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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Aug 26. 2019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

출간 소식


처음 출판사로부터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라는 제목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간 단어는 '초보'였습니다. 뉴욕이야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일 뿐이고, 검사도 이 세상 수많은 직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지만, '초보'는 조금 다릅니다. '초보'라는 단어는 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입니다. '초보' 엄마, '초보' 아빠, '초보' 남편, '초보' 아내에서부터 '초보' 회사원, '초보' 학생, '초보' 작가,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초보' 유튜버까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도 많은 '초보'들이 존재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한때 '초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초보'라는 단어가 꼭 긍정적인 느낌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과 '초조'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도 함께 떠오르게 합니다. '초보 운전자'의 모습만 상상해봐도 그렇습니다. 초보 운전자는 늘 어딘가 불안해 보입니다. 긴장해서인지 온몸은 빳빳하게 경직되어 있고,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도 반박자 느립니다. 그래서 때론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게다가 본인 혼자만 초조한 게 아니라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불안하게 만듭니다. 마치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라는 노래 가사처럼 말이죠.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이 책의 제목대로 저는 '초보 검사'입니다. 경력도 짧고, 나이도 어린 제겐 아직 자랑스럽게 세상에 내세울 만한 획기적인 성과도 없고, 거악을 척결하고 정의를 바로잡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서사도 없습니다. 마치 퍼즐 조각 더미 같이 정리되지 않은 저의 생각들은 대단한 삶의 지혜나 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후련한 마음보다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더 크게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을 내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조금 뻔뻔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결국 제가 그러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검사실에 앉아있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모든 아픔과 번민이 제 안에 조금씩 누적되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러한 것들을 글로써 풀어내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책을 써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잡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말이죠.


책을 내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는 단순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습니다. 저는 '초보 검사'이기도 하지만 '초보 작가'이기도 했으니까요. 부족한 필력 탓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퇴근하고 나서 책상 앞에 앉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한숨을 푹푹 쉬고, 머리를 벅벅 긁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는 날들이 몇 개월 간 이어졌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다가, 다시 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글을 지우는 과정이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졸린 눈을 비비고, 커피를 꾸역꾸역 목구멍 안으로 넘기면서 또 다른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고요하고 고독한 글쓰기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 적법과 위법, 합리성과 부조리가 한데 뒤엉켜 있는, 이제는 글쓰기만큼이나 제 삶의 큰 일부가 되어버린 검사실이라는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세계로요.


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4년 전 로스쿨 입학식 때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교수님은 저를 포함한 신입생들에게 이런 주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입학하기 전의 여러분들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이 몇 주, 몇 달, 몇 년 전이든 간에 말이죠. 그들은 어떠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나요? 또 어떤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나요?

자, 이제 눈을 떠보세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것입니다."


Save Yourself(너 자신을 지켜라)




그러고 보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결국 제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는 두려웠거든요. 공무원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뉴욕의 터무니없는 월세도, 기소재량권이라는 거대한 공권력도, 제가 남의 인생을 단죄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입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도, 그렇기에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던 검사라는 직함의 무게도.


책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저는 조금이나마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초심과 각오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 자신도 잘 못 느끼고 살았던 제 안의 감정들과 생각들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찰나의 번갯불이 어두운 방 안의 사물들을 비추듯이, 글쓰기가 제 안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생각들에 윤곽을 드러내 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제가 어떠한 약점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그러려면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안의 세계가 점점 더 확장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중심은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건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사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제가 '초보' 딱지를 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쓰기 시작한 반년 전과 마찬가지로 저는 여전히 서투르고,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일 년이, 아니 십 년이 지나도 크게 바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흔들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초보'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잡자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출간 소식을 알리는 지금, 이 책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브런치에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이슬람 경구중에는 "흔들리는 나침반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세상의 모든 '초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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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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