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사람들] 인간생각 이혜경씨
단골식당 아주머니, 집 앞 편의점 할아버지, 양복점 아저씨, 커피숍 알바생…. 우리 주변 이웃들은 평범하지만 저마다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꽃집 주인은 마치 라디오 진행자처럼 남성 A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A는 2015년 4월 작은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부케를 던졌습니다. 정확히 1년이 지났고, A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레스토랑을 예약한 뒤 꽃집에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A의 사연을 들은 꽃집 주인은 아내가 던졌던 부케가 조금 성숙해진 모양으로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화관은 덤으로 줬습니다. 1년 전 아내의 머리 위에 있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꽃으로 만들어서 말이죠. A와 아내는 그게 좋았습니다. 다시 드레스와 예복을 꺼내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 아내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왼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습니다.
꽃집 주인 이혜경(39·여)씨는 14년 동안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습니다.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냥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었던 혜경씨는 2015년 1월 서울 상수동의 한 건물 옥상에 꽃집을 차렸습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꽃집의 이름은 ‘인간생각’입니다. 꽃다발에서 휴머니즘 향기가 날 것 같은 이름입니다.
혜경씨는 꽃다발 속에 이야깃거리를 담아 줍니다. 한번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6명의 여대생으로부터 교수님께 선물할 꽃다발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 꽃을 고를 때도 의견이 엇갈렸고, 누구하나 굽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혜경씨는 개성 강한 6가지의 꽃을 모아 다발로 묶었습니다. 각각의 꽃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의미합니다. 아마 교수님은 이 꽃다발을 볼 때마다 6명의 학생들을 떠올리겠죠. 혜경씨가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꽃을 건넨다는 건 꽃 자체를 선물 한다기보다 사랑이나 고마움, 설렘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꽃다발 안에 의미를 담아 주고 싶었어요.
혜경씨는 꽃을 미리 사두지 않습니다. 제가 ‘인간생각’을 찾아간 날도 가게엔 꽃이 없었습니다. 꽃을 주문한 사람에게 미리 사둔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는 게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사연을 들은 뒤 꽃시장에 나가 직접 꽃을 구입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그러하듯, 꽃시장에도 외면 받는 꽃이 있습니다. 하얀 장미도 비주류 꽃 중 하나입니다. 혜경씨는 “하얀 장미도 잘 다듬고 꾸미면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 꽃집의 캐치프레이즈는 ‘small thing, big thinking'. 작은 것도 대충 지나치지 말고, 다시 한번 해석해서 아름답게 만들어보자는 의미입니다.
꽃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있다면 아마 사진일겁니다. A와 그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꽃을 보면 사진기를 꺼냅니다. 하루는 재개발이 한창인 망원동에 들렀다가 식물을 봤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에서 식물들은 다복하고 복스러운 녹색의 잎을 부지런히 내고 있었습니다. 혜경씨는 이 모습을 아는 사진작가에게 부탁해 카메라에 담아 지난해 7월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사진전의 이름은 ‘다시보기’입니다. 이름이 참 좋습니다. 다시보기.
꽃집들의 대목이라는 로즈데이나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때도 따로 가판을 열지 않습니다. 식목일에만 옥상에서 오픈마켓을 엽니다. 그날만큼은 사람들에게 화초의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미리 준비해 둔 꽃을 팝니다. 지난해엔 선인장을 내놨고, 올해는 바질, 애플민트, 로즈마리 같은 먹을 수 있는 화초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혜경씨, 대기업과 꽃집, 언제가 더 행복하세요?
당연히 지금이 훨씬 좋죠. 지금은 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사는 게 좋아요. 상수동 골목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