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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Aug 25. 2024

차창 너머의 세상

- 상상의 일

   




학교로 향하는 여정은 결코 일상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목적지를 향해 오가면서도 그랬다.


아마도 매일같이 변화무쌍한 도시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 그 여정을 여행처럼 느끼게 해 준 건지도 모르겠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쑥 버스에서 내려 보고 싶어 졌던 아담한 레스토랑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치 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고풍스러운 가게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되뇌곤 했다. 어쩐지 여유롭게 한적해 보이는 그 가게가 언젠가 내가 방문할 때까지 없어지지 않길 바라며.


평소와 다른 길로 가던 어느 날 밤에는, 창밖을 바라보자 고궁의 담장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짧은 순간 고궁의 담장길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달빛 아래에서 그저 고궁의 담장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모든 것이 바뀔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에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리기도 했다.


명동 앞을 지날 때면, 늦은 밤에도 환한 불빛과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온 듯한 사람들의 얼굴과 옷차림에서는 이국적인 감각이 묻어났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엿보였다. 잠시나마 그들의 기분에 슬쩍 발을 디뎌보면,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설렘과 흥분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때로는 그렇게 사람들만 바라봐도 흥미로울 때가 많았다.


서울로 여행 온 외국인들뿐 아니라, 학교 길에서 마주치는 대학생들을 볼 때도 그랬다. 나는 저녁에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 언덕을 올라가곤 했는데, 그들은 마침 그때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언덕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그들과 매번 짧게 스쳐 지나칠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아마도 나는 입지 못할 것 같은) 짧은 상의나 스커트를 입고, 나비처럼 나풀나풀 걸어 다녔다. 남자아이들은 어른인 것처럼 (비록 어른이지만) 과묵한 표정을 지으며 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끈한 얼굴로 때때로 아이 같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때로는 유독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을 보면,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떠올라 우리 아이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엄마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러다 문득,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내가 어느새 엄마가 되었음을 다시금 깨닫고는 시간의 흐름이 무상함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어쨌든 그 젊음의 군상들과 마주할 때면 늘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호기심과 열망을 품고 그들을 관찰하다 보면 때로는 내가 이국의 주민들을 발견한 콜럼버스나 그들을 탐구하는 인류학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흥미로운 장소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익숙한 것들도 때로는 새롭게 느껴지곤 했다.     


11시가 다된 늦은 밤,

버스가 동네로 진입하기 시작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느 날에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이곳의 공기조차도 그랬다.


낮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모습들이 사라지자,

바삐 걷는 사람들과 차들이 달리는 소리들만 남아 쓸쓸하고 고요한 동네가 생경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낮과는 다른 얼굴을 가진 이 시간의 동네가 점점 좋아졌다.

이제는 나조차도 동네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던 그 얼굴이 아닌, 낯선 얼굴을 하고는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곤 했다.   


낮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그 시간에는 종종 아파트 단지 앞에 모이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슨 오토바이 모임이라도 있는 걸까?

그들이 겁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했다.

나는 때때로 그들을 조심스레 훔쳐보며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머릿속에는 그들의 정체를 추측하는 온갖 상상이 가득한 채로.


직장과 가정을 뒤로하고 마주한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비록 그것들이 만질 수 없는 창 밖 너머의 세상일지언정,

그 모든 것들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날아들 듯 품 안으로 다가와,

나를 새롭고 자유롭게 사유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여행이 상상의 일이라면,

나는 매일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토록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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