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나 Aug 11. 2024

길 위에서

- 순간 이동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를 가는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발할 때는 설렘과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한산한 좌석 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 저녁 시간대라 교통 체증도 시작되었고, 내 마음도 그에 맞춰 분주해졌다.

 

좌석 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에 서 있자니,

많은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가만히 서 있을 수 조차 없었다.

그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타려던 버스가 맨 뒤에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다른 버스들이 시야를 가려 확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류장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일제히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얼떨결에 그들을 쫓아 뛰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버스의 문이 내 등 뒤에서 간신히 닫혔다.


버스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더 이상은 아무도 탈 수 없을 만큼 혼잡했다.

그럼에도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다가와 앞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내 등 뒤로 계속 들려오자 어쩐지 등 뒤가 따갑게 느껴졌다.

기사 아저씨는 그들에게 다음 버스를 타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연거푸 고개를 내저으셨다.


결국 버스는 정류장의 사람들을 뒤로한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는 안도감도 잠시 뿐,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여전히 교통 카드를 찍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몸을 움직여보려 시도하였으나 헛된 시도일 뿐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손에 교통 카드를 들고 멍하니 서 있던 그때,

카드 리더기 옆에 서있던 아가씨가 조용히 내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앞에 서있던 아저씨는 말없이 내 손에서 카드를 받아 들어 그 아가씨한테 건네주었다.

이윽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카드가 찍혔고,

그들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내게 카드를 돌려주었다.


교통 카드가 내 손으로 미끄러지듯 쥐어지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손바닥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 깃털같이 가벼운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들처럼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만 전할 뿐이었다.  




만원 버스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탔다. 학교로 가는 길은 이렇게도 번거롭고 험난했다.

마을버스는 좀 더 한산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작은 버스마저도 사람들로 가득 찬 채, 가파른 학교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마침내 종점에 도착한 버스는 사람들을 마치 토해내듯 쏟아내었다.

     

그렇게 잔뜩 지친 상태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학교에 도착했다.     

그래서였을까?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교실이 점점 사람들로 가득 차자, 여전히 만원 버스 안에 타고 있는 듯 갑갑함이 몰려왔다.

교실 문이 닫히고 수업이 시작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어수선할 뿐이었다.  


항상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면 방황하는 순간들이 있다.

여기가 내가 가러던 곳이 맞는지, 이곳에 과연 내 자리가 있는지,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그런 모든 불안과 의문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시간들.

지금도 나는 그 시간들 속에 들어섰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드르륵’ 하고 교실 뒷문이 열렸다.

교수님의 말씀이 한창이던 중, 누군가 허겁지겁 뒷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 사람은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교실 뒤쪽을 서성였다.


그 모습에 멍하니 있던 나는,

무언가 갑자기 기억이라도 난 사람처럼 황급히 내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을 치워 빈자리를 만들었다.

가방을 치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 사람은 내 옆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 순간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힘들었다.

버스를 잘못 타 서울의 밤 길을 헤매게 되었던 것이었다.

3월의 밤은 겨울의 태를 여전히 벗지 못하였으므로 온몸은 금세 얼어붙었다.

추위를 느끼는 만큼 서러움도 단숨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헤매던 중 어딘가 익숙한 거리로 접어들었다.

눈에 익은 거리를 보자,

이십 대의 앳된 얼굴을 한 내가 서울 거리를 밤낮없이 걸어 다니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밤거리를 걷는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서울의 밤거리를 헤매며 걸을 권리를 잃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길 위의 보도블록처럼 불쑥 솟아올랐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오늘 하루가 마치 짧은 여행 같았다.

길 위에서 작은 순간들을 경험하는 그런 여행.

    

그러니까,

대수롭지 않아 누군가에게 말로 꺼내어 전할 일도 없는 그런 순간들.

삶의 틈새에서 잠깐 조우한 뒤 금세 사라져 버리는 기억들.

어떤 구체적인 언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들.     


순간이동을 한다면 길 위에서 마주칠 수 없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그 순간들을 위해,

나는 계속 길을 떠나보기로 했다.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