈틈이 병영도서관에서 대여한 고전들을 읽곤 했다.
하루 1시간만이라도 독서와 LSAT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을 착실히 준비하자 점점 눈에 띄는 발전이 보였고, 업무나 훈련 때문에 하루라도 책을 못 보거나 한 문단의 문제라도 풀지 못한 날이면, 새벽에도 눈이 떠져 화장실에 들어가 공부를 하곤 했다. 나 자신에게 변화가 느껴지자, 전역일만 넋 놓고 기다리며 무료한 군생활을 이어나가는 동기들과 선임들을 보면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병장이 되어서도 네 팬티 네가 빨고 싶냐"라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우리 생활관 내에서만은 개인 임무분담제를 철저하게 실천했다. 이등병이며 병장 할 것 없이 격주로 교대하며 침상 걸레질, 화장실 청소와 같은 생활관 업무를 분담하게 했고, 그 후에 남는 개인 시간엔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의 눈치와 간섭도 없이 본인이 군생활중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그리하여 내 군생활 막바지엔 우리 분대원들 모두의 군생활 목표가 큼지막하게 각자의 생활관 관물대에 붙어있게 되었다.
"왕짜 복근을 만들겠다."
"지게차 자격증을 따겠다."
"토익 준비를 하겠다."
각자 본인의 개성과 꿈이 제각각인만큼 각양각색이었던 분대원들의 목표들을 읽는 게 내 군 생활 최대의 보람이자 수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군대에 '적응'을 잘해서 얻은 성취가 아니었다. 오히려 부당하다고 생각된 제도에 대한 '저항'의 결과물이었다.
일말의 자유와 개인성의 발현조차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은 병들 수밖에 없다.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 시간을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데 쓸 수 없다. 결국 그렇게 쌓인 답답함과 울분은 부조리와 폭력이라는 다른 잔인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병든 시스템을 치유시키는 건 돈도,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명령도 아니다.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건 불의를 보면 보인다고 말하고, 부당함을 느끼면 느낀다고 말하고, 변화를 원하면 원한다고 말하는 개인의 용기다. 나는 이런 '저항하는 인간'이 하나 둘 본인의 뜻을 표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할 때 사회는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비단 군대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당연시되는 삶의 요령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 선배, 교사, 미디어 등등의 모든 권위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 들어온 이 충고는, 그 이면에 곧 어떠한 현실에 건 저항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손해 보지 않으려면 ‘현실'과 '타협'하고 '둥글게' 살라는 엄중한 주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단한 용기와 소신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검사라는 직업은 기소권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지만, 그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 또한 지고 있다. 흔히 미국에서는 '검사의 클라이언트는 "People" 즉 사람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이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들을 색출해내 기소율을 높이는 게 검사의 본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집행하는 자로서 검사의 최우선적 소명은 '정의 수호'다. 그들이 소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상부의 수사방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거나, 현재의 법이 부당하고 그 결과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에 대해 소신껏 발언할 수도 있어야 한다.
뒤돌아보면 아마도 군대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그것을 이겨낸 휴먼 스토리를 기대하고 있던 면접관에게 협동심, 리더십, 희생정신, 책임감 등 과 같은 군대에서 흔히 배양할 수 있는 덕목들을 그럴듯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나열하면 크게 감동을 줄 수 있었거나, 적어도 손해볼일은 거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나도 면접 준비를 하면서 이런 식의 모범답변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막상 군대에 대한 질문을 듣자 생각의 흐름에 이끌려 준비했었던 답변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군대 생활을 통해 도출해낸 내 나름대로의 법과 검사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밝히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에 대한 후회가 딱히 들지는 않는다.
법은 '가치중립적'이기보다는 '가치지향적'이여만 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바로 '적응하는 인간'들만큼 '저항하는 인간'들도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