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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Jul 14. 2024

시작하며

- 무언가를 배우러 떠나기까지





1. 집으로 들어오다


육아휴직은 1년만 할 예정이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집으로 들어온 달. 그 시작은 이상하게 부산했고, 알 수 없게 울적했다. 그동안의 직장생활로 고갈된 체력과 번아웃된 마음에 우울감이 더해지자 그저 침대에 누워만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 틀어박혀 뒹굴 뒹굴 하기만 하니 어느새 곰처럼 살이 찌고야 말았는데, 그제야 밖으로 좀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화창한 봄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해볼까?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못 해봤던 그런 것들을 무작정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막막하고 어딘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른인데, 왜 이런 게 겁이 나는 걸까?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는 얼핏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무지함이 깃들여져 있는데 그것이 어른인 나를 두렵게 하는 거라 막연히 생각해 볼 따름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에 스스로를 진저리 치게 만들고 나서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감하게 수업 결제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의 고민을 종결짓는 최후의 행위는 언제나 ‘결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캘리그래피와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필라테스와 같은 운동을 배우기도 하고 이런저런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하였다. 동네 독서 모임에도 가입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거기서 브런치에 첫 발을 내딯게 된 것이다.


적어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한 것 같지만, 사실 그저 취미 활동에만 매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이한테 거의 매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육아에 최선을 다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정이 틀어지면, 취미 생활은 그게 맞게 모두 조정했고, 아이의 일정에 맞지 않는 활동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애초에 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들 여전히 내 몸과 마음은 집에 매여 있었던 것이었다. 충실하게.    




2.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


집에 매여있었던 일 년 동안 내내 아팠다.

우선 갑자기 천식이란 진단을 받아, 휴대용 흡입기를 가지고 다니는 환자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면역력 문제로 피부질환이 생겨 매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그렇게 꼬박 반년 이상 치료를 하고도 병이 호전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병원을 갈 때마다 키우던 고양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지속적으로 받기도 했다. 고양이와 관련 알레르기 수치가 높게 나와 병을 치료하는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너무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노묘가 된 고양이를 어디 보낼 곳도 없었을뿐더러, 남편과 아이가 우리 집 고양이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에게, "나야? 고양이야?"라는 잔인한 선택을 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턴 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라리 내가 떠나는 게 훨씬 나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설상가상으로 3년째 지속된 윗집의 층간소음에 괴로워하던 시점이었다. 휴직으로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예전보다 소음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생겨난 일이었다. 너무 오래 참은 탓인지, 층간소음이 오래 지속되는 날에는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식은땀까지 나기도 했다.

가끔은 견디다 못해 한겨울 저녁에 산책(?)을 하러 뛰쳐나가기도 했다. 추운 겨울밤, 사연 있는 여자처럼 어두운 얼굴로 집 주위를 걷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씩 더 굳어지게 되었다.




3. 집을 떠나다 


어느덧 육아휴직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왔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 손을 필요로 했으며 내 몸도 다 낫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 예상치 못하게 휴직을 1년 더 연장하게 되었다.


다만 더 이상 집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되었건 집에 있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거니까(?) 매일같이 집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조금은 이상하고 극단적인 해결책인 듯싶었지만 그것이 그나마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때마침 예전부터 사서가 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기회에 공부를 한 번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우선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엄마가 없는 공백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부하러 가야 하는데 그게 매번 순조로울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또 불가피하게 급할 때는 친정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게 난감했다.


말 그대로 답을 요구하는 문제도 있었다.

공부를 새롭게 시작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그거 왜 하는 거야?",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래?" 같은 질문들을 던져왔고, 그런 외부의 물음들은 나에게 다시 세게 부딪쳐왔다.

제대로 답해야만 할 것 같았던 그 질문에 대해 “그냥 배우고 싶어서요.”라는 답을 하고 나니 어쩐지 설득력 없고 궁색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마음으로 이 공부를 시작해도 될까?    


어떤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질문이 질문을 만들어 내는 상태가 되고야 만다.


그 쌓여있는 의문들을 해결하고자 나는 인터넷에서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다. 일단 인터넷 카페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글을 찾아보았다. 사서가 되려는 사람들의 질문들을 관련 카페에서 찾아보자 이러했다. “사서가 되는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떨까요?”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그냥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 “생각하는 그런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에요.” (생각보다 이쪽 공부는 어렵고 컴퓨터를 잘 다루셔야 합니다 등등)과 같은 조언들이 달리기 일쑤였다. 그리곤 그 밑으로 사서라는 세계의 힘듦에 대한 현실 조언들이 줄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조언들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가 팍 죽어서 “아니 일단 그냥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라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변명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었다.


인터넷 세계에서도 그러하고 현실 세계에도 누구 하나 “그래 해봐라”라며 격려해 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  나는 도대체 이걸 왜 하려고 하는 건지 싶어 기운이 쏙 빠졌다. 굳이 이 공부를 해야 할 명확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더욱이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는 더더욱.

그렇지만 ‘그냥 좋아서’, ‘그냥 배워보고 싶어서’와 같은 마음들은 마르지 않는 물처럼 아직 내 안에 고여 있었다.


끝끝미처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대강 그러모은 채로 배우러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시 덜컥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불도 못했다는 말)


모든 것을 다 알고 부족함 없이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은 없을 것이다.

그저 나는 아직 무지한 여행자인 상태로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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